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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은 여수 앞바다에서 잡히는 돌게로 담근다
▲ 게장 이 집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은 여수 앞바다에서 잡히는 돌게로 담근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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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 사람들은 흔히 입에 착착 감기면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밥도둑'이라 부른다. '밥도둑'이란 배가 몹시 고파 밥을 훔쳐 허겁지겁 맛나게 먹는 것처럼, 밥맛이 절로 나는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을 밥도둑이라 부를까.  

'밥도둑'이라 부르는 음식은 여럿 있다. 길손(나)이 그동안 '밥도둑'이란 애칭으로 손꼽았던 음식은 젓갈류로는 생멸치젓, 갈치속젓이다. 바다에서 나는 음식으로는 꽃게장, 돌게장, 명태조림, 고등어조림, 생갈치찌개, 참조기, 살짝 구운 햇파래김 등이다. 땅에서 나는 음식으로는 삶은 호박잎과 머위잎, 깻잎조림, 묵은지 등이다.

그렇다면 어느 음식이 진짜 '밥도둑'일까. 사실, '밥도둑'이라 불리는 여러 음식들 중에서 진짜 '밥도둑'을 가려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계절에 따라, 그날 입맛과 기분, 시간,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가 몹시 고플 때 먹는 음식은 어떤 음식이라 하더라도 다 진짜 '밥도둑'이라 할 수 있다.

길손이 요즈음 맛 본 음식 중 진짜 '밥도둑' 하나를 꼽으라면 여수 오동도 들머리 곳곳에서 팔고 있는 돌게장이다. 돌게장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으로 나뉜다. 길손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뒷맛이 깊은 양념게장보다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입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간장게장을 진짜 '밥도둑'이라 부르고 싶다.

주방 한 켠에 있는 수족관에서 집게발을 잔뜩 벌린 돌게를 건져 올리는 주인 김정오씨의 손길이 바쁘다
▲ 게장 주방 한 켠에 있는 수족관에서 집게발을 잔뜩 벌린 돌게를 건져 올리는 주인 김정오씨의 손길이 바쁘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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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생선일까? 생선이 아닐까?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게는 한자어로 해(蟹)라 하며, 한글로 '궤' 라 불렀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1758~1816)이 쓴 <자산어보>와 서유구(1764~1845)가 쓴 <전어지>에서는 게를 개류(介類)에 넣었고, 정약용(1762~1836)이 편찬한 사전 <물명고>에서는 게를 개충(介蟲)에 넣었다.

조선 전기 문신 노사신(1427~1498)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참게를 해(蟹)라 하고, 대게를 자해(紫蟹)라 적었다. 그렇다면 게는 생선일까, 생선이 아닐까. 게는 절지동물 십각목(十脚目) 파행아목에 속하는 갑각류다. 여기서 절지동물이란 팔과 다리에 마디가 있는 동물을 말한다.

생선이 어류라면 게는 갑각류라는 그 말이다. 게는 물에서 나는 보약이라 할 만큼 건강에 아주 좋다. 게는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어 자라는 어린이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지방이 적고 소화가 아주 잘 되기 때문에 회복기 환자나 성인병 환자, 노인들에게 건강식으로도 그만이다.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도 게는 '몸의 열기를 푼다'라고 적혀 있다.

게는 여러 가지 찌개를 만들 때 부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이는 게에게 향긋한 단맛을 내는 글리신이나 알긴 타우린 등의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길손이 앞글에서 요즈음 진짜 '밥도둑'으로 손꼽은 게장은 여수 앞바다에서 갓 잡은 신선한 돌게를 간장(간장게장) 혹은 고춧가루(양념게장)에 절인 음식을 말한다.

양념게장(왼쪽)과 간장게장
▲ 게장 양념게장(왼쪽)과 간장게장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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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 하면 여수 돌게장이지라"

"게장, 하면 여수 돌게장이지라. 게장을 그냥 게장이라 부르지 않고 간장게장이라 부르게 된 것도 고춧가루에 절인 양념게장과 구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당게. 사실, 양념게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부터 나왔지라. 여그 여수 게장은 깨끗이 씻은 돌게를 여러 조각으로 토막을 낸 뒤 파와 마늘, 생강,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섞은 간장을 부어 만든당게."

8월 22일(토) 낮 1시. '2012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위한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에 참가한 누리꾼 24명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게장백반전문점 '새여수횟집'. 오동도 들머리, 잔잔하고도 짙푸른 남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이 집은 단체손님 300명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실내가 몹시 넓다.

이 집에 들어서자 주방 한 켠에 있는 수족관에서 집게발을 잔뜩 벌린 돌게를 건져 올리는 주인 김정오씨의 손길이 바쁘다.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김씨에게 이 집 게장은 어떻게 담그냐고 묻자 살포시 웃으며 간략하게 설명한다. 지금은 점심 때여서 손님이 많아 몹시 바쁘니 한가할 때 찾아와 더 물어보란 투다.   

사진 몇 장 찍은 뒤 함께 온 일행들이 마주보고 앉아 있는 널찍한 방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 위에 밑반찬이 쭈욱 깔린다. 오늘의 주인공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들어설 자리만 한가운데 비워둔 채. 밑반찬은 갈치속젓과 무고등어조림, 돼지두루치기, 고구마순조림, 깻잎조림, 도라지나물, 김치 등을 합쳐 13가지 정도.

신선한 게를 고춧가루와 배, 양파, 생강, 마늘, 참깨, 참기름 등으로 버무려 매콤달콤하게 만든다
▲ 양념게장 신선한 게를 고춧가루와 배, 양파, 생강, 마늘, 참깨, 참기름 등으로 버무려 매콤달콤하게 만든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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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군님한테만 줄려고 숨겨놓은 그 밑반찬 좀 내놔 보랑게"

"이거!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 밑반찬이 영 시원찮네. 오동도 게장 아짐! 낭군님한테만 살짝 줄려고 숨겨놓은 그 밑반찬 좀 푸짐하게 내놔 보랑게. 오랜만에 전국 각지에 있는 귀한 분들이 여수를 찾아와 밥을 먹는 데 반주도 한 잔 있어야 하것제. 배고파 숨넘어가는 분들 많은 게 싸게 싸게 내보랑게."   

소주를 시키기 위해 잠시 일어나 주방으로 가자 구수한 전라도 말이 살갑게 귀를 파고든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네 명이 마주 보고 앉아서 먹는 밑반찬치고는 다른 게장백반 집에 비해 양도 적고, 가지 수도 좀 적은 듯하다. 한 가지 특징은 다른 게장집에서는 올라오지 않는 삶은 호박잎이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소주를 홀짝거리며 밑반찬 이것저것 맛본다. 그중 구수한 깊은 맛이 나면서도 씹을 것도 없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무고등어조림과 아삭아삭 향긋하게 씹히는 고구마순조림이 입맛을 당긴다. 가끔 조금씩 찍어먹는 짭조름하고도 구수한 깊은 맛이 배어 있는 갈치속젓도 젓가락을 자꾸만 유혹한다.

그밖에 다른 밑반찬은 그 맛이 그 맛이다. 이 집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맛은 배어있지 않고 다른 백반게장집과 엇비슷하다는 그 말이다. 게다가 무고등어조림과 고구마순조림 등 밑반찬 몇 가지는 금세 동이 나고 만다. 떨어진 밑반찬을 더 시킨 뒤 소주 한잔 다시 홀짝거리고 있자 이 집이 자랑하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식탁 한가운데 떡 버티고 앉는다.      

가끔 조금씩 찍어먹는 짭조름하고도 구수한 깊은 맛이 배어 있는 갈치속젓도 젓가락을 자꾸만 유혹한다
▲ 갈치속젓 가끔 조금씩 찍어먹는 짭조름하고도 구수한 깊은 맛이 배어 있는 갈치속젓도 젓가락을 자꾸만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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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랑게"

"게장 4인분이 왜 이렇게 적은 그릇에 나오요?"
"드시다가 더 달라면 얼마든지 더 드릴 테니 걱정 끄고 맛있게나 잡숴."
"다른 집에 가니까 엄청나게 큰 그릇에 푸짐하게 담아내던데…."
"아, 먹다 남기는 것보다 양이 적어도 남기지 않는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랑게."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생각보다 적은 그릇에 담겨져 나오자 일행들이 여기저기에서 한 마디씩 내뱉는다. 하긴, 종업원 말도 맞다. 지난 늦봄이었던가. 여수에 사는 조찬현 기자와 함께 여수에서 이름 높은 개장백반전문점 두꺼비식당과 황소식당에 갔을 때도 양이 너무 많아 반도 채 먹지 못하고 부른 배를 주체하지 못하며 일어서지 않았던가. 

뜨끈한 밥 한 수저 입에 물고 먼저 양념게장부터 맛본다. 게 다리 한 짝 입에 물고 쭈욱 빨자 꽉 찬 게살이 쏘옥 빨려 들어온다. 말 그대로 매콤새콤달콤한 맛이다. 게살이 입에 들어오자 밥을 씹을 틈도 없이 그대로 술술 넘어가버린다. 비릿한 맛은 그 어디에도 없고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입속을 맴돈다. 근데, 조금 맵다.     

"이 집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은 여수 앞바다에서 잡히는 돌게로 담근다"고 누군가 귀띔하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간장게장을 맛본다. 이 집 간장게장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다가오는 은근한 맛이 일품이다. 간장게장 두껑에 밥을 비비려다 두껑이 너무 작아 젓가락으로 속에 든 살을 살살 발라내 쌀밥 위에 얹어 슬슬 비벼 입에 넣는다.        

이 집 호박잎은 아주 부드럽고 향긋했다
▲ 호박잎 이 집 호박잎은 아주 부드럽고 향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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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가면 누구나 밥도둑이 된다

"오동도 게장 아짐! 여기 빨랑 밥 한 그릇 더 주랑게."
"아따! 성미도 급하요."
"내는 고향이 갱상도 아이요."
"여기요! 게장도 좀 더 주세요."

꿀맛! 그래, 이런 맛을 두고 '꿀맛' 혹은 '기찬 맛',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 하는가. 이번에는 게장 간장 한 수저 쌀밥 위에 끼얹어 슬슬 비벼 입으로 가져간다. 캬! 그 맛 한번 정말 끝내준다. 입에서 절로 '진짜 밥도둑이 여기에 있구먼'이란 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그렇게 몇 수저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공기가 도둑맞고 없다.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시작한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밥과 게장을 더 달라는 소리도 터져 나온다. 길손도 밥 반 공기를 더 밥도둑처럼 후딱 먹어 치웠다. 길손은 마지막으로 삶은 호박잎에 밥과 갈치속젓을 얹어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지금 이맘때면 호박잎이 좀 드세질 때도 되었건만 이 집 호박잎은 아주 부드럽고 향긋했다.

여수 오동도 들머리에서 맛보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올 가을, 애인 혹은 살가운 벗이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는 분들은 여수 오동도 들머리로 가서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꼬옥 맛보라. 여수에 있는 어느 집 게장이 더 맛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마시라. 여수 게장식당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나 진짜 '밥도둑'이 되니까. 

게장 이렇게 담그세요
양념게장은 2~3일 안에 먹어야

간장게장

'진짜 밥도둑이 여기에 있구먼'
▲ 간장게장 '진짜 밥도둑이 여기에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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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를 물에 담아 솔로 깨끗하게 닦은 뒤 다시 한번 깨끗한 물에 헹군다.
2. 물기를 닦은 다음 게를 옹기에 담아 약 6시간쯤 소금에 절인다.
3. 게장에 사용할 간장은 참기름과 설탕, 파, 마늘, 생강, 고추 등과 함께 미리 끓여둔다.
4. 소금에 절인 게를 꺼내 옹기에 담아 뜨겁게 끓여둔 간장을 붓는다.
5. 한 시간이 지난 뒤 간장만 따라내 다시 끓여 게가 든 옹기에 붓는다. 이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한다. 이렇게 해야 게도 소독되고 혹시 모를 불순물도 제거된다.
6. 2주 동안 숙성시킨 뒤 차갑게 식혀서 먹는다.
7. 비린내를 없애고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해 레몬이나 후추, 한약재 등을 넣을 때도 있다.

양념게장

1. 신선한 게를 고춧가루와 배, 양파, 생강, 마늘, 참깨, 참기름 등으로 버무려 매콤달콤하게 만든다. 
2. 반나절 동안 숙성시킨 뒤 먹는다.
3. 양념게장이 가지고 있는 매콤새콤달콤한 맛을 잃지 않으려면 2~3일 안에 다 먹는 것이 좋다.
4. 게를 양념에 버무리기 전에 끓인 간장과 액젓에 살짝 담그면 맛이 더 잘 배며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간장게장, #양념게장, #여수 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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