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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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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주민들이 발의하고,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 공포 마감일인 지난 1월 9일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그동안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는 대다수 위원들의 찬성으로 '서울시교육청은 지체없이 학생인권조례안을 공포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한 어떠한 회신도 없다가 '재의요구'라는 비교육적이고도 반민주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이는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며 평화롭고 행복한 학교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서울시 주민들의 바람을 일거에 무시하고 배척한 행위와 같다. 특히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축하하고, 효과적인 시행을 촉구했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평가조차 저버린 비상식적 사건이다. 

나아가 학생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그들의 천부적인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이념과 국제인권체제의 보편적 규범 또한 이러한 재의요구에 의해 무시되고 부정됐다는 점에서 서울시교육청의 무모함과 무가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재의요구의 이유들은 하나같이 법률과 법체계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시에 입각한 것으로 도저히 그 위법성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교육청의 재의요구안... 한마디로 '억지'다

지난해 10월 이대영 서울교육청 부교육감(앞줄 가운데)의 취임식 모습.
 지난해 10월 이대영 서울교육청 부교육감(앞줄 가운데)의 취임식 모습.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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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울시교육청이 시의회에 제출한 재의요구안(의안번호 관련106호) 제1항은 '학생인권조례안이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울시교육청 스스로가 누차에 걸쳐 잘못된 판단이라고 밝혀 온 것인 만큼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

학교의 자율성이라고 해서 무한정한 재량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한계 안에서 행사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의 기본권보장 조항에 따라 학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의 법적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재의요구안 제2항부터 제5항에서 열거하고 있는 사유는 급조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어느 것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8조 제1항이 요구하는 '시·도의회의 의결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한다고 판단될 때'에 해당되지 않는다.

짐작컨대, 그것들은 학생인권조례안이 상위법령에 위반했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의견이 서울시교육청 자체적인 검토 결과 오류임이 밝혀지자, 성급하게 새로운 핑계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사유일 것이다. 이 사유들은 객관성과 타당성을 상실한 논거들을 어설프게 끌어들이다 보니 견강부회격의 억지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학생인권위원회가 교육감을 옥죈다고요?

첫째, 서울시교육청의 재의요구안 제2항은 '학생인권조례안이 법령의 근거 없이 학생인권위원회 및 학생인권옹호관을 설치해 교육감의 인사권 및 정책결정권을 제한할 소지'가 있고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안은 재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판단의 근거로 들고 있는 '<헌법> 제117조 제1항, <지방자치법> 제22조 및 관련 판례'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 생활 교육과 관련해 교육감의 업무를 보좌하거나 그에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법들의 규율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자치법 제116조의2는 조례로서 자문기관 등의 행정조직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의회는 이 규정에 따라 각종 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있고,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도 그 조례에 의해 설치된 행정조직 중의 하나다.

아울러 서울시에는 법령의 근거가 전혀 없이 시의회가 독자적으로 설치·운영하고 있는 보좌기구도 적지 않다. <서울특별시 지속가능한 교통·환경시민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나 <서울특별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 <서울특별시 버스정책 시민위원회 조례> <서울특별시맑은서울시민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등은 그 예가 된다.

요약하건대 실제 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옹호관은 자문이나 권고권만 가지는 만큼, 그것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것은 시의회의 입법재량권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법령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감의 인사권 및 정책결정권을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방자치법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오는 오류라 할 것이다.

학생 집회의 자유 보장은 학습권과 충돌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서울교육희망네트웤, 인권단체연석회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등이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서울교육희망네트웤, 인권단체연석회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등이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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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재의요구안 제3항은 학생인권조례안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바람에 '특정 이념에 의해 학생들의 집회·시위가 주도될 경우 학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교사의 학생교육권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의견은 그 자체 위헌적, 반인권적이며 반교육적이다.

우리 헌법은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 양심과 사상은 자유롭게 형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특정 이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사고와 판단의 기준을 형성하는 것이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본법 제2조의 교육이념에 들어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이 '특정 이념'을 운운하면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놓는 것은 서울시교육청 스스로가 특정 정파에 치우친 고려를 하면서 정치적인 세력을 따라 좌고우면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물론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이는 집회는 더러 학내질서와 충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안은 이런 경우를 고려해 학생들의 집회를 보장하되 집회가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 방법에 대해서는 학교규정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집회로 인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이나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나름의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제시도 없이 무작정 학습권과 교육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이 학생인권조례안을 한번 읽어보기나 했는지 되묻고 싶다.

서울시교육청은 종교적 편견과 결별해야

셋째, '성적 지향'과 관련된 재의요구안 제4항은 처음부터 허위의 사실을 말하고 있다. 제4항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을 두고 '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 공청회에서 발표한 시안에도 논란 끝에 제외되었던 규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실제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가 지난해 9월 8일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학생인권조례초안에 관한 공청회를 할 당시 그 초안에는 '성적 지향'이라는 문구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논란 끝에 제외됐던 규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논의되지 않았기에 초안에 삽입되지 않았던 규정일 따름이다.

자문위원회가 초안을 만들 당시 '성적 지향에 관한 차별'이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 규정을 넣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은 이 엄연한 사실을 왜곡해 마치 자문위원회가 '성적 지향'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를 초안에서 삭제한 것인 양 거짓을 말하고 있다.

오히려 사실은 그 반대다. 자문위원회는 공청회에서 방청객들로부터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조항'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받았다. 아울러 보다 면밀한 현장실태조사를 거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 자의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자문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와 같은 차별금지조항이 학생현장에도 적용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바꿔 말하자면,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규정은 '논쟁 끝에 삭제'된 것이 아니라, '현장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절실한 규율의 필요성을 인식했기에 적극적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짓말에 그치지 않는다. 재의요구안 제4항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조항'에 대해 '청소년에게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그릇된 성인식'과 같은 표현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공문서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 제11조의 위반이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주장이다. 명백히 차별적이고 반 인권적이며 따라서 반 헌법적인 혐오발언(hate speech)이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고 있지만, 정교분리(헌법 제20조 제2항)라는 준엄한 헌법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서울시교육청은 국헌을 위반한 혐의로 별도의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재의요구안 제4항은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이자 동시에 중대한 차별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가의 감찰기관 혹은 최소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문구가 제정된 경위 및 의도, 그리고 취지 및 책임추궁 등을 직권조사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교육벌'이 뭡니까

넷째, 재의요구안 제5항은 두발, 휴대폰 등과 관련한 조례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엄중한 권고결정을 해 왔음을 무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5년 6월 27일, 두발규제는 반 인권적인 것으로 학교규정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29일에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이 준수하고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교육의 행정을 담당하는 서울시교육청이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시의회의 의결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5항의 서두에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은 모든 교육벌을 금지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라고 서술하는 부분은 정말 서울시교육청이 올바른 사유능력과 변별력을 갖춘 기관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학생인권조례안이 '교육벌'을 금지하는 것인가 아닌가는 제1차적인 해석권과 집행권을 갖는 서울시교육청이 결정해 지침으로 정할 사항이다. 특히 이 규정과 관련해 오해를 자아내는 주범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라는 개념이 아니라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교육벌'이라는 이상한 개념이다.

교과부는 체벌금지라는 시대적 요청을 거스르기 위해 우리 법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교육벌'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마치 학생훈육의 최후수단인 것처럼 떠벌려 왔다. 하지만 그 '교육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오해'를 해소시켜야 할 책임은 조례안을 의결하는 시의회가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이나 혹은 그 비법적 신조어를 창조한 교과부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오해'의 가능성을 이유로 서울시의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결단을 내릴 곳은 서울시의회다

9일 오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8명의 의원이 "학생인권조례 재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대영 부교육감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오전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8명의 의원이 "학생인권조례 재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대영 부교육감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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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서울시교육청이 재의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모든 사항들이 다 근거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이 모든 주장들은 하나같이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근거가 없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한 거짓말이거나 혹은 인권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교육적 목적이나 인권적 지향에 따르기 보다는 정파적인 이해관계 내지는 편견에 의거해 만들어진 억지에 불과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지체없이 이 재의요구를 철회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재의요구는 '위헌적' '반 인권적' '반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한 서울시 주민의 의사와 이를 의결한 서울시의회의 권위를 무시한 반 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재의요구를 즉각 거둬들여야 한다.

만약 서울시교육청이 재의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위법과 오류를 바로 잡을 책무는 서울시의회로 넘어간다. 서울시의회는 어처구니없는 재의요구를 반려하는 동시에 재의요구를 주도한 서울시교육청의 책임자에 대해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의요구는 상위법령에 위반하거나 혹은 공익에 현저한 침해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의 재의요구는 그 어떠한 근거도 갖추지 못하고 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허위사실까지 늘어놓으면서 인권보장이라는 전 인류적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한 서울시 주민의 의사와 이를 의결한 서울시의회의 권위까지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을 당대적 책무를 지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의회다.

학생인권조례는 행복하고도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는 현명하고도 냉철한 판단으로 이 엄중한 시대적 사명을 거스르지 않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한상희님은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시 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장입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재의요구, #서울시교육청, #성적 지향, #집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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