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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경찰관이 부르는 빨치산 노래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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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생. 올해 84세, 강동식(가명)씨는 1949년부터 1974년까지 25년간 경찰직을 수행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찰직을 수행한 강동식씨가 보고 느꼈던 것들은 무엇일까?

강 할아버지가 경찰로 몸담았던 그 시기는 해방이후 혼란스럽던 사회, 이념대립의 여순사건, 동족간의 비극인 6.25를 거쳤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던 그 시기다. 그야말로 한민족의 가장 처절했던 격동기를 겪고 온 것이다.

지난 21일, 강동식 할아버지가 필자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의외였다. 더욱이 의자에 앉아 '빨치산 노래', '혁명가'등을 들려주던 것은 그가 살아온 이력(?)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강 할아버지는 이념이 아닌 인간의 삶을 필자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강 할아버지는 순천시 낙안면 출생이지만 해방 이전에 북쪽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스테인리스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관해서도 알게 됐고 착취의 현장도 목격했기에 그들이 하는 행태에 염증을 느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온 강 할아버지는 마을 주민 중에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와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이가 있어 친구들과 함께 그 이념서를 읽고 배워 막연하게 사회주의가 이상적 삶이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남쪽 사회는 사상적 대립이 극에 달해 생각이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이가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잡아가기 시작했고 강 할아버지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그것을 피해 부산으로 대구로 피신의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선택한 것이 경찰이었다. 군대문제도 있었지만 잡혀가는 것을 피할 목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경찰에 들어감으로써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25년의 경찰생활동안 숱한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곳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친구들의 죽음도 포함돼 있다고 말하며 담배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해방 이후부터 여순사건, 동족상잔 등의 격변기에 경찰로 25년 근무한 전직 경찰관인 강동식(가명)씨가 여순사건에 관해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여순사건, 동족상잔 등의 격변기에 경찰로 25년 근무한 전직 경찰관인 강동식(가명)씨가 여순사건에 관해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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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할아버지가 당시 "무고한 양민의 희생이 수없이 일어났다"라고 표현하는 데는 '경찰의 행위도 그렇고 빨치산의 행위도 그랬다'는 둘 다를 지칭한다. 그러면서 기억나는 일로 경찰 내부에 전라도 3대 악질이라는 경찰이 있었는데 그중 한 경찰은 사람을 잡아다가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거기서 얻은 소득)를 한다면서 정초에 죽이는 지독함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빨치산은 경찰복장을 하고 마을에 내려와 주민 모두를 모아놓고 살해하고 국군이 벌인 일이라고 소문내고 다니던 일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강 할아버지가 조사관이었기에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대부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얘기해 준 것이다.

여느 할아버지처럼 "공산당은 어쩌고 빨갱이는 어쩌고"라는 얘기가 아닌 빨치산의 노래를 들려주고 또, 한쪽으로 편향된 것이 아닌 당시 양쪽에서 저질렀던 처참한 양민학살을 필자에게 공평하게 들려준 것은 의외의 일이었지만 필자에겐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가감 없이 기록해야 한다' '평가는 후대에게 맡기자'는 것이 강 할아버지의 생각인데 그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비극적인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며 어느 특정 측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순"임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25년 경찰직을 수행하고 높은 상까지 받았기에 그 이력만으로 강 할아버지를 우향우의 삶이라고 바라보는 것도 어찌 보면 편향된 시각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강 할아버지가 빨치산의 노래를 들려주기 전까지는 필자 또한 그 범주 안에 들지 않았다고 확언하기 힘들다. 강 할아버지의 "이쪽도 반성할 일이 있고 저쪽도 반성할 일이 있다"는 작은 양심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경찰,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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