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에 대한 예의를 통해 죽음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출발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임을 성찰케 하는 영화 <굿'바이> 포스터.

주검에 대한 예의를 통해 죽음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출발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임을 성찰케 하는 영화 <굿'바이> 포스터. ⓒ (주)케이디미디어

염습(殮襲) 또는 염.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힌 뒤 염포로 묶는 일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입에 곡식을 물리는 데, 이를 '염'이라고 합니다. 시신을 목욕시키고 의복을 모두 갈아입히는 일은 '습'입니다. 

습을 하는 사람 즉 염습사는 습할 옷과 목욕 및 시신의 입에 구슬 또는 엽전과 물에 불린 쌀을 떠 넣어 주는 반함(飯含)할 기구를 준비한 뒤에, 고인을 누이는 자리인 시상(屍床) 위에 올려놓고 목욕시킵니다. 목욕은 물에 향나무를 넣은 '향수'를 솜에 찍어 고인을 씻기는 일을 말합니다.

고인을 목욕시키면서 베로 만든 조그만 주머니인 조발낭에다 떨어진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 등을 담아서 고인과 함께 관 구석에 넣습니다. 그리고 관의 빈 곳에 옷과 피륙 등으로 채웁니다. '입관(入棺)'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발인과 하관을 거쳐 고인을 북망산으로 떠나보냅니다.

인생은 '회자정리 거자필반'(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별에 관대할 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과 조우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이 말을 한 편의 정갈한 작품으로 빚어 놓은 영화가 있습니다. 죽은 자를 씻기고 화장하는 일본식 염습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깊디깊은 성찰을 길어 올리는 영화 <굿'바이>입니다. 

염습사를 통해 본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잘 팔리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평범한 첼리스트 고바야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어느 날 경영난으로 오케스트라가 해체됩니다. 다이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히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는 그의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고향에는 다이고가 여섯 살 되던 해부터 홀로 키운 어머니의 유산인 낡은 카페가 있습니다.

백수가 된 다이고는 '여행을 도와 줄 사람 구함. 연령무관. 고수익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구인광고를 보고 면접을 봅니다. 10초도 안 되는 초스피드 면접에서 바로 합격한 다이고. 그런데, 아뿔싸! 여행사인 줄만 알았던 곳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는 일을 하는 '염습' 회사.

 사장 이쿠에이의 경건한 염습 모습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떠가며 염습사로 거듭나는 다이고.

사장 이쿠에이의 경건한 염습 모습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떠가며 염습사로 거듭나는 다이고. ⓒ (주)케이디미디어


하루 아침에 첼리스트에서 초보 염습사가 된 다이고. 죽은 지 2주가 지난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도우며 제정신을 놓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장이자 노련한 염습사인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가 정성스럽게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모습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배워가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떠갑니다.

삶의 마지막, 죽음. 삶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윤회하는 일상에서 그 경계를 가로질러야 목도할 수 있는 죽음. 그리고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내 삶의 마지막 여행, 죽음. 그 마지막 여행을 도와주는 이들을 옛말로 염습사 또는 납관사라고 불렀고 요즘에는 '장례지도사'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하지원이 맡은 역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일본 제목은 おくりびと(오구리비토)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보내는 사람' 즉, 다이고의 직업인 염습사를 가리킵니다. 미국 제목은 Departures로 '출발', '떠남'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Good & Bye로 '굿'과 '바이' 사이에 쉼표가 놓여 있습니다. 마치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할 희로애락애오욕의 삶을 '굿'하게 살다 '바이'하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영화의 제목이 나라별로는 다르지만 '죽음'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출발하기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속내는 동일하게 품고 있는 셈입니다.  

첼로의 선율처럼 산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다

영화는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배웅합니다. 영원한 이별을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경쾌한 웃음과 묵직한 감동도 선사합니다. 그러나 염습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나 일본이나 차가운 멸시뿐입니다. 다이고가 직면한 아픔입니다.

염습을 한다는 사실을 안 아내 미카가 "더러운 손 치우라"며 보따리를 싸선 친정으로 가는 것이나, 여고생을 염습하러 갔다가 상갓집 면전에서 "남의 시체나 만지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냐"는 모욕은 다이고를 흔듭니다. 임신을 해 집으로 다시 돌아 온 미카는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이지메 대상이 된다"며 다시금 만류합니다.

 염습사를 반대하는 아내와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갈등하던 다이고는 후지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자신을 추스른다.

염습사를 반대하는 아내와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갈등하던 다이고는 후지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자신을 추스른다. ⓒ (주)케이디미디어


흔들릴 때면 다이고는 첼로를 켭니다.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다이고는 죽음의 이별을 준비하는 염습이 첼로를 연주하는 예술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합니다. 이쿠에이가 고인을 염습하는 정갈한 장인정신을 지켜보며 다이고가 속삭이는 다음의 독백은 이를 보여 줍니다.

"돌아가신 분을 보내 드리기 위해 영원의 미를 추구한다. 그것은 냉정하고 정확하며 무엇보다도 상냥하게 이루어진다. 작별하여 고인을 보내 드리는 것, 고결하며 모든 것들이 숭고한 일 같았다."

유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인의 맨살이 보이지 않게 옷을 갈아입히고, 자로 잰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인을 수습하여 곱게 단장하고, 마지막 가는 길을 인도하며, 남겨진 유족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모습이 다이고에겐 그 어떤 예술보다, 그 어떤 품격보다 아름답게 각인됩니다.

그것은 산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염습이 첼로의 선율처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장엄한 의식이자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정임을 나직이 읊는 윤회의 시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출발이자 새로운 여행

아내와의 갈등으로 흔들리던 다이고가 염습사로 인정받는 계기가 옵니다. 어린 시절의 다이고 가족을 기억하는 동네 공중목욕탕 아주머니가 죽자 이쿠에이는 다이고에게 염습을 맡깁니다.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단아한 모습으로 염습하는 다이고를 바라보는 미카. 염이란 죽은 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단장하는 것으로 저 세상으로 출발하는 길을 돕는 경건한 직업임을 직접 목도한 미카는, 다이고를 따듯하게 받아들입니다.

 삶과 죽음이 계절처럼 순환하듯 죽음이란 새로운 문으로 들어섬이며, 죽는다는 건 헤어짐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맞이하는 문이다.

삶과 죽음이 계절처럼 순환하듯 죽음이란 새로운 문으로 들어섬이며, 죽는다는 건 헤어짐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맞이하는 문이다. ⓒ (주)케이디미디어


다이고 역시 아주머니의 염습과 화장을 겪으며 우에하라 아저씨가 화장터에서 혼잣말처럼 건네는 "죽음이란 문이야. 죽는다는 건 헤어짐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맞이하는 문이야"라는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섭니다. 인간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는 또한 무엇인지를.

마침내 다이고는 인간의 죽음을 새로운 출발, 새로운 여행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염습을 통해 죽음의 진정한 안내자로 자리매김해 나갑니다. 죽음이라는 화두에 맞서 작지만 울림 큰 목소리로 죽음을 '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여행의 '출발'로 선택하게 됩니다. 마치 섬세한 선율로 첼로를 연주하듯 고인의 마지막을 혼신을 다해 섬세하게 염습하는 그의 손길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다이고가 실연하는 염습 모습은 실제 염습사를 방불케 합니다. 이는 촬영 전부터 일본 전통 '납관' 기술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해 땀 흘린 결과입니다. 또한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다이고의 첼로 독주 장면 역시 대역을 쓰지 않고 전문가 못지 않은 완벽한 연주 실력을 발휘해 메소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죽음을 넘어 삶에 임하는 태도를 말하다

염습사로 거듭나는 다이고에게는 견딜 수 없는 기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섯 살 때 애인과 함께 집을 떠나면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부둣가에서 날품팔이를 하며 먼발치에서 다이고를 그리다 초췌한 주검으로 되돌아오고 다이고는 아버지를 부정합니다. 부자간의 30년 만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30년 만에 주검으로 돌아 온 아버지는 다이고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돌 편지’를 손에 쥔 채 눈을 감고, 다이고는 그런 아버지를 염습하며 화해한다.

30년 만에 주검으로 돌아 온 아버지는 다이고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돌 편지’를 손에 쥔 채 눈을 감고, 다이고는 그런 아버지를 염습하며 화해한다. ⓒ (주)케이디미디어


이불채로 입관하려는 장의사들의 무성의에 분노한 다이고는 그들을 밀쳐내고 직접 아버지를 염습합니다. 그리고 경직된 아버지의 손을 풀자 떨어지는 작은 돌멩이 하나. 그 돌은 30년 전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개울가에서 어린 다이고 손에 쥐어준 '돌 편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유일하게 남아 있던 돌 편지. 다이고가 임신한 아내 미카 손에 돌멩이를 건네주며 들려줬던 그 돌 편집니다. "돌 편지는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닮은 돌을 상대방에게 전해줬대. 받은 사람은 그 돌의 감촉이나 무게를 가지고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렸대."    

아버지의 돌 편지를 미카의 손에 쥔 채 두 손을 모아 뱃속의 아기에게 전하며 다이고는 원망과 증오와 그리움과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돌 편지'를 매개로 난생 처음 "아버지"를 속삭이며 용서와 화해를 하기에 이릅니다.

삶과 죽음을 계절이 순환하듯이 떠나고 돌아옴을 첼로를 켜는 염습사의 섬세한 손길을 따라 한 편의 정갈한 진혼곡으로 직조한 <굿' 바이>는 다이고 부자의 화해를 통해 모든 죽음은 삶에게 말을 거는 것이며,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는 출발이라고 읊조립니다.  

지난해 일본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제32회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한편 중국 금계백화 영화제와 일본아카데미를 모조리 휩쓴 웰 메이드 영화 <굿' 바이>는 죽음을 보는 또 다른 시선 곧 삶에 임하는 태도를 견결히 곧추 세우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굿 바이 염습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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