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장이 뛴다> 포스터

영화 <심장이 뛴다> 포스터 ⓒ (주)오죤필름

관객들이 불편해 하는 영화들이 있다. 하드고어처럼 영상의 표현이 잔인하거나, 인간의 감추고 싶은 본질을 까발릴 때 혹은 지켜야 할 가치를 훼손하려 할 때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불편해 한다.

하지만 불편한 표현과 설정이 있더라도 그 불편함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하거나 주제에 대한 치열하고 깊이 있는 고민으로 영화에 진정성이 담겨 있을 때 관객들은 비로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영화에 감동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심장이 뛴다>도 불편한 상황들이 가득한 영화이다. 심장병이 있는 어린 딸을 살리려는 엄마와 뇌사 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살리려는 아들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어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채연희(김윤진)에게는 심장이식이 필요한 딸이 있다. 하지만 딸의 희귀한 혈액형으로 인해 심장 기증을 받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점차 상태가 악화되는 딸을 보면서 연희는 하루를 희망으로 시작해 절망으로 마무리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연희 앞에 딸의 혈액형과 일치하는 뇌사상태의 환자가 나타난다. 연희는 환자의 아들인 양아치 이휘도(박해일)에게 불법적으로 돈을 건네고 심장 기증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 낸다. 하지만 휘도는 어머니의 뇌사상태를 의심하며 심장 기증을 번복하고 어머니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이런 휘도의 돌발행동에 당혹해 하며 극도의 조급증에 빠진 연희는 휘도를 찾아 나서고, 휘도는 연희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어머니를 지키려 한다. 그렇게 둘은 양심과 비양심, 상식과 몰상식,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한 사투를 시작한다.

 연희(김윤진)에게는 심장이식이 절실한 딸이 있다.

연희(김윤진)에게는 심장이식이 절실한 딸이 있다. ⓒ (주)오죤필름


이처럼 영화는 평범한 두 주인공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소중한 사람을 해쳐야 하는, 그리고 해치려는 마음이 '모정'에서 비롯된다는 지극히 불편하고도 모순적인 상황으로 설정한다.

영화 <심장이 뛴다>처럼 설정과 소재가 불편한 영화들이 있었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각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두 주인공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모정이 과연 옳고 아름다운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닮아 있다.

하지만 <심장이 뛴다>는 아쉽게도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비해 주제의식, 완성도, 재미 거의 모든 측면에서 뒤처진다. 이는 감독의 연출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심장이 뛴다>는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주먹이 운다>와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두 감독 모두 인물의 삶, 성격, 감정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건조하게 보여주면서 인물과 관객 사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캐릭터와 상황의 이해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둠으로써 <주먹이 운다>는 어느 한 쪽도 응원할 수 없는 슬픔을,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의 허망함과 무정함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뛴다>는 불편한 영화일수록 연출과 표현에 절제가 있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과잉으로 치닫는다. 배우들의 자극적인 감정연기는 빈번하게 폭발하고, 갈등을 고조시키는 작위적인 설정은 몰아치듯 중첩된다. 관객들은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데 그 불편함을 상영시간 내내 강조하고 주입하다 보니 불쾌하고 짜증이 나게 된다.

 휘도(박해일)와 연희(김윤진)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소중한 사람을 해쳐야 한다.

휘도(박해일)와 연희(김윤진)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소중한 사람을 해쳐야 한다. ⓒ (주)오죤필름


그리고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도 부족하다. <마더>를 보면 숭고한 모정, 즉 우리가 절대선으로 여기는 가치라도 타인에게는 잔인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감독은 냉철하고 뚝심 있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은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전적으로 주제에 대한 감독의 치열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산물이다.

하지만 <심장이 뛴다>는 어그러진 모정, 장기밀매로 보여주는 인간의 존엄, 상류층과 양아치의 대립이라는 사회계급의 문제 등 녹록지 않은 소재들이 내재되어 있지만 각기 따로 논다. 서사의 개연성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만 작용할 뿐 울림이 있는 주제로 발전하지 못한다. 특히 두 주인공이 영화 내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말미에 와서는 위대한 모정이라는 통속적인 가치관에 급격하게 귀환하면서 영화는 생뚱맞은 신파가 돼 버린다.

결론적으로 영화 <심장이 뛴다>는 범상치 않은 소재와 설정으로 기획은 참신했지만 감독의 과잉된 연출, 결핍된 주제의식으로 인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뜨거운 대결'이 아니라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짜증나는 대결'이 되고 말았다.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감독의 연출력은 절대적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보다도 어쩌면 그 역할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감독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심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심장이 뛴다>는 심장이 뛰다가 멈춰버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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