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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섬길을 걸어서 여행했다고 하면 왠지 근사한 느낌이 든다. 시와 소설이 절로 나올 법한 여행이건만, 책 <남도 섬길 여행>에서는 밥걱정이 우선이라 웃음부터 나온다.

 

오마이뉴스 기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유혜준씨의 <남도 섬길 여행>은 여자 혼자 떠나는 섬길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가 걸은 길에는 진도와 보길도처럼 유명한 곳도 있고 노화도와 청산도처럼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다.

 

다양한 섬길을 걸으며 자연 풍광을 감상하고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이 바로 도보 여행의 묘미다. 하지만 이 책은 각 섬들의 멋진 경치에 대한 미사여구보다 저자의 솔직한 입담이 더 매력적이다.

 

걷다가 발이 아파 끙끙거리는 이야기부터 점심 시간만 되면 눈에 띄지 않는 식당 걱정에 밥 먹는 걱정까지, 읽다 보면 쿡쿡 웃음이 나온다. 여자 혼자 집을 떠났으니 이것저것 걱정거리가 많을 수밖에… 씩씩하게 길을 나섰건만 밥을 먹기 위해 끙끙거리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는 내내 각 섬들의 오밀조밀한 모습과 동시에 저자의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참 한국적인 정서가 넘치는 느낌이다. 그러나 저자는 '길 위에서 귀인을 만난다'고 말한다. 수시로 밥 걱정과 잠잘 곳을 걱정하지만 그 걱정들은 섬 사람들 덕분에 금방 사라지고 만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네 집 잠자리를 내어 주기도 하고 트럭 짐칸에 저자를 태워주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넘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네 정서가 실감나게 다가 온다. 낯 모르는 외지인에게 친절한 섬 사람들. 그들 덕분에 도보 여행이 어렵지 않은 것이다.

 

"금갑마을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 아픈 발 때문에 신경을 썼더니 평소보다 많이 지친 것 같다. 천, 천, 히 걸음을 떼어 놓는다. 빨리 금갑마을과 접도를 연결하는 연도교가 나왔으면 좋겠다. 바로 그 앞이 오늘 밤 묵을 예정인 굴 따는 아주머니네 집이니까. 걸으면서 코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시선은 저 멀리 금갑마을을 찾아 허공을 헤맨다."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친절하게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고 밥 한끼 주는 것을 어려워 하지 않는다. 섬 사람들의 인심은 진도처럼 큰 섬도 변함이 없다. 저자가 여행 중에 만난 할머니들은 참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듯 보인다.

 

하루 종일 굴을 까고 해파리를 다듬고 전복 양식을 하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 일은 고되지만 타인에게 진정으로 베풀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섬 사람들에게 저자는 엄마나 할머니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젊은 시절 딸을 잃은 할머니 한 분은 자신의 집에 저자를 머무르게 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 끝에 '니가 내 딸이나 마찬가지여, 엄마라고 불러도 돼'라고 말한다. 사랑과 상처는 공존한다고 했던가. 섬 마을 사람 하나하나는 마음 속에 사랑과 상처를 품고 있다.

 

여자 혼자 여행하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비록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그 속에 우리네 삶이 담겨 있으니 저자의 도보 여행은 인생 여행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추위를 참지 못하는 탓에 보일러를 틀어 놓지 않은 냉방에서 잠을 자다가 주인장들과 부딪힐 뻔한 사연부터 같은 펜션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 먹는 뻔뻔스러움까지, 길을 걷다보면 평상시와 다른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여자지만 저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군대 보내 놓고 남편은 혼자 집에 남겨 놓고 여행다니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씩씩하게 잘도 떠난다. 그녀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혼자 걷기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전에 쓴 저자의 책 <여자, 길에 반하다>를 읽을 때에는 부러움이 많고 그녀가 걸은 길을 나도 걸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책은 부러움보다 응원의 마음이 더 든다. 그녀처럼 '배고프고 다리 아프고 고생하는 길 여행'이 내게는 힘든 일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걸어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는 이 여자의 여행이 계속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서 나처럼 현재 도보 여행을 다니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비록 지금 떠나지는 못하지만 그녀와 함께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다리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그녀의 목소리,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나 걱정하는 저자의 눈빛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녀는 어느 작은 길 위에서 밥 걱정을 하며 아픈 발을 벗고 있으리라.


남도 섬길여행 - 도보여행가 유혜준 기자가 배낭에 담아온 섬 여행기

유혜준 지음, 미래의창(2010)


태그:#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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