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느와르 스틸컷

▲ 카페 느와르 스틸컷 ⓒ 영화사 북극성

<카페 느와르>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첫 감독 데뷔작이죠. 이미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실히 하고 있는 사람이, 그것도 영화평론가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이 여태 것 해왔던 일인 비평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성일씨가 영화감독으로 도전한 것에 대해서 큰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가 이렇게 첫 발을 내디딘 것에 대해서 큰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은 그가 이전에 걸어왔던 길, 그리고 도전 정신과 별개로 생각해야 될 부분이겠죠.

 

이 영화 정말 스타일이 독특해요. 주로 문장에서 쓰이는 문어체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어요. 영화가 이렇게 된 것은 괴테의 서한체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 <백야>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영화에 대한 성격을 나열하고 보면 <카페 느와르>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눈에 보여요. 문어체 스타일에 고전소설을 인용한 영화. 정성일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마치 책을 보는 것 같은 스타일을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런 스타일이 과연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영수(신하균)는 중학교 음악교사로 같은 학교 선생인 미연(김혜나)과 이미 연인 사이에요. 하지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학부모 미연(문정희)과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이미 권태기에 접어들었던 그에게 미연(문정희)과의 사랑은 불륜이지만 뜨거워요. 하지만 미연(문정희)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게 되고 말아요. 너무나 뜨겁게 사랑했던 영수이기에 쉽게 미연(문정희)을 놓아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미 미연(문정희)의 마음을 돌리기에 너무 늦었죠. 미연(문정희)과 헤어진 후 청계천을 걷던 영수는 우연히 선화(정유미)를 치한으로부터 구해주게 되고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되죠. 영수는 편지를 쓰서 선화의 옛 사랑과 그녀를 연결시켜는 역할을 하게 되어요. 하지만 영수의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죠.

 

이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의 이야기가 각색되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영화가 1, 2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정성일 감독이 스스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작품은 '교양의 영화', 그리고 '인용의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최소한 두 작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만 문어체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작품엔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등 다수의 영화들 역시 오마쥬 형태로 인용되고 있어요. 따라서 문학과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지 못한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과연 '교양의 영화', 그리고 '인용의 영화'라고 하는 이 작품이 정말 한국영화사에 남을 걸작 혹은 수작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면 고개를 가로 젓게 될 것 같아요.

 

관객들이 보기에 과연 이 작품이 파격적이고 뛰어난가?

 

카페 느와르 스틸컷

▲ 카페 느와르 스틸컷 ⓒ 영화사 북극성

영화는 예술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으며, 감독의 작가주의 관점이 들어간 영화들도 있어요. 여기에 상업적인 감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도 있죠. 상업적이라고 해서 걸작이나 수작이 되지 말란 법은 없어요. 그리고 작가주의 영화나 예술영화라고 해도 졸작이나 평작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예술영화나 작가주의 영화가 평작이나 졸작이 되는 지름길은 대부분 감독이 생각하는 의도만 왕창 들어가서 관객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죠.

 

<카페 느와르>는 그런 길들을 아주 정형적인 코스로 밝아가고 있어요. 아무리 이 작품이 '교양의 영화', 그리고 '인용의 영화'라고 해도 3시간 10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충분히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자발적으로 작품을 해체하고 나름대로 분석할 수 있는 연관성을 가져다주어야 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지루함은 둘째 문제이고, 영화나 문학에 대한 조회가 깊지 않다면 이 작품에서 인용된 연관성을 찾기도 벅찰 것 같아요. 그만큼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란 의미가 되겠죠.

 

이렇게 되면 정말 <카페 느와르>가 형식적으로 조금 독특하고 이야기 전개방식이 최근에 나온 한국 영화와 다르다고 해서 수작이나 걸작 정도의 위치에 있는 영화인지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한 부분에서 나와요. 자신만 아는 '모스부호'로 영화를 만들어 놓고 그 '모스부호'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라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그 비밀을 찾으려고 노력할까요?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친절은 베풀어 놓고 그 의미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 올바른 처사가 아닐까요? 물론 영화 비평 혹은 평론가로 살아가기 위해서 고전부터 현대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섭렵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감독 스스로 자신이 관객보다 우월하단 자의식을 영화에 내비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이 작품에서 또 한 가지 문제는 좋은 배우들을 대려다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부분이에요. 신하균, 문정희, 정유미 같은 연기력 뒷받침 되는 배우들이 나옴에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과 외로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히 풍겨주는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어요.

 

오로지 감독 의도만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나 연기력, 그리고 자신만의 색은 전혀 영화에 나타나지 않는단 것이죠. 아무리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색을 만들어주고 관객들 기억에 오랫동안 남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감독의 몫이기도 하죠.

 

<카페 느와르>는 한국에서 유명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처음으로 감독 데뷔했다는 것 외에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특히 한국영화사에 수작이나 걸작으로 남은 유현묵 감독의 <오발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이창동 감독의 <시>,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등이 관객들에게 어떤 호불호의 감정을 남겨주었는지 떠올려보면 <카페 느와르>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눈에 너무 들여다보여요.

 

한국영화사에 남은 수작이나 걸작들은 시대를 앞서나가거나 혹은 난해하면서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도 관객들과 함께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어요. 하지만 <카페 느와르>는 이미 감독 스스로 관객보다 자신이 한 수 위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진심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관객이 몇 명이나 될까요?

덧붙이는 글 | 국내개봉 2010년 12월30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1.04 08:31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국내개봉 2010년 12월30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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