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포스터

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포스터 ⓒ (사)제주DPI

지난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제주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에서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가 열렸다. '병신들도 영화제를 하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열두 해를 버텨온 결과 이번 영화제에는 다수의 해외작품도 출품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은 '동(動)행(行) : 움직여서 행하라'이다.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움직여 행동하면 불가능한 일들도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본 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은 각각 한국과 미국 장애인들의 꿈을 보여준다. 두 영화 모두 다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커플이 나온다. 먼저 개막작인 <달팽이의 별>(감독:이승준)을 들여다 보자. 영화는 주인공 영찬의 나레이션으로부터 시작한다. 

"태초에 어둠과 적막이 있었다.
그 어둠과 적막은 신과 함께 있었고
'나'가 나타나자 '나'에게로 왔다"

영찬은 아주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잃기 시작,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온통 소음뿐인 상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고 단절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호'라고 불리는 한 여자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키가 아주 작고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영찬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하고, 아주 외로웠던 이 달팽이는 눈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고, 그 만의 언어로 수필과 시를 쓰는가 하면 연극 대본을 써서 아내로 하여금 연출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영찬, 그러나 그에게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것은 있다. 바로 그의 통역자이자 안내인인 아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한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순호 없이는 영찬이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행 훈련. 어느날 영찬은 아내 없이 혼자 사회복지관 차를 타고 보행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온다. 아내와의 그 짧은 헤어짐에도 서로의 재회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 소개 동영상 ⓒ 이승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많은 장면들이 머리 속에 남아 떠나질 않는다.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장면이다. 키 작은 아내를 대신하여 형광등을 갈아끼우려고 한다. 볼 수 없고, 들리지도 않는데도 아내의 손을 통해 형광등 갈아끼우는 과정에 대해 세세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은 소통을 통해 형광등 갈아 끼우기를 성공시킨다.

귀로 듣고, 입으로 이야기 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부부는 맞닿아 있는 손을 통해 감촉으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이 그들의 소통 방법이다. 기억나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비가 내리는 베란다에서 빗물을 즐기는 영찬의 모습이다. 그가 사람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통하며 살지 못하는 우리가 더 장애인임을 깨달았다.

<달팽이의 별>의 남녀 주인공 실제 장애인인 조영찬씨와 김순호씨. 서로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인 부부다. 시청각 장애인인 조영찬 씨는 현재 나사레 대학에 재학중이다.

▲ <달팽이의 별>의 남녀 주인공 실제 장애인인 조영찬씨와 김순호씨. 서로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인 부부다. 시청각 장애인인 조영찬 씨는 현재 나사레 대학에 재학중이다. ⓒ 신창범


영화의 주인공인 조영찬씨와 김순호씨. 이 영화가 가진 힘은 솔직히 말하자면 감독의 역랑보다 이 두 배우가 가진 매력에 더 의존한다. 아 물론 이 배우들을 찾아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영찬은 실제로도 탁월한 언어의 마술사다. 그의 마지막 독백은 영화자막이 다 올라간 뒤에도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것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비장애인인 나로서도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화에서건 실제상황에서건 그들만의 소통방법으로 형광등을 갈아끼운다. 그리고 기뻐한다. 그 장면을 통해 나는 장애에 관계없이 서로가 이해를 하고 차이를 인정한다면 불가능은 없음을 배웠다. 그들은 서로 채워주며 진실한 상생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비장애인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인데도 불구하고 장애라는 이유로 쉽게 누릴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존재인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듣지도 못하고, 볼수도 없는 데도 대학을 다니고 남들과 같이 나름의 일상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삶을 즐기며 사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타인과 더 소통해 봐야한다;;;

폐막작은 미국의 엘리스 엘리엇 감독이 출품한 <바디 앤 소울>로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는 혼자서는 전혀 거동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를 가진 한 여성과 신체 활동에는 전혀 지장 없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한 여성 간의 놀라운 관계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무려 37년을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의지한 채 요양시설을 거부하고 단독주택에서 그들만의 의미있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녀들은 그 장대한 실험을 통해 획일적인 요양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을 고발하며 소위 '제도권'에서 빠져나와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옹호자가 되었다.

우리는 비범함을 경외한다.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등반가, 인생역전, 고통을 이겨낸 이들의 영화 같은 삶에 박수치며 환호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우상화한다. 도달할 수 없는 나의 평범함을 그들이 대신 메워줌으로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얻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디 앤 소울> 제주인권영화제의 폐막작 <바디 앤 소울>(감독: 엘리스 엘리엇)

▲ <바디 앤 소울> 제주인권영화제의 폐막작 <바디 앤 소울>(감독: 엘리스 엘리엇) ⓒ 신창범


그러나 영화 <바디 앤 소울>의 두 주인공은 전혀 비범하지 못하다. 뇌병변장애의 케이시와 다운증후군의 다이애나는 그들만의 공간인 집에서 음식을 먹고, 외출을 하고, 지출이 수입을 넘겨버린 가계부를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그래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민들이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의 폭력에 정신적‧육체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다이애나의 어머니에 대한 간곡한 그리움. 그런 다이애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케이시의 우정이 영화 내내 잔잔하게 흐른다.

영화는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평범하지 못한 굴곡을 그리고 있다. 케이시와 다이애나는 그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일리노이 주정부에 이의를 제기하고 타협하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정당성과 그 삶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네들의 모습은 결코 전사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결코 TV드라마를 보듯이 편안하게 보며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어떤 것을 보게 된다. 삶. 그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결코 평범한 일상일 수 없는 수많은 편견과 난관을 거치고 나서야 이룩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케이시는 뇌병변장애의 중증장애인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몸. 그런 그녀가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진정한 친구이자 비서로서 37년이나 함께 하고 있는 다이애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애나 역시 다운증후군장애인. 장애인에 대해 단호한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한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길 원한다.

케이시와 다이애나의 일상은 결코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을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라는 것에 대해 지독한 편견과 올바르지 않은 우려를 통해 보다 쉽게 통제하고 관리될 수 있는 규격화된 모델케이스를 두고 그 모델이 제시하는 형태 안에 있었을 때만이 장애인들이 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고착된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시와 다이애나 그네들의 삶은 장애인은 시설에서의 생활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위험하고 지극히 염려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평범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하다. 케이시와 다이애나는 그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마당에 심은 토마토를 따고, 물건을 사기 위해 외출하며 교회를 찾거나 여행을 하는 등의 일상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말이다. 이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은 장애인 역시 독립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는 한 인간임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장애인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거리를 활보하며 주전부리를 하고, 마음이 동하면 가방하나 챙겨서 훌쩍 떠날 수 있는 우리 누구나가 꿈꾸는 사소한 일상성들이다. 그것은 정상인의 그것과 아주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자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꾸게 되는 원초적인 욕망이자 꿈이다. 누구나 꿈꾸는 그 자유를 향해 그 나약한 몸뚱이로 나아가는 케이시와 다이애나의 <바디 앤 소울>과 조영찬의 <달팽이의 별>은 그래서 결국 같은 맥락이다.

폐막식에 참석한 사람들 폐막식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무대로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 폐막식에 참석한 사람들 폐막식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무대로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 신창범


'제12회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의 개폐막작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과 자유란 것이 결코 누군가에 의해 규격화되거나 도식화될 수 없음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노인요양시설 문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어떤 수용시설이든 인권침해는 일어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재 장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늙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래 우리들이 겪어야 할 인권의 문제를 이 영화를 통해 배운다. 결국 해결은 소통에 있다. 문제를 알고 있다면 소통해서 풀어야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정례화된 모델이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해당시킬 수 있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개별적이고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인간의 삶이 어떻게 천편일률적인 규격화에 맞춰질 수 있단 말인가?  

제주장애인인권영화제 (주)제주DPI 제주영상미디어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