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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전 아마 천국 가기 틀렸어요. 천국 입구에서 닭들이 줄지어 입구를 막고있을걸요."

김제 변두리에서 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숙(35)씨는 스스로 천국 가기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남한테 못할 짓 하면서 나쁘게 산 것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 닭을 잡아서 닭들이 자신을 훼방놓을 것이다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몇 마리나 잡았냐구요? 한 일년 넘게 열심히 잡았으니까 아마도 수천마리는 되지 않을까요? 한 몇백 마리만 되어도 입구에서 닭들을 피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텐데… 너무 숫자가 많으니까 전부 피해서 가기는 어렵겠죠?"

가족을 위해 그리고 손님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맛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칼을 뽑아든 아줌마 정은숙씨.
 가족을 위해 그리고 손님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맛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칼을 뽑아든 아줌마 정은숙씨.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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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은숙씨를 아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녀가 닭을 잡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여성스러운 성격에 눈물도 많고 감수성도 풍부한지라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울리고 말고 그런 것 어딨어요. 제가 하는 일이 이건데…, 그리고 먹고 살아야하잖아요. 열심히 닭을 잡아서 팔아야 돈도 벌고 우리 자식들도 잘 키울 수 있고… 뭐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좋아서 닭을 잡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정은숙씨 역시 한가정의 엄마로서 생활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을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시골에서 농장을 하고있는지라 현재로서는 자신이 닭집을 하는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속 있다.

사실 처음부터 정은숙씨가 닭을 잘(?)잡았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바퀴벌레 한 마리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사나운 개만 근처에 보여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그녀였다.

때문에 닭을 잡는다는 것은 정은숙씨에게 일종의 도전이었고 익숙하지 않았던 일인만큼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참 많았다.

"닭잡는게 서툴던 시절, 분명히 죽였다고 생각하고 다음 일을 하려는데 닭이 살아있는 거에요. 얼마나 놀라고, 닭한테 미안했는지…. 그냥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어요."

물론 아직도 그녀는 베테랑이라고 하기에는 멀었다. 일년 남짓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어느 정도 일은 손에 익었지만 지역 내에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한 사람들도 있으니 구태여 비교하자면 아직은 때묻지 않은(?) 신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저희가 취급하는 닭은 농장에서 방사한 닭들이에요. 방사한 닭은 먹이도 두 배로 먹기 때문에 막 팔지도 못해요. 아시잖아요? 뭐든지 자연산이 좋은 것,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현장에서 직접 잡아서 손질해주는 길을 택한 것이죠."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그래도 한 번 맛본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때는 더없이 반갑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격가지고 불평을 가지던 사람들도 맛을 본 다음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 일쑤고 그럴 때면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음식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그렇잖아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맛있다고 칭찬해주면 힘이 불끈불끈 솟는 그런 기분말이에요. 아직 갈길은 멀지만 좀더 열심히 노력해 그런 기분을 자주 느껴보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손님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맛보여주기 위해 과감하게 칼을 뽑아든 아줌마 정은숙씨. 그녀는 오늘도 보람찬 마음으로 닭 잡는 칼에 힘을 쥐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디지털 김제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닭집 아줌마, #닭고기, #가족을 위해, #자연산, #직업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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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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