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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이 작년에 <기악> 부문에서 최우수 시니어로 뽑힌데 이어 올해는 작은딸이 최우수 시니어로 뽑혔다.
 큰딸이 작년에 <기악> 부문에서 최우수 시니어로 뽑힌데 이어 올해는 작은딸이 최우수 시니어로 뽑혔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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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 통로에 동판 하나가 추가됐다. 작년 이맘때 큰딸이 수학과 기악 부문에서
동판을 받아온 데 이어 올해는 작은딸이 기악 부문에서 동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곳 해리슨버그 고등학교(HHS)에서는 학년말(6월초)이 가까워지면 최우수상 시상식(Recognition of Excellence)이 벌어진다. 각 과목에서 우수한 학생을 뽑아 시상을 하는데 특별히 졸업을 앞둔 최우수 시니어(12학년생)에게는 동판으로 된 상이 수여된다.

바로 이 동판 시상식에서 두 딸이 모두 기악 부문 최우수 수상자로 뽑힌 것이다. 최우수 수상자는 학년말 연주회에서 독주자로 밴드와 협연을 하게 되는 영예도 누린다.  

이 학교 레놀즈 교장 선생님은 최우수상 시상식에서 작은딸의 수상내역을 설명하면서 올 스테이트(All State)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리저널(Regional)과 시티 및 카운티 밴드에서 맹활약을 한 딸이 HHS 밴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시상식 이후 벌어진 리셉션에서도 교장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리(Lee) 자매의 활약을 볼 수 없게 되어 서운하다"고 말했다. 다른 선생님과 학부모들도 축하인사를 건네며 재능이 뛰어난 딸을 둘이나 둬서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의 칭찬이 과분하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다. 어깨도 으쓱거려지고. 사람들이 내게 그런 칭찬의 말을 건넨 것은 두 딸이 학교 밴드나 오케스트라에 있는 학생들이 최고로 여기는 올 스테이트 오케스트라에도 몇 번 뽑히고 피아노, 바이올린, 오보에, 퍼커션 등의 기악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혹 묻는다. 우리 부부 가운데 누가 그런 음악 유전자를 딸들에게 물려줬느냐고. 글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는 우리 부부에게 그런 유전자가 있기는 한 것일까.

사실 딸들이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유전자 덕분이 아니라 바로 좋은 스폰서를 만났기 때문이다. 스폰서 얘기를 하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하지만 결국 자식 자랑을 하게 되는 꼴이 될 테니 쑥스럽고 민망하다. 부디 팔불출을 용서하시라.

한국에서 손 뗀 음악, 미국에서 다시 살리다

지난 해 독주자로 밴드와 협연을 한 큰딸. 올해는 작은딸이 오는 25일에 마림바 독주로 밴드와 협연할 예정이다. HHS 밴드 프로그램에는 두 딸의 이름이 많이 올라가 있다.
 지난 해 독주자로 밴드와 협연을 한 큰딸. 올해는 작은딸이 오는 25일에 마림바 독주로 밴드와 협연할 예정이다. HHS 밴드 프로그램에는 두 딸의 이름이 많이 올라가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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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반에서 잠시 활동했던 걸 빼고는 딱히 음악과 관련지을 일이 없는 나는 두 딸이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켰다. 레슨비가 저렴한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였다. 두 딸이 이 다음에 커서 악보라도 제대로 읽을 줄 알고 어디 가서 피아노 반주나 연주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두 딸 모두 피아노를 싫어하지 않아 웬만큼 했고 나중에는 교회에서 반주도 맡을 정도가 되었다. 바이올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악기였는데 큰딸은 내가 기대했던 교양 정도를 넘어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전공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게 상식이라고 하니).

그래서 한때는 큰딸의 소망대로 전공을 해도 좋을지 그 가능성을 알아보러 다닌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퇴짜(?)를 맞았다. 재능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전공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또한 그 수준이나 테크닉도 전공자가 되기에는 못 미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판정을 받은 뒤 음악 전공 얘기는 쏙 들어갔고 결국 중학교에 가서는 모든 음악 활동을 접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중학교만 들어가도 전공자 외에는 그런 특별 활동을 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렇게 잊고 있었던 음악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다시 그 불씨가 지펴졌다. 처음 시작은 학교 뮤지컬이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뮤지컬을 공연하는데 음악을 좋아했던 아이는 초등학교 때 그만두어 녹이 슨 바이올린을 들고 뮤지컬 연습장을 찾았다. 그 때만 해도 깽깽이(?) 소리 밖에 안 나는 실력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으로 딸은 고등학교 4년 내내 뮤지컬 피트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했다. 또 거기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오디션에 나가 '올 스테이트(All State) 오케스트라'에도 세 번 참가했다. 따로 개인레슨을 받은 일 없이 온전히 학교 뮤지컬 연습을 통해 거둔 성적이었다.

작은딸 역시 초등학교 때 그만 둔 바이올린을 뮤지컬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다시 살려내 '시니어 리저널 오케스트라'에 두 번 나갔다. 또 미국에 와서 새로 시작한 퍼커션으로 여러 차례 심포닉 밴드에서 활약했고 올해는 시티·카운티 및 디스트릭 지역 예선에서 각각 1등을 하고 올 스테이트 오디션에서는 2등을 차지하는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2010 올스테이트(All State) 오케스트라/밴드에 참가한 HHS 학생들과 스노우 선생님.
 2010 올스테이트(All State) 오케스트라/밴드에 참가한 HHS 학생들과 스노우 선생님.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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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싹 틔워준 스노우 선생님

두 아이들이 음악과 관련해 거둔 성적은 사실 스노우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HHS의 음악 디렉터인 스노우 선생님은 두 아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선생님과 있었던 에피소드 역시 무궁무진하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절대음감' 일화다.

그게 언제쯤이었나. 아마 큰딸이 10학년 때였을 테니 2006년쯤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홍조 띤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이건 순전히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얘긴데 오늘 미스터 스노우가 좀 흥분했어."

자녀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알 것이다. 자녀가 학교에서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엔돌핀이 마구 솟고 기분이 좋아져 심장 박동마저 빨라진다는 것을. 더구나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들의 학교 적응에 신경을 쓰고 있던 나는 딸아이가 건넨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얘기'에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흥분됐다.

딸아이의 음악 수업 시간에 스노우 선생님이 '퍼펙트 피치(Perefect Pitch: 절대음감)'를 설명했단다. 우리 말로 퍼펙트 피치가 무엇인지 몰랐던 딸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충 그게 무엇인지 감이 잡혔단다. 말하자면 기준이 되는 다른 소리의 도움 없이 악보의 계이름을 말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딸은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자기도 그런 거 할 줄 안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딸아이를 남게 하고는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딸은 피아노를 등 지고 서서 선생님이 누르는 피아노 음을 알아 맞추는 테스트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TV 광고나 노래를 들으면 그대로 피아노로 쳤고 이따금 제 동생과 계이름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했던 딸로서는 그런 테스트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너 말고 이런 절대음감 가진 사람이 또 있느냐?"
"제 동생이요."

딸은 집에서 무슨 노래든 음만 알면 계이름을 부르며 놀았던 사실을 상기했다. 그렇게 동생과 놀았던 지라 다른 사람들도 악보없이 노래만 알면 계이름을 다 말할 줄 아는 걸로 생각했단다. 나 역시 말로만 듣던 절대음감을 두 딸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절대음감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두 딸이 보여준 절대음감 능력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대단하게 생각한 이곳에서는 다른 선생님도 관심을 보였고 학생들도 호기심을 보여 이따금 딸아이가 지나가면 아무 소리나 내면서 "이건 무슨 음이냐?"고 묻기도 한다고 했다.

하여간 이런 우연찮은 일로 스노우 선생님과 친하게 된 큰딸은 자신에게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은 오케스트라가 없어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게 되자 밴드에서 연주할 수 있는 오보에를 새로 시작하기도 했다.

난생 처음 해본 오보에였지만 큰딸은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했고 학교 밴드에서 곡중 솔로도 맡으면서 오보에 주자로 활동했다. 나중에는 시티·카운티 밴드와 디스트릭 밴드 오디션에도 나가 당당히 콘서트 밴드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퍼커션을 했던 작은딸 역시 뛰어난 퍼커셔니스트였던 스노우 선생님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작은딸은 학생들 개개인의 능력을 살려주는 선생님 격려 덕분에 마칭밴드의 드럼라인에서 캡틴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최고의 스폰서였고 멘토였던 그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정열의 화신 스노우 선생님. 선생님은 지루한 여름방학 밴드캠프에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주제'가 있는 복장을 제안한다. 이날의 주제는 '슈퍼 히어로(Super Hero)'였는데 선생님의 특이한 슈퍼 히어로 복장이 눈길을 끈다. '마운틴 듀'(청량음료)가 선생님의 영웅?
 정열의 화신 스노우 선생님. 선생님은 지루한 여름방학 밴드캠프에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주제'가 있는 복장을 제안한다. 이날의 주제는 '슈퍼 히어로(Super Hero)'였는데 선생님의 특이한 슈퍼 히어로 복장이 눈길을 끈다. '마운틴 듀'(청량음료)가 선생님의 영웅?
ⓒ 존 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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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음악 선생님 J. R. Snow. 나는 그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영감을 주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또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스노우 선생님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는 한 두개가 아니다. 학년말이 될 무렵이면 HHS에서는 연례 행사로 학생과 학부모가 자리를 함께 하는 밴드 만찬이 열린다. 스노우 선생님은 이 자리에서 학생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각자의 장점을 칭찬해 주며 학생에 관한 아름다운 일화를 소개하고 상장을 준다.

또 학생들 눈을 모두 감게 한 뒤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데,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선생님의 명연설은 가히 만찬의 압권이다. 

스노우 선생님을 볼 때면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도 생각이 나고 앤 설리번도 떠오른다. 시각, 청각 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가 그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작가, 교육가, 사회운동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설리번 선생님 덕분이 아니었던가.

마찬가지로 우리 두 딸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고 그 싹을 키워 나가도록 자극을 준 분도 바로 스노우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두 딸이 누리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 인생은 없었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대학에 간 큰딸이 마칭밴드 활동을 하면서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대학에 간 큰딸이 마칭밴드 활동을 하면서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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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은 미국에 와서 새롭게 시작한 음악 활동으로 이곳에 있는 실버 타운인 '써니사이드'에서 1주일에 한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치료사(Music Therapist) 역할도 했다. 그곳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두 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지나간 학창시절을 회상하고 종종 따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또 두 딸 모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장학금을 신청하면서 그동안의 활동과 바이올린, 퍼커션을 녹음한 CD를 보내 한 예술 장학 재단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장학금을 받았다. 이 밖에도 음악과 관련된 소소한 장학금을 몇 개 더 받았다. 모두 스노우 선생님이 싹을 키워준 덕분이었다.

사실 스노우 선생님과 두 딸의 만남은 특별한 게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수많은 선택 과목 가운데 하나로 음악을 선택했을 뿐이고 스노우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수많은 학생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 온 두 소녀를 우연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노우 선생님은 그 우연한 만남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의 숨은 1인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에 불을 지펴주었다. 음악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열정을 가진 큰딸에 대해서는 만날 때마다 격려해주고 진로를 걱정해 주었다.

작년 봄에 있었던 학년말 연주회에서 스노우 선생님은 졸업하게 되는 시니어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며 한마디씩 언급했다. 그 때 선생님은 큰딸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가. 음악에 대한 얘기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얘기까지도. 우리가 또 얼마나 자주 만났었던가..."

아, 나는 스노우 선생님의 그 말을 들으면서 그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보다 더 내 딸을 잘 알고 있고 내 딸의 열정과 고민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딸의 진로를 염려하고 걱정해주면서 많은 격려도 해 주었을 것이다.

스노우 선생님은 내 딸에게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훌륭한 스폰서인 것 같다. 며칠 전 HHS 밴드의 야외공연이 끝난 뒤 방학을 맞은 졸업생들이 스노우 선생님을 찾아와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스노우 선생님은 내 딸에게뿐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훌륭한 스폰서인 것 같다. 며칠 전 HHS 밴드의 야외공연이 끝난 뒤 방학을 맞은 졸업생들이 스노우 선생님을 찾아와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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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은 오래도록, 아니 어쩌면 평생 스노우 선생님을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선생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의 좋은 스폰서였고 탁월한 멘토였다. 훌륭한 역할 모델이었고. 

자신들도 몰랐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깨닫게 해 준 스노우 선생님. 선생님을 통해 두 딸은 새로운 음악 세계로 들어섰고 지금은 바로 그 음악 때문에 행복하고 삶도 풍요로워졌다. 이들은 평생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스노우 선생님의 은혜도 잊지 않으면서. 

아울러 자신들도 이 다음에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스폰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스노우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스폰서 잘 만나면 인생이 확 바뀐다.

▲ 2010 올 스테이트 오케스트라 '2010 올 스테이트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2악장 '무도회' 작은딸은 여기서 팀파니를 연주했는데 아마추어 고등학생들의 연주가 아름답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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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스폰서> 공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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