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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제를 접하고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만남과 사랑의 시작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눈물로 읽은 14년 전 아내의 일기, 그 안의 사랑" 이란 제목으로 이미 공개해버렸습니다. 들여다 볼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주체를 못하는 너무도 아름다웠던 슬픈 우리들의 연애시절 사랑, 그리고 추억입니다.

 

그즈음,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소위 사고를 치고 그걸 견디지 못해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14년 후에 우연히 읽게 된 당신의 일기 속에 담긴 내용 중 일부입니다.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그가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오늘도 밤을 꼬박 새웠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금 시작하면 되는데, 하루 종일 그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방황을 끝내고 빨리 돌아와 달라고."

 

"나는 그를 믿는다. 그는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당신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두 달 정도의 긴 방황을 끝내고 돌아왔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이 꼭 지 애비 닮았다고 구박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씩씩하고 건강한 아들 하나를 두고 티격태격하면서 우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가 돌아왔다. 지친 모습이었지만 웃는 얼굴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를 보면서 적어도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뿐." 

 

그렇게 우린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대책없는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무려(?) 16년을 살아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이 가끔 그랬죠.

 

"나나 되니까 당신같은 사람 비위 맞추고 살아주는지 알아, 당신은 혼자 살아야 해, 권위적이고 몰상식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그럴 때마다 전 항변을 했죠?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그래서 목소리가 높아진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그래 미안해, 당신 말이 맞아. 다음부터 달라지도록 노력할게."

 

속으론 그렇지 않더라도, 비록 빈말일지라도 그렇게 하면서 다가가 살포시 안아 주었더라면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 전부라고 말하는 아들 교육문제에 있어 악역은 당신에게만 맡기고 좋은 아빠인 척 했습니다. 아이들에겐 체벌보다는 칭찬이 필요하다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논리로, 맞벌이를 하면서도 미안해하기는커녕 남자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라면서 설거지는 물론, 청소기 한번 잡아 본 적이 없습니다.

 

주말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누워 TV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차라리 눈 앞에 보이기라도 하지 말지. 그러면서도 직장에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면 온갖 인상을 다 쓰고 말 한마디 안 해서 당신 속을 뒤집어 놓았고, 똑같은 부모인데 친가쪽은 일년에 꼬박꼬박 두세번씩 가면서 처가쪽 한 번 가자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기 일쑤였고 가더라도 생색을 얼마나 냈는지.

 

만날 술에 취해 세벽에나 들어와 주사를 부리고 혹 약속이 있어 당신이 조금 늦게라도 들어오면 여자가 그러면 안 된다고 얼마나 퍼부었는지.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전셋집을 전전하는 경제적인 무능력은 또 어떻고요.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당신이 힘들어할 때 "힘들지, 미안해, 좋아질거야"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이런 한심한 작자와 당신은 16년을 살아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당신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화가 나면 그랬죠. 당신같은 사람하고는 1년이상 살아줄 여자 없을 거라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은 당신의 희생으로 얻은 것입니다.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속만 썩이던 사람 죄 받아서 먼저 갔으니 미련 갖지 말고 훌훌 털고 일어나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리고 착한 사람이기에 행여나 조금이라도 힘들어할까봐 드리는 부탁입니다. 나머진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당신은 누구보다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원없이 행복을 누리다 지겨워질 때 쯤 저의 곁으로 온다면 누구보다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겐 오직 당신뿐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태그:#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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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보여주는 즐거움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합니다. 재주가 없으니 그냥 느낀대로 생각나는대로 쓸 겁니다. 언제까지 써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무모하지만 덤벼들기로 했습니다. 첫글을 기다리는 설레임. 쓰릴있어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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