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치 않은 집안에서 인물이 났을 때를 가리켜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합니다. 주로 고등고시에 합격한 윤똑똑이들을 일컫는 말로 회자되어 오곤 했습니다. 똥줄 타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졸지에 신분이 수직상승하는 고시제도는 한국사회에서는 합법적인 계급이동의 장이었습니다.

날품을 파는 홀어머니 밑에서 절치부심 끝에 고시를 패스해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이들은 그래서 고시생들의 롤모델이 됩니다. 비록 오늘은 개천에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리지만 내일은 하늘을 비상하는 용이 되겠다는 이 야무진 꿈은, 하지만 한국사회를 고시공화국으로 전락시켰고 수많은 고시낭인들을 달동네에 쏟아냈습니다.

고시낭인들이 우글거리는 대표적 고시촌은 서울 신림동입니다. 영화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6만여 명의 고시생들이 개천에서 용 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신림동에서 촬영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신림동을 뒷배경으로만 삼은 것은 아닙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추락한 고시촌 사람들을 통해 영화는 20 대 80사회를 넘어 그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쩍, 갈라놓습니다.

상영관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독립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새로운 배급방식 '이동 로드쇼'로 연장 상영에 들어간 <빗자루, 금붕어 되다>(9월 30일 개봉)입니다.

빗자루 같은 인생이 금붕어가 되어 봤자

이름도 간절한 '다부터 고시원'의 큰형님은 50대의 장필(유순웅)입니다. 영화는 그가 고시낭인 출신인지 몰락한 중산층인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의 과거나 미래 따위에 신경을 쓰기에는 현재의 삶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남는 것, 그에게 생활은 생존 그 자체입니다.

 선반 밑으로 낡은 궤짝과 앉은뱅이 밥상이 전부인 장필의 고시원 방. 장필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이고 있다.

선반 밑으로 낡은 궤짝과 앉은뱅이 밥상이 전부인 장필의 고시원 방. 장필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이고 있다. ⓒ 김동주필름


2평 남짓의 방에 가구라곤 선반과 낡은 궤짝과 앉은뱅이 밥상이 전붑니다. 밥상 위에는 금붕어가 들어 있는 작은 어항과 함께 부처상과 예수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장필은 아침마다 경건하게 기도를 합니다. 작은 병에 숫자를 적어 넣은 종이 공기를 흔든 뒤 일렬로 세우고 로또 번호로 옮겨 적기 위해서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경건하고 성스러운 모습으로 비칩니다.

그의 일과는 뻔합니다.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는 일거리가 있으면 천만다행. 그마저도 끊기면 옥상에서 목각인형을 만들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월세는 밀렸고, 목각인형 팔이도 신통치 않습니다. 비상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눈에 들어온 건 폐지 수집과 '중고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모니터.' 하지만 그 모니터 때문에 장필은 살인을 합니다.

관객의 시선을 잡아채는 대목은 살인을 저지른 뒤의 장필입니다. 고시촌 구석에 처박힌 빗자루처럼 붙박이 인생인 그가 죽은 여자의 지갑에서 훔친 돈으로 렌터카를 빌리고 창녀를 사서 남자 구실을 하는 등 비로소 세상과 대면합니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계기를 통해서야 겨우 세상과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인을 통해 만난 세상은 그의 책상 한켠에 있던 '어항'처럼 조금 더 큰 '어항'일 뿐입니다.    

청년실업의 끝자락을 보여주다

두 번째 인물은 윤호(김재록)입니다. 싸가지 없는 몰골로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그는 청년실업의 끝자락을 대변합니다. 윤호 역시 고시낭인 출신인지 뭔지 출처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장필이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대박을 꿈꾸듯이, 그는 도박판에서 한탕을 거머쥘 꿈을 좇으며 하루살이 인생을 버텨냅니다.

 윤호가 고시원 원장에게 장필이 총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총무자리는 윤호의 차지가 된다.

윤호가 고시원 원장에게 장필이 총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총무자리는 윤호의 차지가 된다. ⓒ 김동주필름


하지만 도박도 밑천이 있어야 입질을 할 수 있는 법. 장필에게 설레발을 늘어놓으며 7만 원을 빌립니다. 장필의 전 재산 14만 원의 절반에 해당되는 거액(?)이지만 사실상 가로챈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갚을 수 없게 되니까요. 빌려준 돈으로 인해 쩔쩔매던 장필은 직업소개소에서 일당을 구하지만 헛물만 켭니다. 이제 그가 기댈 곳은 고시원 총무자리뿐입니다.

그러나 빌린 돈마저 다 털린 윤호가 촉수를 세우며 넘봅니다. 내심 순박하고 성실한 장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고시원 원장을 상대로 음해를 일삼던 끝에 마침내 총무자리는 윤호의 수중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용화장실과 세면장은 똥파리가 휘날리고 신발은 개판으로 나뒹굴고 있으며, 청소라곤 물 한 방울 대지 않습니다. 거기다 걷어 들인 월세마저 '섰다판'에 날린 뒤 윤호는 총무자리에서 잘리고 고시원에서도 쫓겨납니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길거리로 나앉은 그에게 장필은 천 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어줍니다.

2만3400원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죽는 사회
 
세 번째 인물에 이르러서야 고시낭인이 등장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장필이 채택한 생존전략이 있으니, '고시생 인증샷'입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청년이 용이 되어 승천하기 전의 그 비장한 모습을 확인시켜 주자는 것입니다. 청년의 가족들에겐 희망을 주고, 장필에겐 수고비조로 몇 푼이 떨어지는 일거양득인 셈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장 난 컴퓨터 모니터를 2만3400원에 팔아먹은 아가씨가 장필에게 돈을 집어 던지며 모욕적인 말을 쏟아 붓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고장 난 컴퓨터 모니터를 2만3400원에 팔아먹은 아가씨가 장필에게 돈을 집어 던지며 모욕적인 말을 쏟아 붓고 있다. ⓒ 김동주필름


어머니를 대동한 가짜 고시생이 찾아오고 장필은 원장으로 둔갑해 근엄하게 인사를 나눕니다. 미리 꾸며 놓은 방안에는 동네 중고책방에서 빌려온 법률서적이 즐비합니다. 완벽하게 사기를 친 뒤 2만 원을 받지만 빌린 책 외상값을 갚지 못해 그마저도 다 토해내야 합니다.

장필이 고시낭인들과 벌이는 사기행각(?)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기껏해야 '점 백'의 동네 고스톱 수준입니다. 하지만 전 재산의 1/7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기 칠 때나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이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릴 때, 그것은 시퍼런 비수가 되어 숨통을 겨냥합니다.

남의 집 앞에 내다 버린 모니터를 자기 것인양, 고장 하나 없이 새것이나 진배없다며 봉이 김선달 못지않은 솜씨로 팔아먹은 술집 아가씨는 그러나 장필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거지 같은 동네에 별 쓰레기들 다 봤다"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땅바닥에 흩뿌리니까요.

장필이 벽돌을 들어 여자의 머리를 내리쳐 죽이기까지 떼인 돈은 불과 2만3400원. 돈 몇 만 원에 사람 목숨이 오뉴월 파리처럼 끽소리 못하고 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신림동 고시촌이고, 장필과 윤호 등 도시빈민들의 현실입니다. 영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훔친 지갑을 다 쓰지도 못한 채 장필이 뒷골목에서 아리랑치기배들로부터 각목 세례를 받고 다 털리니까요.

정글 같은 먹이사슬의 최말단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에게 깊은 타격을 가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하는 곳, 영화는 건조하리만치 차가운 시선으로 20 대 80의 한국사회를 농축시켜 놓은 '다부터 고시원'을 응시합니다.

저마다의 꿈이 사라진 20대의 삶

영화는 낡은 빗자루만큼이나 비루하고 금붕어만큼 단조로운 고시원 사람들의 일상을 CCTV를 연상시키는 삐딱한 앵글로 한 컷 한 컷 직조하듯이 찍어내선 관객들과 대면합니다. 마치 신자유주의가 파놓은 20 대 80의 덫에 걸려 고립무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서사 없는 일상을 통해 꿈과 희망이 실종된 서울의 민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고.

영화 속 앵글은 단 한 번의 움직임도 한 쇼트의 클로즈업도 없이 컷과 컷 사이의 경계를 통해서 다시금 나지막이 조근거립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진즉에 끝났다고. 핏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부터 고시원'을 들락거리는 고시낭인들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인간극장 같은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다고.

이제 그 자리는 안정적인 대한민국 공무원이 꿈과 희망이 되어 버린 20대의 풍경이 2평 남짓한 벌집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끈적거리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서 저마다의 꿈이 있어야 하는 20대의 삶을 대신해 그저 공무원 시험만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비집고 장필과 윤호 같은 부나방들이 찾아듭니다. 그들은 아마도 20대의 풍경에서 악을 쓰다 경쟁에서 밀렸거나 제풀에 나가떨어진 낙오자들입니다. 제 아무리 고시촌에서 바늘구멍을 지나가려는 낙타처럼 살아도 승자의 대열에 합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시촌에서 쫓겨난 윤호가 언제 노숙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것처럼, 그들의 꿈은 슬프고 언제나 회색빛입니다.

도박판을 전전하는 윤호가 칼침을 맞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30년 뒤의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장필입니다. 그렇게 제2, 제3의 윤호가 대량생산되고 있는 곳이 고시촌이며, 산업예비군도 아닌 것이 장필과 같은 인생을 예약하며 '빗자루, 금붕어 되는' 도시빈민들의 추락하는 삶입니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났다'는 신화는 끝났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신화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 중에서 인물났다'는 냉소와 힐난이었습니다. 20 대 80 사회 훨씬 이전부터 지렁이는 지렁이에 걸맞게 꿈틀대고, 용은 용대로 하늘을 가르며 세상을 쥐락펴락해야 세상사 이치에 맞는다는, 즉 '다부터 고시원'에 홀로 남은 장필의 인생역정이었던 것입니다. 2만4300원 때문에 죽고 죽이는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 고시원 20대 80사회 신림동 고시촌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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