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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크난 타이어 바꿀 수 있어요?
 펑크난 타이어 바꿀 수 있어요?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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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change a flat tire?(펑크난 타이어 바꿀 수 있어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이 배우는 ESL 교실 안. ESL 선생인 나는 교재에 나오는 'can(~할 수 있다)'의 용법을 설명할 때면 이 질문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면 학생들로부터 곧장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플랫 타이어(flat tire)가 뭐예요?"

영어 표현을 잘 모르는 ESL 학생들은 난생 처음 들어 본 '플랫 타이어'가 뭐냐고 다시 묻는다. 이럴 때는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최고. 곧 바로 인터넷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 펑크난 타이어 사진을 보여준다.

"아하, 그게 플랫 타이어예요? 네, 할 수 있어요. 그거 아주 쉬워요."

그래, 알면 뭐든 쉬운 법이지. 모르면 어렵고. 내가 가르치는 ESL 학생들은 연령층도 다양하고, 피부색도, 사용하는 언어도 서로 다르지만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는 일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낸다. 

"Yes, I can."

물론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하지만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온 안젤리카 역시 플랫 타이어를 바꿀 줄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남자친구가 가르쳐줬단다. 타이어를 교체하는 일이 힘을 좀 써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여자라고 못할 건 절대 아니란다. 

"안젤리카, 장해요. 나는 물론이고 내 남편도 못하는 플랫 타이어 교체도 할 줄 알고."

학생들의 폭소가 이어진다. 학생들은 만약 우리 부부가 운전하다 타이어가 펑크나면 자기들을 부르란다. 언제든지 달려간다고. 그러면서 자기들 휴대폰 번호를 또박또박 불러 준다. 내 휴대전화에 저장하라고. 다정한 학생들.  

그 해 여름은 무서웠네

2006년 7월의 일이다. 한국에 사는 대학생 조카가 방학을 맞아 우리집에 왔다. 그 해 7월 14일, 우리는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워싱턴 DC 근처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려면 동서로 이어진 66번 고속도로(I-66)와 남북으로 뻗은 81번 고속도로(I-81)를 타게 된다.  

미국 동부에 있는 I-81은 남쪽 테네시 주에서부터 북쪽 뉴욕 주까지 연결되는 1376km의 고속도로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길다. 이곳은 평소에도 통행량이 많은 편인데 특히 물류를 담당하는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가 자주 다닌다. 이곳에서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나와 작은딸은 I-81에서의 대형 사고 때문에 한 시간여 동안 차 안에 갇혀 있었다. 이렇게 발생하는 큰 사고 때문에 이곳을 달릴 때면 늘 속도와 안전에 신경을 써왔는데 그 해 여름, 우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우리가 탄 미니밴이 I-66을 벗어나 I-81로 진입했을 때의 일이다.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차체가 바닥에 닿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른한 여름날, 몸도 늘어지고 눈도 살살 감겨오는 졸리운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모두가 놀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남편이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나갔다.

일단 차를 갓길에 세운 뒤 모두 차에서 내렸다. 차를 살펴보니 운전석 뒤쪽이 내려 앉았다. 타이어 바람이 좀 빠진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건 바람 빠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타이어가 걸레처럼 찢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온 조카를 비롯, 우리 네 식구가 끔찍한 일을 당할 뻔 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펑크난 타이어 바꿀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할 말을 잃게 만든 타이어.
 할 말을 잃게 만든 타이어.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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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비상 상황이라 타이어를 당장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타이어를 바꿀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운전한 지 오래됐지만 타이어를 교체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조카도 마찬가지였다. 운전 면허증을 갖고 있는 나 역시 운전만 할 줄 알았지 타이어를 교체한다는 건 생각도 못해 본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그저 당황스러울 수밖에.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자동차 긴급 출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AAA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곳에서 위치를 물어왔지만 고속도로 상이어서 정확한 위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출구 번호를 발견하고 대충 위치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당장 올 수는 없다고 했다.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난감했다. 차는 고속도로 갓길에 서 있고 우리가 피할 곳은 없으니 말이다. 물론 차 안에 들어가 있어도 되지만 갓길에 세워진 차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말이 있어 남편은 모두 차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아예 갓길 옆에 세워진 안전선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예 고속도로 안전선 밖으로 나간 가족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예 고속도로 안전선 밖으로 나간 가족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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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땅에 백인도 흑인도 아닌 아시아인 다섯 명이 고속도로 갓길에 뻘쭘하게 서 있는 상황은 대단히 민망했다. 오가는 차들이 다 우리만 보는 것 같았다. 거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흑기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갓길 옆으로는 I-81 명성(?)에 걸맞게 대형 트럭과 트레일러를 비롯한 수많은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었다. 밖에 서 있어 보니 그 속도에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였다. 오가는 차들을 보며 그냥 갓길에 멀뚱하게 서 있는 것보다 차라리 차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픽업 트럭 한 대가 방향등을 켜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30분 정도 걸린다는 AAA 서비스가 금세 우리를 도와주려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영어만 쓰는 미국에서 갑자기 들려온 낯익은 한국말. 모두가 깜짝 놀라 진한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보았다. 잘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벗고 보니 우리가 아는 목사님이었다.

세상에, 3억이 넘는 미국 인구 가운데 우리가 아는 사람은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바로 그 손가락 중 하나가 위기 상황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게 바로 천우신조?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노라니 마침내 기다리던 서비스 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찾아 찢어진 타이어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만 있지 말고 깃발을 크게 흔들어"

 조카가 고속도로 위에서 빨간 깃발을 흔들어대고 있다. 저 멀리서 시범을 보인 목사님의 빨간 깃발도 보인다.
 조카가 고속도로 위에서 빨간 깃발을 흔들어대고 있다. 저 멀리서 시범을 보인 목사님의 빨간 깃발도 보인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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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기사가 펑크난 타이어를 고치고 있을 때 목사님이 차에서 빨간 깃발 두개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갓길에 있을 때 사고가 많이 나요. 그러니 안전을 위해 수신호를 해줘야 돼요."
"어떻게요?"
"갓길에 차가 세워져 있을 때 다른 차가 와서 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저 기사도 고속도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차들이 바로 옆으로 씽씽 달리면 불안할 거예요. 그러니 멀찌감치 앞에 나가서 수신호를 보내줘야 해요. 그래서 달려오는 차를 가급적이면 1차선으로 보내도록이요. 얘, 네가 저 앞에 나가서 수신호를 좀 해줘라."

우선 만만한 게 남자 조카였다. 조카는 숫기가 별로 없는 아이였지만 목사님의 명령에 따라 그만 팔자(?)에 없는 인간 거수기가 된 것이다. 조카는 81번 고속도로를 오가는 수많은 차들을 향해 빨간 깃발을 연신 흔들어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조카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침내 타이어를 교체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이런 황당한 경험도 이 다음에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조카를 위로했다. 하지만 조카가 과연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다.

그나저나 펑크난 타이어를 바꿀 줄 몰라 낯선 땅에서 몇십 분을 기다려야 했던 해프닝을 겪었지만 남편은 타이어 교체하는 법을 배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대신 나라도 유투브에 나와 있는 걸 보고 배워야 할 모양이다. 

딸들아, 너희들은 이 다음에 결혼할 때 펑크난 타이어 정도는 스스로 바꿀 줄 아는 남자랑 결혼해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애마 때문에 생긴 일 공모 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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