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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에 들어가기 전에 소양2교 앞에서 다함께!
▲ 타임캡슐 청평사에 들어가기 전에 소양2교 앞에서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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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4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3 담당교사였던 나와 고3 제자 세 명이 함께했다. 우리는 서대전역에서 출발하여 서울역, 청량리를 거쳐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에 내려 소양댐을 지나 청평사까지 고3 시름을 달래며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

그때 우리는 청평사 맞은편 바위 아래 타임캡슐을 묻었다. '10년 후에 나의 모습'을 적어서 캡슐 안에 넣었다. 그리고 10년 후에 다시 만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타임캡슐 캐러 가셔야죠."

현재 육군 대위인 김석진 제자와 그의 부인. 한 달 후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 건강한 아가 순산하기를 기원한다.
▲ 타임캡슐 현재 육군 대위인 김석진 제자와 그의 부인. 한 달 후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 건강한 아가 순산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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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석진(29, 육군 대위)이가 전화를 했다. 작년에 결혼했고, 필자가 주례를 섰다. 주례를 청하러 오던 날 타임캡슐을 캐러 갈 때 신부도 동행하기로 했다. 신부는 현재 임신 9개월째다.

나는 기분 좋게 맞장구를 치고 10년 전에 함께 여행했던 두 제자와도 소통했다. 한 명은 정영균. 중국 유학을 몇 차례 다녀온 후 지금은 천안에 있는 IT 회사에 근무 중이다. 다른 한 명은 하재홍.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 10월에 결혼했고, 일주일 전 임신 소식을 들었다.

각자 자기 생활에 분주한 터라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2010년 11월 13일(토)엔 천지개벽이 없는 한 모두 모이기로 했다. 10년 만에 타임캡슐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모두 설렜다.

당시 열아홉 살이자 고3 제자들이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나는 마흔 살 선생에서 쉰 살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함께하는 여행 그 자체가 즐거웠다. 10년 전, 타임캡슐 안에 적어놓은 다짐들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10년 전과 똑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으나 10년이 지나며 교통 환경이 변한 까닭에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전-춘천-소양댐-청평사'가 이동 경로다.

13일 오전 6시. 재홍이랑 영균이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우리 셋이 대전에서 춘천으로 가면, 경기도 연천에서 장교 생활을 하고 있는 석진이가 아내와 함께 합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운전은 재홍이가 맡았다.

대전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 셋은 줄곧 이야기꽃을 피웠다. 10년 전 고3 생활의 아픔을 되짚어 보고, 당시 여행이 준 의미와 가치를 논했다. 멀리 동쪽에서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날씨 또한 쾌청 그 자체였다.

세 명의 제자와 함께한 '아름다운 여행'

춘천에 도착했다. 소양2교를 건너 해장국집에서 석진이 부부와 합류했다. 반주로 마시는 소주가 전혀 쓰지 않았다. 나는 감기 몸살이 심해 전날 주사를 맞았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건배 제안을 했다. 다섯 명의 건배사를 종합하면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이다.

5년 후에 우리의 모습을 담아 새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 타임캡슐 5년 후에 우리의 모습을 담아 새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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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년 만에 타임캡슐을 캐니까 다시 타임캡슐을 묻자! 그리고 2020년에 또 오자! 내 나이 육십, 칠십…. 팔십 때는 움직이기 어려울 것도 같고, 앞으로 두어 번은 더 올 수 있겠지?"

나의 제안에 영균이가 수정 제안을 했다.

"10년이면 너무 많습니다. 5년 단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랑 자주 볼 수 있잖아요. 5년이면 세상도 너무 쉽게 변하고요."

영균이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영균이의 제안에 뭉클해진 나는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몰래 술잔에 담았다. 해장국, 해장술에 얼큰해진 우리는 5년 후에 우리 모습을 그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롭게 합류한 석진이 아내는 가장 늦게까지 글을 썼다. 군인의 아내로서 세심하고 신중한 모습에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소주병으로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각자 쓴 글을 돌돌 말아서 소주병에 담았다. 5년 후에 우리가 오늘 다짐한 말들이 현실화되어 있을까?

아아, 타임캡슐은 잘 있을까?

소양댐에서 같은 모습으로 다함께
▲ 타임캡슐 소양댐에서 같은 모습으로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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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2교 인근 해장국집부터는 차량 한 대로 이동했다. 소양댐에 도착하자 10년 전 여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소양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청평사로 가는 유람선 선착장에 당도했다. 석진이와 석진이 아내가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총각인 영균이가 시샘을 했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소양호 가을 풍광이 엄마 품처럼 포근했다.

청평사 초입에는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나들이객들로 붐볐다. 10년 전에 우리가 함께했던 막국수 집 앞에 잠시 머물렀다. 그때 우리는 계곡에 발을 담그며 고3 시름을 달래기도 했었다. 허기졌을 때, 그것도 처음 경험하는 맛난 음식은 평생 간다. '그때 여기서 먹었던 막국수 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이구동성이 이어졌다.

'아아, 타임캡슐은 잘 있을까요?' 설레고 떨린다는 영균이와 재홍이는 자신들이 10년 전에 뭐라고 다짐했을까 궁금해하며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임신 9개월 된 석진이 아내를 위해 가급적 천천히 걸었다. 석진이는 시종일관 아내를 챙겼다. 석진이 아내는 남편의 10년 전 다짐을 그리며 힘든 표정 한번 없이 동행했다. 계곡 물소리와 가을 단풍과 좋은 사람들이 만난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10년 전 우리가 묻은 타임캡슐은 잘 있을까?
▲ 타임캡슐 10년 전 우리가 묻은 타임캡슐은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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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에 도착하자 세 명의 제자들이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바위를 찾았다. 청평사 맞은편 계곡을 지나면 큰 바위 두 개가 있다. 우리 넷의 기억이 일치했다. 바로 두 번째 바위 아래였다. 제자들은 보물단지를 찾듯이 바위 아래를 뒤지기 시작했다.

파고 또 파도 타임캡슐은 드러나지 않고~
▲ 타임캡슐 파고 또 파도 타임캡슐은 드러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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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쌓인 흙과 낙엽이 수십 센티가량 덮여 있었다. 바위 아래 반경 1미터 이내에 타임캡슐이 묻혔으리라고 단정한 우리는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이용해 바위 아래를 파헤쳤다. 30분 이상 찾았으나 타임캡슐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 캐내지 못하면 야영을 해서라도 캐내겠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타임캡슐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타임캡슐 분명 여기가 맞는데~ 타임캡슐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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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타임캡슐은 안 나오고~
▲ 타임캡슐 원하는 타임캡슐은 안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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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돌았다. 오늘 캐내지 못하면 야영을 해서라도 캐내겠다는 육군 대위 석진이의 농담이 이어지자 비닐봉지에 담긴 소주병 두 개가 출토되기도 했다. 우리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나는 청평사 관리인을 만나 사정을 말하고 삽과 곡괭이를 빌렸다. 그리고 현장으로 가려는데 제자들의 함성이 들렸다.

"선생님! 찾았어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우리만의 타임캡슐
▲ 타임캡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우리만의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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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일단 캐내서 기쁘다!
▲ 타임캡슐 아아, 일단 캐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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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이 달려갔다. 소주병 타임캡슐이 바위 아래 틈 속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소주병 안에 둘둘 말린 종이 뭉치도 보였다. 기쁜 마음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새 타임캡슐을 그 자리에 묻었다. 10년 전, 과연 우리는 무슨 각오를 했을까?

10년 전 우리는 이곳에서도 하나였다.
▲ 타임캡슐 10년 전 우리는 이곳에서도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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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일까?
▲ 타임캡슐 5년 후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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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타임캡슐과 새 타임캡슐
▲ 타임캡슐 10년 전 타임캡슐과 새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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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에 캘 때는 절대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 타임캡슐 5년 후에 캘 때는 절대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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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총각인 영균이. 10년 전 고3때 쓴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 달 전에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여 신부를 구하고 있다.
▲ 타임캡슐 유일하게 총각인 영균이. 10년 전 고3때 쓴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 달 전에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여 신부를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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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명화가 이보다 아름다우랴!

우리는 당장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설렘과 긴장감에 함부로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타임캡슐은 점심 먹을 때 개봉하기로 했다.

청평사를 빠져나와 춘천 시내 닭갈비로 유명한 집에 들어갔다. 일단 동동주를 마셨다. 동동주에 얼큰해지기까지도 아무도 열어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카메라 가방 속에 보관된 타임캡슐을 꺼냈다. 양손을 비비며 긴장된다는 영균이 표정이 소년 같았다.

지난 10월 2일에 결혼한 재홍이는 "아내가 오지 못해 이 자리를 함께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균이는 "분명 책잡힐 내용이 있을 것"이라며 "안 온 걸 다행으로 알라"고 농담을 했다.

석진이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남편의 10년 전 다짐을 기대하고 있었다.

지난 10월2일에 결혼한 재홍이가 고3 때 썼던 글을 읽고 있다. 일주일 전에 임신 소식을 접해 아내가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다. 5년 후에는 꼭 함께 오기로 했다.
▲ 타임캡슐 지난 10월2일에 결혼한 재홍이가 고3 때 썼던 글을 읽고 있다. 일주일 전에 임신 소식을 접해 아내가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다. 5년 후에는 꼭 함께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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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박두! 그 어떤 명화가 이보다 아름다우랴! 나는 소주병 뚜껑을 힘주어 열었다.

돌돌 말려 박제가 된 종이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주둥이를 깨고 종이를 꺼냈다. 10년 전 주인에게로 종이가 갔다. 우리 셋은 제각각 혼자서 읽었고, 석진이만 둘이서 읽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영균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영균이는 닭갈비 연기가 눈에 들어갔다며 애써 눈물을 감췄다.

왜 그랬을까? 내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모처럼 흘려보는 기쁨의 눈물, 사제동행 눈물이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10년 전에 쓴 글을 낭독했다. 우리는 적잖게 놀라며 박수를 쳤다. 10년 전에 다짐했던 내용들이 10년 후에 대체로 실현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10년 전에 소망했던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석진이는 군인의 길, 재홍이는 회사원, 영균이는 최첨단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고 썼다. 나는 좋은 선생 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썼다. 우리의 그때 소망이 오롯하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김석진 - 이상미 부부가 10년 전에 타임캡슐에 묻었던 글을 보며 웃고 있다.
▲ 타임캡슐 김석진 - 이상미 부부가 10년 전에 타임캡슐에 묻었던 글을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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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사생활에 해당하는 내용은 침묵한다. 다만 19세, 고3 시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없다면 10년 전 타임캡슐은 가벼운 존재였으리라. 행여 살아가면서 이해 당사자가 계신다면 그 사랑 이야기는 '우리'만 알기로 했다는 점을 이해하고 절대 캐묻지 않기를 당부한다. 웃자.

5년 후 다시 타임캡슐을 캐는 날 기다리며...

10년 전 고3 때 영균이가 쓴 글이다. 영균아! 5년 후엔 울지 말고 환하게 웃자!
▲ 타임캡슐 10년 전 고3 때 영균이가 쓴 글이다. 영균아! 5년 후엔 울지 말고 환하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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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우리는 같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가족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꽤 많은 인원이 될 것이다. 5년 후 다시 타임캡슐을 캐는 날, 소망을 실현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좋겠다.

5년 후에는 가족 모두 동참하기로 했다.
▲ 타임캡슐 5년 후에는 가족 모두 동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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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굳게 다짐했다. 우리가 함께할 2세들에게도 소망을 쓰게 하고 후손 대대로 타임캡슐을 이어갈 것이라고. 좋은 선생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선생 노릇 하기 참 잘했다고 자위한다. 죽어서도 선생이 된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나만의 특종' 응모작



태그:#타임캡슐, #청평사, #소양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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