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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머니
▲ 내 할머니 내 할머니
ⓒ 노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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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알몸을 본 적이 있다. 대장암이 재발하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늘어나면서 할머니는 스스로의 몸을 조절할 수 없었다.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데도 혼자 살았던 터라 한계가 있었다.

주변에 꼼꼼하게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주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혼자 살기를 고집하던 할머니는 그제야 비로소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진 상태였다.

가족들도 선뜻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할머니를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닌 빠른 속도로 소멸해가고 있었다. 할머닌 내게 가끔 같이 살자는 말을 했지만, 집을 떠나서 단둘이 사는 일이 나는 두려웠다.

매번 누가 돈을 훔쳐갔다거나 누군가의 흉을 보는 게 대부분인 할머니의 말을 오랫동안 듣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팔십여 인생을 후회하다가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다가, 며느리와 딸을 욕하다가, 그래도 내 남편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다가 했다. 그런 말들은 괜찮았다.

그러다가 밤에 어떤 검은 그림자를 보았고, 그 그림자가 돈을 훔쳐갔다는 말을 했다. 그 그림자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아줌마가 되었다가, 아주 먼 곳에 사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녀를 극진히 돌보는 둘째 딸이 그림자가 되는 일은 흔했다. 돈을 돌려달라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할머니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는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씩 오는 내게 참 많이도 말을 했다. 그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게 손주의 도리겠지만, 나는 번번이 큰 소리를 냈다. 왜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느냐고, 할머니 돈은 어디 다른 데 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 누구 욕은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말들. 할머니는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만큼 두려움도 커졌을 테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를 욕하다가, 때때로 맥락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키는 150이 될까 말까 하고, 덩치도 작은 할머니가 내 앞에서 옷을 벗었다. 암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화장을 하실 정도로 외모 관리에 신경을 쓰던 할머니에겐 이제 그런 걸 신경 쓸 만한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몸은 너무 말라서 축 늘어진 거죽뿐이었다. 병원이었고, 난 할머니가 검사복 입는 걸 도와드리기 위해 탈의실에 같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때 생각했다. 할머니가 이렇게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구나. 큰 소리로 며느리와 아들, 딸을 휘어잡고 항상 웃는 얼굴로 날 안아주던 할머니가 이렇게나 빠르게 저물어가는구나.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의 젖가슴을 빨다가 잠이 들었다고 하지. 자다가도 깨어나 손을 더듬거리며 찾았다고 하던데. 그때 할머니의 몸은 지금보다 더 탄력 있고 빛이 났겠지. 젖꼭지가 새빨개질 때까지 빨던 그 입으로 이제 할머니의 식은 몸에 입맞춤한다. 할머닌 올 2월 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세상과 이별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암세포로 인해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은 애프터서비스가 불가능했던가 보다.

그래도 마지막은 따뜻했다. 딸과 아들, 사위, 손주들에 둘러싸여 할머닌 한 번뿐인 생을 마감했다. 병원 장례식장에 연락을 한 뒤 영구차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 어른들은 돈 분배 문제로 목소리가 커졌다. 모두 밖으로 나가고 엉망이 된 할머니의 방 안에서 나는 영원히 잠이 든 할머니의 몸 곳곳에 입을 맞췄다. 원치 않게 눈물은 계속 흘러나오고, 나는 말이라기 보단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조용히 할머니 귓가에 속삭였다. 할머니, 미안해요. 머리카락에, 눈썹에, 눈에, 귀에, 코에, 인중에, 입술에, 턱에, 어깨에, 젖꼭지에, 그리고 계속해서 밑으로.

할머니의 얼굴 피부는 참 고왔다. 우유 같은 살결, 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젊을 때 참 예뻤겠구나,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겠구나.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을 거다. 어렸을 때부터 양반 집안의 식모살이를 했다는 할머니는 열여섯에 동네의 이십 대 후반 사내에게 시집을 갔다. 알고 보니 남편은 도박꾼이었다.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집안의 경제와 살림을 책임지느라 할머니는 등골이 휘었다. 하여튼 그런 세월도 얼굴 피부만큼은 비껴간 모양이다. 그리고 난 보았다. 욕창으로 가득한 등판, 너무 가늘어 살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다리, 끝까지 생을 놓고 싶어 하지 않던 그 가는 손가락들. 할머니의 삶은 고단했던가 보다. 생전에 그녀는 그 고통을 딸과 손주에게 내색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팔십여 인생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난 할머니를 영구차로 날랐다. 나도 같이 영구차를 타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운전하는 분을 제외하곤 그 안에는 할머니와 나 둘뿐이었다. 수의로 덮인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루만지다가를 반복했다. 한 생이 끝난 그날은 폭설이 내린 겨울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병원 주변을 배회하다가 정신없이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삼 일 동안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할머니의 몸은 벽제에서 화장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몸 그대로 할아버지 옆에 묻히길 원했지만, 자식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화장해 가루로 남은 할머니가 비로소 나무 상자 안에 담겨 할아버지 옆에 묻혔다. 일요일 따뜻한 오후였다. 모처럼 춥지도 않고 바람도 많이 불지 않는 날이었다.


태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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