QPR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박지성은 붉은 유니폼이 정말 잘 어울렸다. 아니 정말 잘 어울린다.

QPR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박지성은 붉은 유니폼이 정말 잘 어울렸다. 아니 정말 잘 어울린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최초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로 이적을 확정지었다.

9일 오후 11시(이하 한국시간), QPR은 잉글랜드 밀뱅크 타워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박지성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당초 계약기간이 3년이라고 알려진 바와 달리 박지성은 QPR과 2년 계약을 맺었으며 이적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200만 파운드(한화 약 35억 원)를 먼저 지급한 이후 QPR이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하면 300만 파운드(한화 약 53억 원)추가로 지급하는 형식으로 지급될 것이라 현지 언론들은 내다봤다. 박지성이 PSV 아인트호벤에서 맨유로 이적했을 때 기록했던 이적료는 400만 파운드(한화 약 71억 원)였다.

연봉 역시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팀 내 최고 대우인 주급 6만 파운드(한화 약 1억 원)를 받을 것이라 예상된다. 맨유에서 받던 주급 9만 파운드(한화 약 1억 6000만 원)에는 못 미치지만 강등권에서 경쟁하는 QPR의 경우 별도 출전 수당이 많아 맨유와 별 다를 게 없다는 게 박지성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지성은 이제 낯선 환경에서 처음 보는 동료들과 함께 어쩌면 축구선수로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불꽃을 불 태워야 한다. 박지성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돈보다 비전과 야망을 보고 QPR 이적을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그가 꿈꾸는 비전과 야망을 위해 그가 지켜야 할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아니, 그가 지켜주길 바라는 것들을 정리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할 듯싶다.

맨유와의 아름다운 재회

박지성이 맨유에서 뛴 기간만 자그마치 7년이다. 박지성이 PSV에서 맨유로 이적할 때만해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가 20살 풋풋한 대학생이 되는 상당한 기간이다. 그 기간동안 박지성은 4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수많은 우승 메달을 차지했다.

물론 7년이란 기간동안 올드 트래포드에 있었다고 해서 박지성의 뼛속까지 맨유의 붉은색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7년이라는 기간동안 맨유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코칭 스태프와 동료들, 팬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선수였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7년간 정말 많은 것을 이뤄냈다.

박지성이 맨유의 레전드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 많은 맨유팬들의 레전드명단에 박지성의 이름은 없을지도 모른다. 박지성 역시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며 맨유의 레전드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키노 게이트' 사건으로 맨유에서 쫓겨나다시피 셀틱으로 이적한 로이 킨은 맨유팬들의 환영을 받으며 올드 트래포드에서 성대하게 은퇴경기를 치렀다. 퍼거슨 감독의 얼굴에 축구화를 발로 차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던 베컴 역시 AC밀란 소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경기차 올드 트래포드에 다시 돌아왔을 때 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물론 박지성이 맨유에서 로이 킨이나 베컴과 같은 존재감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기에 그들과 같은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맨유의 수 많은 팬들은 박지성의 맨유를 위한 수많은 헌신들을 기억하고 있다. QPR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포드에 들어서서 개고기송을 부르는 맨유의 팬들 앞에서 '저 잘 지내요'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라이언 긱스나 리오 퍼디난드, 루니나 에브라(!)의 은퇴경기가 있다면, 혹시 그들이 그들의 마지막 경기를 자신의 친구들과 보내기로 결정했다면, 그들이 결정한 자신의 친구들의 명단에 박지성의 이름이 있다면, 그곳에서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는 박지성의 모습을 기대해보는 것도 크게 무리없는 상상이지 않을까.

패배에 익숙해질 것, 여기는 맨유가 아니므로

'박지성 선발 = 맨유 승리'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었다. 실제로 2005년부터 박지성이 선발출장한 41경기 중 맨유가 34승 5무 2패라는 놀라운 승률을 기록했다는 영국의 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의 분석도 있었다.

박지성은 승리에 익숙한 선수이다. 일본의 교토 퍼플상가에서 천황컵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PSV 에서도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이라는 기록을 일구어 냈다. 맨유에서의 기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QPR 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QPR은 2부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16년만에 복귀했으며, 복귀 첫 시즌 역시 턱걸이로 강등을 면한 팀이다. QPR의 지난 시즌 성적은 10승 7무 21패로 가히 암담한 수준이다. '박지성 선발 = 소속팀 승리'라는 공식이 QPR에서 증명되어 QPR이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확률은 그닥 높지 않아 보인다.

박지성이 선발로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는 경기가 늘어날 것이다. 박지성은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 맨유에서의 7년뿐 아니라 PSV 시절까지 합친다면 근 10년간을 승률 80~90% 가 넘는 팀에서 뛴 박지성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반대다. 그것을 극복해내는 것은 오롯이 박지성에게 달린 문제다.

대한민국은 박지성을 기다린다

박지성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이후 온전히 클럽에만 집중하겠다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살인적인 잉글랜드 리그와 챔스리그, FA컵과 칼링컵을 뛰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대표팀 경기까지 있었으니 그의 몸이 성할리가 없었다.

대표팀 경기 역시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다. 대표팀에서도 단순한 친선경기였으면 바쁜 박지성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과 일본을 상대로, 본선에서 그리스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지성은 국가를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PSV 시절부터 그런 생활을 10년이나 반복했다. 클럽과 대표팀 경기를 번갈아 뛰면서 크고 작은 부상도 많이 입었다. 그 중 가장 큰 부상은 수술 이후 재활만 1년 넘게 해야하는 큰 부상이었고, 원인은 잦은 경기 출장으로 인한 피로누적이었다. 그의 결정은 충분히 존중할만한 결정이었다.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클럽팀에 집중하기 위해 대표팀을 그만두었는데, 잉글랜드의 폴 스콜스와 엘런 쉬어러가 좋은 예다.

맨유와 같은 빅클럽의 경우, 리그와 챔스리그, 리그컵을 포함한다면(토너먼트 대회에서 모두 결승까지 올라간다고 가정한다면) 1년에 최대 60경기 이상까지 일정이 빡빡하게 잡힌다. 일요일에 첼시와의 리그 경기를 뛰었는데 3일 뒤에 바르셀로나와 챔스리그 경기가 있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꼈다. QPR은 챔피언스 리그 혹은 유로파 리그에 꾸준히 출전하는 맨유 수준의 팀이 아니다. 또한 FA컵과 리그컵 역시 16강 혹은 잘해야 8강정도가 적당한 팀이다. 원하지 않아도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박지성은 대표팀 복귀를 한 번쯤 고려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기량을 테스트하는 평가전을 제외한다면 대표팀에서 박지성을 부르는 경기는 생각보다 숫자가 적다. 대표팀의 부름에 화답하면서도 소속팀의 경기에도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인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박지성의 복귀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박지성의 장시간 비행기 이동으로 인한 피로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훌륭한 피지컬 트레이너의 존재는 이에 가장 걸맞은 준비가 될 것이다. 훌륭한 피지컬 트레이너의 존재는 박지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은퇴번복의 좋은 예는 지네딘 지단과 마케렐레이다. 그들은 2006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유니폼을 다시 입었고, 그들의 프랑스가 2006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안정환과 이운재 역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서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지만, 그들이 대표팀 벤치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박지성의 나이는 34살일 것이다. 축구선수로서 내리막길을 걷는 나이이겠지만 축구는 젊고 팔팔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박지성보다는, 피치 위 혹은 피치 옆에서 즐기는 박지성의 모습을 조심스레나마 기대해본다.

박지성 QPR 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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