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비>의 1회 주요 장면들

드라마 <사랑비>의 1회 주요 장면들 ⓒ KBS


자, 장근석의 이 대사를 들은 당신의 반응은? 

"하나 둘 셋, 3초 만에 난 사랑에 빠졌다."

1. 근짱, 愛しています(사랑해요).
2. 윤아야, 힘내!
2.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3.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사랑비>에 대한 반응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근짱' 장근석의 팬이라면 그의 순애보 연기와 감미로운 목소리를 환영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으랴. 소녀시대 윤아의 삼촌 팬도 빠뜨리면 서운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 1970년대의 순애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에 4%대까지 주저앉은 시청률에 대한 분석 기사도 속출하고 있다. 반응은 엇갈린다. 고작 2주 된 드라마를 놓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쪽과 시대 배경만큼이나 낡은 감성은 제아무리 <가을동화> <겨울연가>의 윤석호 PD와 오수연 작가라도 어쩔 수 없다는 쪽.

그마저도 낮은 시청률로 인해 대중들의 정당한 평가를 얻을 기회도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제작진은 4회 이후 현재로 넘어오며 극의 속도나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란 희망 섞인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사랑비>는 시청률 4~5%에 만족할 만한 작품일까.

 드라마 <사랑비> 포스터

드라마 <사랑비> 포스터 ⓒ KBS


70년대에 박제된 전반부, 현재 분량은 믿어도 될까? 

"70년대와 세대를 뛰어넘은 2012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비를 통해
지금 막 시작한 사랑의 행복과 슬픔,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된 사랑의 추억과 현재를 그려보려고 합니다."

<사랑비>의 제작의도다. 알려진 대로 <사랑비>는 1970년대 대학에서 만난 첫사랑 서인하(장근석, 정진영 분), 김윤희(윤아, 이미숙 분)와 그들의 아들·딸인 서준(장근석 분), 정하나(윤아 분)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리는 정통 멜로 드라마다. 4회까지 부모 세대의 사랑이 전개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한류스타 장근석과 윤아가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을 동시에 연기한다는 것을 주요 홍보 포인트로 삼았다.

다분히 한류 시장을 의식한 캐스팅이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욘사마' 창조의 일등공신인 윤석호 PD가 '근짱' 장근석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호재였을 테니. <사랑비>가 국내 안방극장 방영 전, 80여억 원에 일본에 선판매됐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사랑비>는 <겨울연가> 이후 '계절 시리즈'에 몰두했던 윤석호 PD가 <겨울연가>의 오수연 작가와 만나 <봄의 왈츠>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란 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사랑비>에서 장근석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서인하의 내레이션은 유독 달콤한 단문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일까. "나는 매일매일 당신의 행복을 바랄 겁니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미안해요"와 같은 짧고도 감미로운 내레이션이 일본 팬을 위한 서비스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드라마의 무기는 분명 이야기일 터. 현재까지 <사랑비>의 문제는 서사나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데 있다.

 드라마 <사랑비>에서 열연 중인 윤아와 장근석

드라마 <사랑비>에서 열연 중인 윤아와 장근석 ⓒ KBS


'제2의 욘사마' 장근석만이 아닌 <사랑비> 자체로 승부할 때

회고의 정서는 둘로 나뉜다. 신선하거나 지루하거나. 전자의 경우,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거나 이국적인 정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타 언어의 대중에게 해당한다. 물론 동시대를 통과한 대중은 각자 그 시대의 원경험을 소환하고 환기하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마이너스 요인은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과거의 배경이나 소재를 끌어온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사에 있어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 포스트모던이 휩쓸고 지나간 이 시대의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랑비>는 지루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일면 안타까운 장점도 곳곳에 존재한다.

윤석호 PD의 영상미는 여타 드라마에서 보여줄 수 없는 편안함을 동반한다. 장근석과 윤아가 마주치는 1회 첫 장면은 멜로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영화 <러브스토리>, 진추하의 노래 <원 서머 나잇>, 각종 포크송과 다방 문화, DJ 등 시대적인 배경들도 굳이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음악과 배경, 화면 등 드라마를 구축하는 각종 요소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비>는 클리셰들로 이루어진 동어 반복의 나열처럼 보인다. 대학 교정 앞에서는 꼭 우산이 없을 때 비가 와야 하고, 주인공은 꼭 경춘선 열차가 떠날 때쯤 도착하고, 친구는 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무수히 보고 또 보아왔던 전형적인 장면의 연속. 아마도 윤석호 PD와 <클래식> <엽기적인 그녀> 등을 만든 곽재용 감독은 적어도 멜로적 정서에 있어서는 같은 추억과 DNA를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두 사람은 실제 2살 차이다) 

<사랑비>는 4회까지 과거 첫사랑의 기억을 채워 넣을 예정이다. 첫사랑은 물론 개인에게 있어 순수함의 결정체로 완결된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보여주는 영상과 이야기마저 '박제'되어 있어서는 곤란하다. 무리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장근석과 윤아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마저 그 시절의 '캐리커처'들로 '박제'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진영과 이미숙이 연기하는 현재가 좀 더 촘촘한 짜임새와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채워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사랑비>가 일본을 비롯한 여타 시장에서 한국 영상 콘텐츠의 현재형으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겨울연가>가 만들어진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제2의 '욘사마'도 좋지만 <사랑비> 자체로도 만족스런 작품으로 각인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사랑비 장근석 윤아 윤석호 PD 겨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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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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