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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스승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1961년 5월 사범학교 2학년 시절에 JRC(지금의 RCY) 순천지구 봉사부장을 맡고 있었다. 전남도 적십자사에서 온 공문에 의해서 시내 3개 고등학교 JRC 대표들과 협의를 하여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한해 전 강격여상 JRC 회원들이 입원한 스승을 위해 모금을 해서 돕던 일을 기려서 전국적으로 스승께 감사드리는 날로 하자는 것이었다.

 

청소년적십자가 조직된 학교에서만이라도 스승의 날인 5월 셋째 주 금요일에 선생님들께 간단한 선물과 꽃 달아 드리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였다. 이렇게 스승의 날을 직접 만든 사람 중의 하나인 내가 이제 교사라고 스승의 날 접대를 받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라고 돈 봉투 같은 것을 준다는 도시학교에서 근무를 한 적이 없었기에 그런 것을 받은 적이 없었다.

 

더구나 경기도에서도 최북단의 파주군 그것도 민간인통제구역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임진강가에 위치한 장파국민학교에서 근무하는 나는 선물 같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기다린다고 솔직히 줄 사람도 없는 고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어서 긴 둑이라는 뜻으로 장파리라는 이름이 생긴 마을이었다. 한때 미군이 주둔하여 마을이 미군과 관계있는 음식점이나 접대업소들이 즐비하던 마을이었으나 내가 근무하던 무렵에는 미군이 철수하여서 폐촌 같은 쓸쓸한 모습이라고 말을 들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담임을 하고 있는 2학년 중에 부반장이 된 아이는 덩치는 커다랗지만 엉석받이였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버스 종점에서 다방을 운영하는 분이었는데 이 아이가 늦게 태어나서 귀염둥이 인데다가 이 반에서는 유일하게 아버지의 직업이 공무원이고 맞벌이를 하는 집이었다.  그런 탓에 아이는 몹시 어린 짓만 하여서 아이들의 놀림을 받곤 하였다. 

 

5월 초 어느 날, 아이들 앞에서 "나 오늘은 내가 세수하고 밥을 먹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깔깔거리면서 "야아, 혜령이가 처음으로 세수를 했단다"하고 웃음보따리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이 고장의 아이들은 농삿일에 바쁜 부모들이 돌보아줄 여력이 없을 만큼 바빠서 입학을 하기 전부터 자기가 밥을 챙겨 먹고 집안 청소를 하는 등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할 만큼 자기 일은 물론 집안일을 돕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분명 웃음거리일 뿐이었다.

 

이런 아이가 부반장이되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는 부모님이었다. 그래서인지 스승의 날 전 날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시켜서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교실을 정리를 하는데 혜령이 엄마가 교실에 들어섰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세수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는 자기 스스로 하는 버릇을 길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머뭇거리면서 내미는 것은 하얀 봉투였다.

 

"저는 이런 것을 받지 않습니다. 넉넉지는 못하다고 하지만 월급을 받아서 가족들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 시킬 정도는 됩니다" 했더니 "선생님 봉투가 적어서 그러십니까? 저도 여태까지 이렇게 해본 적이 없지만 선생님이 너무 아이들에게 잘 해주셔서 감사의 마음으로 담은 것인데 이렇게 거절하십니까? 돈이 너무 적어서 그러십니까?"하면서 무안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낭패스러워서 그러는 것인지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나는 정말 낭패스러웠다. 사실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렇게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고 나서 기어이 안 받는다는 것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제가 돈이 많고 적은 것을 알 수도 없는데, 금액이 적어서 안 받는다는 말은 정말 억지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받은 적이 없어서 못 받는 것입니다"했더니 "선생님, 전교조 하시는 거예요?"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전교조가 아직 승인이 되지 않는 불법단체이었다. 아마도 공무원이기에 이 전교조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던가보다. 그런데 내가 때 아닌 전교조 교사로 오인된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돈 봉투를 받기로 하였다. '받아서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봉투를 받아서 집에 오는 내내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였다. 서울에 도착을 하자마자 일단 문구도매상으로 직행을 하였다. 그 돈으로 나누어 주기 좋게 학급 아이들 숫자만큼 학용품을 샀다. 노트와 연필, 그리고 삼각자 세트 등을 사고 나니 라면 박스로 두 개나 되었다.

 

이튿날 두 박스나 되는 짐을 들고 새벽같이 버스를 타니 장사꾼인줄 알고 힐끔거렸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두 시간 가까이 걸려야 학교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짐들이 부담이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학용품을 나누어주면서 "이 학용품은 혜령이 어머니께서 나희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앞으로 혜령이와 잘 지내도록 해야 한다"하고 당부를 하면서 나누어 주었다. 무거운 짐을 부린 것처럼 마음이 가뿐하였다.

 

이튿날부터 혜령 어머니는 점심을 가지고 학교를 찾아왔다. 급식이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지만, 학교에서 이웃(100m 이내)인 혜령이 어머니는 점심을 따뜻하게 먹이기 위해서 따뜻하게 만든 도시락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가지고 오면서 선생님 도시락을 함께 싸가지고 온 것이다. 내가 돈 봉투를 받아서 아이들에게 학용품으로 나누어 주고 나니까 이런 방법으로 내게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다.

 

이렇게 싸다 주는 도시락을 그냥 보낼 수도 없고, 그것을 먹자니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하는 수없이 숙직실로 가서 학교 기사들과 몇 분 선생님이 함께 먹는 자리에 도시락을 내 놓고 함께 나누어 먹기로 하였다. 거절을 하고 돌려보내려다가 이렇게 조치를 취했더니 다행히 며칠은 잘 먹고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집에서 이 도시락 이야기가 나왔다.

 

"글쎄 다방을 하는 집에서 매일 자기 집 아이의 도시락을 싸다 주면서 내 것까지 싸가지고 와서 돌려보냈지만, 매일 싸가지고 오는 것을 돌려보내기도 어려워서 숙직실에서 함께 먹는데 매일 도시락이 짐이 되네."

"그래서 그 집에서 싸다 주는 도시락이 맛이 있어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지 말까요?"

"무슨 소리야. 매일 그렇게 싸다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돌려보내다가 숙직실에서 처리한다고 했지 않아."

"이렇게 반찬도 시원찮은 도시락 안 먹고 젊은 미인이 싸다주니까 기분이 좋겠어요. 날마다 그것을 잡수세요. 도시락 안 싸게."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꾸 그렇게 싸나르니까 부담이 된다는 얘기 아냐? 그냥 돌려보내도 또 싸오니까 학교 아저씨들에게 먹으라고 한다는데 뭘 그렇게 야단이야?"

"그래서 도시락을 안 먹고 가져오곤 했어요? 맛있는 걸 싸다 주니까 아주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말이 꼬리를 물게 되자 도시락 때문에 우리는 결국 부부싸움이 되고 말았다. 한바탕 소란을 겪고 나서 나는 이튿날 점심시간이 되니 더욱 곤혹스러웠다. 하는 수없이 이런 사실을 전화로 알리고 더 이상 싸오지 말도록 부탁을 하였다.

 

"지금까지 학교 아저씨들과 나누어 먹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으니 그만 싸다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하는 말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태그:#돈봉투,, #학용품, #도시락, #장파초등학교,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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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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