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방가방가>를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아도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 되어 있고 홍보도 김인권이 첫 주연을 맡은 신상코미디라고 하지만 코미디를 기대하고 한바탕 웃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김인권을 앞세운 코미디 영화? '인권人權'영화

 김인권 주연의 영화 <방가? 방가!>

김인권 주연의 영화 <방가? 방가!> ⓒ 상상역엔터테인먼트

주인공 방태식(김인권 분)은 낙방의 달인이었다. 취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진다. 안 그래도 취업하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학벌도 후지고 외모까지 딸리는 그에게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고교시절 별명이 동남아였던 태식은 고향친구 용철의 제안으로 동남아인 행세를 하기 시작하면서 취업의 달인이 된다. 네팔, 베트남 등을 거치다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부탄인 행세를 하며 의자 공장에 취업한다.

이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왜 김인권인지 알겠다. 배우로서 그의 외모는 결코 잘생기지 않았다. 그의 키와 몸과 흔히 말하는 비율은 실장님 같은 캐릭터를 맡긴 힘들어 보이지만 그렇기에 이번 역엔 제격이었다. 동남아 느낌이 난다고 원빈이 이 역할을 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배우로서 그의 외모는 최고인 것 같다. 우리 주변엔 원빈처럼 생긴 사람보다 김인권처럼 생긴 사람이 더 많으니까. 부탄에서 온 방가 역엔 김인권이 최상의 캐스팅이었다. 그는 부탄에서 온 방가 그 자체였다.

"부탄에서 온 방가라고 해요"

태식이 부탄에서 온 방가라고 인사를 할 때 남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백수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자랐으면서 다른 사람 행세를 해야 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것도 같은 한국인들로부터 무시 당하는 동남아 사람으로 말이다.

한국 사람인 고등학생으로부터 놀림을 받을 때에도, 함께 일하는 공장의 한국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한번 톡 건드려진 감성은 마음을 짠하게 만들어 그다지 웃음이 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성별, 종교, 피부색, 국적, 빈부차이, 사회적 지위, 신체적∙정신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더군다나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할 뿐 인격적인 대우는 해주지 않는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깔고 욕설로 그들을 대한다. 그러니 태식이 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줄 때, 아니 그들이 한국 와서 빨리 배우는 다양한 욕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재미도 있었지만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은 웃는데 자꾸만 코 끝이 시큰거려 혼이 났다. 그들이 욕을 배운 건 욕을 들었기 때문일 테니까. 함께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는 잔업도 야근도 하지 않지만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해야 했던 그들에게 한국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닌 욕으로 대했을 뿐이니까. 피부색이 하얀 유럽인에게 대하는 것과 피부색이 거무튀튀한 동남아인에게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잘 알기에, 나 또한 편견 없이 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에 참 부끄럽고 슬펐다.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한 안산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었다. 위험한 곳이라고, 더군다나 밤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으니 안산역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주변에서 말하고는 했다. 글쎄, 밤에 여자 혼자 다니는 게 위험한 세상이긴 하지만 원래 겁이 없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하여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며 때로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어쩌면 꽤 자주, 아니 항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와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등록된 탓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단속이 뜰까 봐 불안해 하면서.

전 배우들의 고른 연기, 합격점 주고 싶어

방태식을 연기한 김인권의 첫 단독주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코믹한 연기와 정극을 오가는 그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베트남 여자인 장미(신현빈 분)를 향한 순정은 애틋했고, 어설픈 한국말은 유쾌했으며,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나 용철과 고향으로 가려다 돌아가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장미 역의 신현빈도 정말 우리나라 배우가 아니라 베트남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베트남 여자 연기를 능숙하게 잘 해낸 것 같다. '개새끼'를 참 맛있게(?) 입에 달고 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태식의 친구 용철의 역을 맡은 배우 김정태다. 그는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그 중에서도 태식과 함께 의자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래자랑에 나가기로 하면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용철에게 노래수업을 듣는 장면은 최고였다. 그래, 이 영화 코미디 영화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트로트 <찬찬찬>을 이주노동자에게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며 다양한 몸짓으로 가르치는 용철은 관객들을 충분히 웃겨 주었다. 후에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달라고 맡긴 이주노동자들의 돈을 훔쳐 나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용철이 이 사회의 정말 악한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 친구의 한 모습이라고 여겨졌다.

알 반장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의 연기도 평균점 이상은 해준 것 같아, 보는데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찬찬찬>과 무대에서 찬찬찬이 아닌 알 반장의 18번인 고향 노래를 부를 때에는 요즘 한창 이슈가 된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그것처럼 감성을 자극했다. 한이 느껴지는,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노래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공감하고 감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인간은 못 되더라도 개새끼는 되지 말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코디미 영화에 담는다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한 마당에 그들의 얘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반갑다.

물론 이주노동자 문제는 단순히 가볍게 웃고 넘길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주노동자를 쫓아내기 전에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의식적인 것이지 않을까. 아마도 이 영화가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았던 건 영화를 보면서 아닌 척 했지만 내 안에 숨겨진 차별과 편견에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불편하지 않게 적정한 선을 지키면서 제법 잘 다룬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정책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들여 차별과 편견을 당연시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누군가를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접힌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성인(聖人)은 못되더라도 개새끼는 되지 말아야 할 테니까.

방가방가 김인권 이주노동자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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