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차림의 여자 셋이 음습한 지하 공간에 나란히 서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벽 너머에서 여자들을 선택하고 속옷마저도 벗어던질 것을 요구한다. 암흑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그녀들의 하얀 나신을 게걸스럽게 훑어보는, 탐욕스러운 눈동자.

 

<언노운 우먼>의 오프닝 씬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 다음 씬과 직접적 연결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는 이의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국에 이르러 관객들이 오프닝 씬을 떠올릴 때, 이 장면이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이고 비극의 전주곡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금 전율하게 된다.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이 압도하고 있는 극장가에 몸 사림도 없이 발을 들여놓은 <언노운 우먼>은 사실 2006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이후 각국의 영화 시상식에서 수상기록을 이어나가며 <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엔니오 모리꼬네 콤비가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며, 국내 관객들에게는 2008년 메가박스 유럽 영화제(MEFF)를 통해 알려져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중고신인'이기도 하다.

 

현재의 삶을 비집고 파고드는 플래시백

 

<언노운 우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기법은 플래시백이다. 예전에 성매매 여성이었던 노란 머리의 이레나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은 끔찍한 학대의 기억이다. 이 회상 장면들은 급작스럽게 현재 검은 머리의 이레나가 살고 있는 세계로 난입해서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다. 특히 신음소리와 선혈이 낭자한 플래시백들은 찰나의 깜빡임에 가깝게 삽입되고 있다. 마치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계속해서 비집고 올라오는 기억들처럼 말이다.

 

 이레나의 눈에는 항상 불안이 그득하다.

이레나의 눈에는 항상 불안이 그득하다. ⓒ (주)세종커뮤니케이션스

 

플래시백의 역할이 단지 고통의 재각인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회상 장면들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제공된다기보다는 순간적이고도 단편적인 모습들만을 담은 채로 빈번하게 노출된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기억들의 침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의 진행을 유도하면서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레나가 과거의 굴레로부터 도망치면서 그 자신도 누군가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좇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를 뒤쫓는 이는 누구인지는 흐릿하기만 하다. 왜일까? 이레나의 과거와 현재는 단절되어있고, 그 둘마저도 각각 파편화된 채로 존재한다. 완성된 이야기는 없고 오직 조각들만이 산재해있기에 '진실'에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못한 것이다.

 

빼앗겨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여정

 

잔혹한 운명은 이레나에게서 행복을 앗아가기만 했지 돌려준 적은 없다. 플래시백이 보여주는 과거는 절대적 약자로서의 고통과 수탈의 역사다. 그녀에겐 진정한 사랑을 받을 권리(연인)도, 사랑을 줄 권리(자신의 아기)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의 그녀는 빼앗긴 자기 몫의 행복을 자신의 손으로 돌려받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아다처 부부의 집에서 그들의 딸 떼아를 보고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라 확신한 이레나. 이제 그녀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이레나의 떼아를 향한 모성애는 부모의 사랑에 굶주린 떼아와 자신의 아이를 빼앗겨왔던 이레나 모두에게 구원으로서 다가온다. 이레나의 사랑이 진정한 모성애라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떼아에게 강요하는, 아동학대에 가까운 비밀 훈련을 통해 드러난다. 또래들에게 린치를 당하기만 하면서 대들지도 못하는 떼아의 모습에서 사지가 묶인 채로 유린당하면서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가 겹쳐보였던 것일까. 이레나의 가혹한 훈련은 자신의 딸에게 치욕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상징적인 분투이다.

 

 이레나와 떼아, 둘만의 비밀훈련.

이레나와 떼아, 둘만의 비밀훈련. ⓒ (주)세종커뮤니케이션스

 

그러던 어느 날, 이레나는 떼아가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아이와 끈질기게 싸움을 벌인 끝에 이기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의 얼굴엔 그 어느 때 보다도 밝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침내 그녀를 옥죄어오던 과거가 그 실체를 드러낸다. 바로 이레나가 흉기로 찌르고 도망쳤던 옛 포주 몰드다. 영화나 현실이나 별 차이가 없는 점 중 하나는, 죽은 줄 알았던 악당은 꼭 살아 돌아와서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굴복하기로 하면 이전보다 더욱 비참한 결말이 기다린다. 이레나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흐르는 '지중해풍 스릴러'

 

<언노운 우먼>은 제목 그대로 '언노운 우먼'인 이레나의 이야기이다. 장르는 미스터리-스릴러로 분류되고 있으나 이 영화의 극적 생명력은 동류의 영화에서 보기 쉬운 치밀한 두뇌싸움이나 악마적 카리스마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아다처의 부인 발레리아가 보았을 때 이레나는 자신의 가정을 해체하려는 위협세력이지만, 악역이라기엔 수시로 허점을 보여 위기에 처하고 항상 불안에 떠는 이레나의 모습은 두려움보다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레나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고 그녀의 정체가 드러날수록, 정체불명의 여인을 둘러싼 미스터리로서의 생명력은 퇴화되고 점차 이레나의 비극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휴먼 드라마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인다.

 

여러모로 헐리웃 스릴러물과는 차별화되는 <언노운 우먼>.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이 흔치않은 '지중해풍 스릴러'에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매력에 화룡점정을 이루는 것은 바로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오랜 파트너,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다. <언노운 우먼>은 그 어느 영화보다 음악의 비중이 크다.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현악기 위주의 음악들은 자극적인 소리를 자제한 채, 특유의 음습한 화면 그리고 극적인 변화와 맞물려 최대의 효과를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이레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 같은 아름다운 선율의 메인 테마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2009.07.05 10:59 ⓒ 2009 OhmyNews
언노운 우먼 쥬세페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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