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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시선 <북치는 소년>
▲ 후배가 내게 선물했던 시집 한 권 김종삼 시선 <북치는 소년>
ⓒ 노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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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정리를 했다. 이 년 전에 장만한 커다란 5단 책장은 벌써 포화 상태. 꾸역꾸역 간신히 누르고 있던 책들이 터져 나와 온 방을 점령한지 오래였다. 가나다 식으로 정리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장르 별로 간단히 모아두기로 했다.

시집을 정리하다가 유난히 한 권의 책에 눈이 갔다. 100쪽 가량 되는 시인 김종삼의 시선집 <북치는 소년>이었다. 책 표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한 번 손으로 훑자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치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익숙한 인사말과 시어가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배께 쓰다만 편지들이 간간히 보이곤 합니다.'

드문드문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창밖이었고, 그 다음은 거리의 가로등, 그러고선 횡단보도 지나 먼 숲에서 바람이 불었다. 김종삼의 시에서처럼 '담배 붙이고 난 성냥개빗불'은 아직 다 꺼지지 않았다. '불어도 흔들어도 꺼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희미하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와 난 순전히 시 한 편의 인연으로 만났다.

'요연한 유카리 나무 하나'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종삼의 시 '시작노트' 같은 시의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너무 멀리 돌아서 걸어왔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 많은 풍경과 기억,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너무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다. 그 때는 그랬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던 그 때에는 혀로, 행동으로, 무뚝뚝함으로 너무 많이 이의 마음을 베어놓았다. '찬란'한 이름을 갖고 있던 후배, 그 아이도 내가 베어놓은 추억 중 하나다.

나보다 딱 한 학번 아래였던 그 후배 녀석은 입학 당시부터 시 잘 쓰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 어느 누구보다 뜨거우면서도 남에게 칼을 들이밀기보다는, 따뜻하게 배려하고 감쌀 줄 아는 어른스러움도 가진 친구였다.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었는데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 그와 날 맺어준 건 내가 2학년 때 쓴 시 한 편 때문이다.

그 전에는 날 알아보는 이가 극히 드물었지만, 그걸 쓴 이후로는 대부분의 선후배가 알은체 해주었다. 잘 봤노라고, 인상적이었다고 대뜸 평을 던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후배도 그 중 하나였다. 내게 먼저 다가와 손을 건넸고 난 어렵지 않게 그 인사를 받았다. 첫 만남부터 그 아이에게선 만만치 않은 내공 같은 게 느껴졌다. 왠지 나보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차원이 다른 깊이와 시작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열등감이 불러낸 일종의 과장된 생각이지만 적어도 그 때는 그랬다. 그와 나는 반쯤은 열등감으로, 반쯤은 같은 꿈을 가졌다는 동질감 때문에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불면의 시간을 위로해준 시집 한 권

누군가의 격려와 또 다른 누군가의 걱정을 뒤로 하고 나는 2001년 1월 군에 입대했다. 그러고 나서 1년 2개월이 지났을까. 익숙한 이름에게서 작은 소포 하나가 배달돼 왔다. 김종삼 시인의 <북치는 소년>(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 중 하나)이었다.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무심코 한 장을 넘겼다. 두 쪽에 걸쳐 편지가 적혀 있었다.

 'To. 윤영 선배께
 솔직히 말하자면 선배께 쓰다만 편지들이 간간히 보이곤 합니다.'
로 시작하는 후배의 편지. 당시 상황이 쉽게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기억은 아주 지독하게 내 머리를 맴도는데, 또 어떤 것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듯 나를 떠나가기도 했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다시 그 글과 마주쳤다. 눈길이 한 문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선배가 그러셨지요. 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전율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에서 어긋나버린 불량 나사처럼 사람들에게 수없이 얻어맞았던 때, 상병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이미 굳어버릴 대로 굳은 머리는 빽빽한 글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악물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눈이 먼저 감기었다. 그나마 그런 시간이 하루에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불면의 시간들을 견디다 못해 나는 후배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던 모양이다. 그 아인 답으로 그 시집을 보내준 것이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나서야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는 말과 함께.

 '이 책은 제게 시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적어도 제게는 그렇다는 것을 일깨워준 시집입니다.'

후배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을 한 권 더 사서 내게 보내주었다. 완벽과 수다 대신에 짙은 여백과 잔상이 드리워진 그 시편들을. 김종삼 선생의 시가 그렇듯이, 후배는 많은 말 대신 그 단정함 속에 속 깊은 위로를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시 <묵화>)

영화 <빌리 엘리어트>속 소년처럼 발 동동 구르며 엉성한 열기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조근조근 잡아준 건 그 어떤 교수나 선배가 아닌 그 후배였다. 그 아이와 나의 친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군 제대하고 나서였을까. 언제나 충동적이고 불안정했던 그 때의 나는 누구에게나 칼 같은 말을 쏟아내었고, 때마다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나갔다. 아마 그 후배도 그렇게 내게서 멀어졌을 것이다.

뒤늦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이 글로나마 후배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동시에 전한다. 군대에서 외로워하던 나를 위해 아무 이유 없이 격려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던 고운 마음씨의 그 아이를 기억한다. 불어도 흔들어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아직도 그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묻는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아직도 그렇게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는지를. 너무 늦은 편지가 도착하려 한다.


태그:#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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