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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검찰이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를 포섭한 것으로 지목한 대남공작원 리철운(왼쪽에서 두 번째, 본명 리철)은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대기업 총수) 간담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리호남 내각 참사 국정원과 검찰이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를 포섭한 것으로 지목한 대남공작원 리철운(왼쪽에서 두 번째, 본명 리철)은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대기업 총수) 간담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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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월 5일 오후8시 ]

국가정보원은 지난 6월 1일 국가안전기획부 공작원(암호명 흑금성) 출신의 박채서(56)씨를 간첩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국정원의 수사기록과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씨를 포섭한 반국가단체(북한) 구성원은 리호남(56, 본명은 리철)이라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소속 대남공작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이자 신주류로 통하는 이재오 특임장관과 임태희 대통령실장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구천서 전 의원 등이 리호남 '내각 참사'와 접촉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리호남과 접촉한 남한 인사들에 따르면, 리씨는 여러 직함을 사용했으나 지난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그는 남북 경제인 간담회에 '민경련 참사'(실제로는 '내각 참사')의 직함으로 참석했다. 그해 10월 3일 당시 대기업 부문 간담회에는 남측의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단장으로 해서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7명이 대표로 참석했고, 북측은 한봉춘 내각 참사를 단장으로 해서 리호남 참사 등 5명이 대표로 참석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가 공개회담에서 사용한 직함인 '내각 참사'로 지칭한다.)

관련 기사 : 안희정 비밀접촉 리호남, 대기업 간담회 대표로 참석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가운데)을 단장으로 해서 주로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했다.
▲ 경제인 간담회 남측 대표단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에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가운데)을 단장으로 해서 주로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했다.
ⓒ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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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검찰은 박씨를 체포한 이후 리호남과 접촉한 수십 명의 인사를 피내사자나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 가운데는 지난 2007년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방북한 이화영 전 의원과 이강진 전 국무총리 공보수석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재오 장관과 임태희 실장 그리고 구천서 전 의원 등은 리호남 참사 접촉과 관련, 국정원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사실상 정부의 묵인 하에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북 비선(秘線)으로 활동한 박채서씨와, 리호남과 접촉한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는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흑금성 "베이징 위양호텔 근처 '해당화'에서 이재오-리철 회동"

그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돌파구 마련을 위해 리호남 참사를 정부 인사들과 연결시켜준 일종의 비선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 흑금성 박채서씨 그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돌파구 마련을 위해 리호남 참사를 정부 인사들과 연결시켜준 일종의 비선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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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서씨의 가족과 변호인에 따르면, 박씨는 최근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돌파구 마련을 위해 리철(리호남) 참사를 정부 인사들과 연결시켜준 일종의 비선 역할을 했다"면서 "이재오 장관과 임태희 실장 그리고 구천서 전 의원 등도 리철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박씨에 따르면, 이재오 장관은 지난 2009년 1월경 베이징 위양호텔(漁陽飯店) 근처의 식당주점 '해당화 본점'(북한 정부는 베이징에서 해당화 본점과 분점, 그리고 모란각-옥류관 등을 직영하고 있다)에서 박씨의 주선으로 리철 참사와 접촉했다. 이 장관은 지난 대선 전인 2007년 8월경에도 박씨를 만나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 관련 '이벤트'에 대한 아이디어와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오-리철의 회동 시점은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권에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2008. 7)과 김정일 건강 이상(2008. 8)으로 집권 이후 1년간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 2008년 총선 패배 후 도미해 존스홉킨스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체류 중이던 이 장관은 베이징대와 공동으로 개최한 연구 프로그램에 2~3주간 참여하는 일정으로 2009년 1월 17일 베이징으로 건너갔고, 2월 22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3월말에 귀국했다.

이 장관은 당시 30여 일 동안 중국에 체류하는 기간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음에도 당일치기 일정이 가능한 베이징에서 일시 귀국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때문에 이 장관이 베이징에서 당시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한 모종의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이 장관 리철과 회동...이재오 측 "중국에서 리철과 박채서 만난 적 없어"  

실제로 이 장관은 리철과 회동한 후 2월 11일 베이징특파원 간담회에서 "현 정부 대북기조에서 추가할 것은 추가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에게 건의도 하겠다"고 밝혀 대북정책 기조를 다소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해서도 "정권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대북 정책과 철학이 있다는 것을 (북한도) 인정해야 한다"며서 "북한 사람 만나면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대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2008년 총선 패배후 도미해 존스홉킨스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머물던 이재오 특임장관은 귀국 전인 2009년 1월 17일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달 여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서 3월 28일 밤에 귀국했다. 박채서씨에 따르면, 이 장관은 베이징 체류기간에 박씨의 주선으로 북한 리철 내각참사와 접촉했는데. 이 장관은 귀국 전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며 '대북특사'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 "김정일 만나고 싶다" 2008년 총선 패배후 도미해 존스홉킨스대에서 초빙교수 자격으로 머물던 이재오 특임장관은 귀국 전인 2009년 1월 17일 베이징으로 건너가 한달 여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서 3월 28일 밤에 귀국했다. 박채서씨에 따르면, 이 장관은 베이징 체류기간에 박씨의 주선으로 북한 리철 내각참사와 접촉했는데. 이 장관은 귀국 전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며 '대북특사'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 '재오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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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국 직전인 3월 초에는 "적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면서 김정일을 직접 거론하며 이 대통령의 '대북특사' 역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비밀리에 접촉했던 리철 참사와의 회동에서 상당히 깊숙한 얘기가 오갔음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이다. 이 장관은 올해 1월에도 일시 귀국한 박채서씨를 만나 북한 사정 등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재오 장관 비서관에게 취지를 밝히고 닷새 동안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연결을 피해 이 장관의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2009년 당시 베이징특파원으로 이재오 장관과 박채서씨를 잘 아는 한 방송국 기자는 "작년 1월~2월 이 장관이 베이징에 왔을 때 박 실장(박채서)이 이재오씨와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두 사람을 소개한 적은 없고 두 사람이 만났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오 특임장관은 4일 <오마이뉴스>보도 이후 대변인실을 통해 "중국 체류 당시 리철(리호남)이나 박채서씨와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중국 체류 당시 학자들과 지인들과 늘 같이 다녔고, 따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오마이뉴스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리철-임태희 접촉서 회담 사전조율"...임태희 "리철 만난 적 없다"

한편 지난해 10월에 이뤄진 김양건 통전부장-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의 싱가포르 비밀협상도 리철-임태희 라인의 사전 접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박씨에 따르면, 리철 참사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방안을 논의했던 싱가포르 회동 이전에 베이징에서 임태희 장관을 만나 김양건 부장과의 싱가포르 회담을 사전 조율했고, 리 참사는 김양건-임태희의 싱가포르 회담에도 동석했다.

당시 양측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의제로 다루기로 합의했으나 납북자·국군포로 송환 및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싱가포르 비밀회동이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재개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싱가포르 비밀회담에는 김숙 1차장 등 국정원 간부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대화 채널은 크게 ▲통일부가 주연인 공식-공개 채널 ▲정보기관이 주연인 공식-비공개 채널 ▲'비선'(秘線) 라인이 주연인 비공식-비공개 채널로 나뉘는데, 임 장관이 이끈 비선라인은 이후 이른바 '통-통(통일부-통전부) 라인'으로 바뀌어 개성에서 후속대화를 이어갔다. 양측은 지난해 11월 7일 개성 비공개 접촉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14일 다시 만나기로 했으나 10일 서해교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14일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10월 7일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임태희 비서실장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화 의지와 남북정상회담의 전제조건 등을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싱가포르 비밀협상 주역 지난 2009년 10월 7일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임태희 비서실장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화 의지와 남북정상회담의 전제조건 등을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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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실장의 접촉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비서관을 통해 닷새에 걸쳐 10여회 전화를 했으나 회신전화를 주지 않아 해명을 듣지 못했다. 다만 임 실장은 최근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오찬에서 "북한에 대해 천안함 등 이러저러한 것을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상태다"라고 전제하고 "2008년 금강산 박왕자씨 피격 사건도 아직 안 풀렸는데 만약 그런 것 없이 남북관계 진도가 나가면 기자들은 뭐라 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원래 협상하면 금방 깨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물꼬가 트이더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임 실장은 또 1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 "여하튼 (성사 여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밝혀, 천안함 사건과 박왕자씨 피살 사건에 대한 사과 등이 먼저 이뤄져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뜻을 북측에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오마이뉴스>보도 이후 보좌관을 통해 "리호남을 만난 적이 없다"면서 "오마이뉴스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국정원-검찰, '대남공작원 리철' 접촉자 가운데 지난 정부 인사들만 조사

박씨가 남북대화와 관련해 리철과 접촉한 것으로 언급한 여권 인사들 가운데 공직자들은 답변을 회피하거나 연결이 되지 않았지만, 구천서 전 의원은 리철과 접촉한 사실을 시인했다. 박씨의 청주고 선배로 이 대통령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구천서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은 "박채서씨의 소개로 사업 논의차 베이징에서 리철을 두 번 만났다"고 말했다.

한편, 리철과 접촉한 것으로 언급된 여권 인사들 가운데서는 아무도 국정원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구 이사장도 "그 일(리철 접촉 건)로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거나 조사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에 2007년 당시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에 관여한 이화영 전 의원과 이강진 전 총리 공보수석은 리철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국정원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국회 정보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강진 전 수석에 대해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에 걸쳐 합법을 가장한 도감청을 통해 광범위한 사찰을 했다.

이와 관련, 이강진 전 수석은 "리철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이해찬 총리를 수행해 평양에 다녀온 뒤에 리철이 '돼지농장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해 베이징에서 처음 만나는 등 두 번 만난 것밖에 없는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화영 전 의원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서 "리철에게 시계를 선물했냐 등등 국정원 조사 수준이 매우 유치했다"고 밝혔다.

1998년 6월 국정원 해직 뒤에도 '대북 비선' 활동한 것에 '정치보복'?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203실(통상명칭은 '해외조사실'이나 실제는 해외대북공작실) 소속 대북공작원인 박채서씨는 1998년 3월 이대성 해외공작실장이 '해외공작원 보고서'를 조작한 '이대성 파일'을 외부에 유출하는 과정에서 공작원 신분이 드러나 그해 6월 국정원에서 해고되었다. 북측에 위장포섭된 안기부 '이중공작원'이었던 그는 국정권 직원법과 내규에 따라 '보안서약서'를 쓰고 퇴직하는 대신에 퇴직 위로금으로 3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담당한 국정원 수사국 수사팀은 박씨에게 "보안서약서를 쓰고서도 서약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해직 때 받은 퇴직위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도 최근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그들이 만든 각본대로 되지 않자 조사 중간에 과장급 수사 책임자가 들어와 회유·협박했다"면서 자신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 것은 국정원에서 해직된 뒤에도 대북 비선으로 활동한 자신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짙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공소사실의 핵심인 군사교범 제공 시기는 대부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5년 박씨가 사실상 정부의 묵인 하에 대북사업과 비선 활동을 하던 시기와 겹친다. 이에 따라 지난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해직된 뒤에도 대북 비선으로 활동한 그에게 '직역'을 침해당한 데 따른 일종의 '보복수사'가 공안의 부활을 꾀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반론보도문] 이재오 장관, 오마이이뉴스 보도에 유감(遺憾) 표명


본지 지난 11월 4일자 <"이재오․임태희, 북 '리호남 참사' 비밀접촉" MB정권 인사, 수사대상서 제외...표적수사의혹>제목의 기사와 관련하여, 이재오 특임장관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원에서 겸임교수 및 객원연구원으로 재직 중, 북경대 국제전략연구중심과 공동으로 추진 중인 연구프로젝트를 위해 2009년 1월 17일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방문교수 자격으로 베이징에 갔으며, 체류 당시 동북 3성, 신장 지역의 현지답사를 가는 등 바쁜 연구일정을 보내 북경대 교수와 연구진 이외에는 다른 현지인들과 교류할 시간이 없었다며, 박채서의 주선으로 베이징 위양호텔 근처 '해당화'에서 리호남(본명 리철) 참사와 접촉한 바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이재오 특임장관은 박채서씨를 알거나 만난 사실이 없으므로 2007년 8월경에 박씨를 만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대북정책 관련 '이벤트'에 대한 아이디어와 협조를 구한 바도 없고, 올해 1월에도 박씨를 만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에 이재오 특임장관은 당사자로부터 직접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박채서씨의 주장을 근거로 기사를 게재했다면서 강한 유감(遺憾) 표명과 함께 재발방지를 요청하여 왔습니다.


태그:#흑금성, #박채서, #리호남, #이재오,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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