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네거리에 내걸린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의 대형 사진앞에서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세종로 네거리에 내걸린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의 대형 사진앞에서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02년 7월 2일 세종로 네거리에 내걸린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의 대형 사진앞에서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권우성


전국을 열광과 감동의 붉은 물결로 뒤덮었던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가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다. 한일월드컵은 한국축구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전까지 아시아의 강호를 자부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해 변방의 설움을 절감해야했던 한국 축구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는 데 한일월드컵의 의미가 있다.

당시 한일월드컵의 주역이었던 23인의 태극전사와 사령탑 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각자 어떻게 보냈을까.

월드컵 4강 주역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선수들과, 은퇴하여 후진양성에 전력하는 지도자들, 그리고 제 2의 인생을 모색하는 과도기 멤버들이다.

박지성, 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선수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모두 11명이다. 현역은 다시 해외파와 K리거로 나뉜다. 이중에서 2002년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단연 '산소탱크' 박지성(맨유)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무명에 불과했던 박지성은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로 일약 슈퍼스타로 발돋움 했다. 박지성은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 입성하며 유럽진출에 성공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고의 클럽인 맨유에 들어가 아시아 최고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아시안컵까지 대표 선수생활을 이어간 박지성은 세 차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모두 골을 기록한 첫 선수에 이름을 올렸으며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한국대표팀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 박지성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월드컵은 박지성 이외에도 수많은 월드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이영표(35)는 네덜란드 PSV, 잉글랜드 토트넘, 독일 도르트문트 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박지성과 함께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 이후에는 MLS(미국프로축구) 밴쿠버 화이트캡스FC에서 활약중이다. 차두리(32)는 독일 분데스리가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 등을 거쳐 최근 2년간은 스코틀랜스 셀틱에서 활약했고, 최근에는 다시 독일로 귀환하여 1부 승격팀 뒤셀도르프에 입단했다.

해외에서 활약하다가 말년이 되어 K리그로 돌아온 선수들도 많다. 한일월드컵 당시 박지성보다 더한 인기몰이를 한 '진공청소기' 김남일(35)과 '스나이퍼' 설기현은 인천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김남일은 K리그 수원을 거쳐 네덜란드-일본-러시아에서 해외경력을 이어갔다. '원조 해외파 1세대'로 불리는 설기현은 이미 한일월드컵 이전부터  밸기에 무대를 통해 유럽무대에서 활약했으며 월드컵 이후 프리미어리거로까지 성장했다. 2010년부터는 K리그로 귀환하여 포항-울산 등에서 활약했다. 현영민(33)과 최태욱(31)도 현재 FC서울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월드컵 멤버들이다.

재미있게도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골문을 책임졌던 3인방 이운재(39·전남드래곤즈), 김병지(42·경남FC), 최은성(41·전북현대)은 모두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골키퍼가 특수 포지션임을 감안해도 이들의 장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놀라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고참 김병지는 최근 K리그 최초 200경기 무실점(클린시트) 기록을 세웠고, K리그 최초의 600경기 출장 기록(현 586경기)도 눈앞에 두며 나이를 잊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덧 모두 팀 내 최고참이 되었다. 전성기를 지나 말년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이들 모두 나이를 잊은 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아, 이천수!

가장 안타까운 선수는 역시 이천수다. 한일월드컵 당시 조커로 활약하며 박지성보다 더 유럽무대에 근접한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이천수는 기구한 인생을 보냈다. 스페인에서의 첫 해외진출 실패 이후 2005년 울산에서 부활하며 K리그 MVP를 차지할 때만 해도 잘 나갔지만 이후 네덜란드 진출 실패와 수원-전남에서의 연이은 임의탈퇴 파문, 여기에 평탄하지못한 사생활 문제로 구설수에 올라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천수는 최근까지 일본에서 활약하다가 K리그 복귀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가운데 현재 소속팀이 없는 상태다.

은퇴한 선수들은 대부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02월드컵 당시 최고참 듀오였던 '캡틴' 홍명보(43)와 '황새'황선홍(44)은 월드컵 멤버들 중 가장 먼저 감독의 자리에 올라섰다. 홍명보 감독은 독일월드컵과 베이징올림픽, 아시안컵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09년 U-20월드컵 대표팀에서 첫 사령탑에 올랐고, 현재는 2012 런던올림픽 대표팀 수장을 맡고 있다.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과 철의 스리백을 형성했던 김태영도 수석 코치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K리그 부산 감독을 시작으로 현재 친정팀 포항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독수리' 최용수(39)가 FC서울 감독을, 전천후 플레이어 유상철은 대전의 지휘봉을 잡아 K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들로 자리매김했다.  터키전 프리킥골의 주인공이었던 '을용타' 이을용은 고향팀 강원의 스카우트로 활약하면서 실질적으로 2군 코치를 겸하고 있다. 이밖에도 수비수 이민성(39)은 용인시청 플레잉 코치로 활약중이며, 플레이메이커 윤정환(39)은 J리그 사간도스의 사령탑을 맡아 유일하게 해외무대에서 지도자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은퇴 후 또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인물들도 있다. 이탈리아전 역전골의 주인공으로 '반지의 제왕'으로 불리던 월드컵 판타지 스타 안정환(36)은 은퇴 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K리그 명예홍보 팀장을 맡아 한국 프로축구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히딩크의 황태자'였던 송종국(33)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한 후 한 종편 채널의 축구방송 해설가로 데뷔했고, 최근에는 MBC 댄싱위드더스타에 출연해 숨은 끼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스 히딩크, 이 사람 빼놓을 수 없지

뭐니뭐니해도 2002월드컵의 영웅이자 이후에도 가장 화려한 행보를 이어간 인물은 단연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지나 다소 하향세를 겪는 인물로 평가됐으나 한일월드컵 4강신화를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이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2002~2005 리그 2연패와 FA컵 우승), 호주 대표팀(2005~2006 독일월드컵 16강), 러시아 대표팀(2006~2010 유로 2008 4강), 잉글랜드 첼시(2009 챔스 4강과 FA컵 우승) 등을 맡아 가는 곳마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세계적인 지도자로 거듭났다.

비록 러시아의 2010 남아공월드컵 진출 실패와 터키의 유로 2012 본선진출 실패로 최근 연이어 좌절을 겪으며 다소 주춤했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그의 주가는 높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맨시티로 불리는 신흥 부자구단 안지 마하치칼라의 지휘봉을 맡아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개인 명의 사회복지재단을 통해 한국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축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를 준공했으며, 평창스폐셜 올림픽 홍보대사로도 선정됐다. 한국 감독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매년 꾸준히 한국을 찾으며 최근에는 2002한일월드컵 10주년을 맞아 월드컵 4강 멤버들로 구성된 '팀 2002'의 사령탑을 맡는 등 한국축구와의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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