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15일, 총 900여 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구로구 고척동에 야구 전용 돔구장을 짓기로 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새로 지어지는 고척동 돔구장은 경기장 크기(가운데 펜스 122m, 좌우 펜스 98m)는 일본의 도쿄돔(가운데 122m, 좌우 100m, 수용인원 5만 명)과 비슷하나, 2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날씨 조건과 관계없이 경기를 가능케하는 돔구장은 한국 야구 팬들의 오랜 소망 중 하나. 돔구장 건설 소식이 알려지자 벌써 프로야구에 열성적인 누리꾼들은 어느 구단이 고척동 구장에 적합한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구단은 '두산 베어스'와 '엘지 트윈스' 그리고 '우리 히어로즈' 세 팀. 이 중 우리 히어로즈가 옅은 팬층에도 많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어 화제다. 두산과 엘지 이외의 팬들은 '1순위'로 우리 히어로즈를 꼽고 있는 상황. 관객 동원능력 최하위에 창단 2년차의 신생팀인 히어로즈가 각기 다른 8개구단의 팬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 팬들 "히어로즈 망하지 말아야 할텐데..."

@IMG@

누리꾼들이 돔구장을 히어로즈에게 밀어주는 이유는 2009 시즌이 시작될 때부터 공공연하게 제기되어 왔던 히어로즈 6월 파산설 때문. 메인 스폰서가 없는 상태에서 구단의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는 "올해 구단 운영자금 200억 원을 확보한 상태다"라고 밝혔지만 현재 구단 앞으로 미지급된 차입금만 100억 원이 넘는 데다, 직원들의 출장비나 원정경기 호텔 숙박비도 연체되는 등 구단 운영 자체가 아슬아슬한 상태다.

구단 사정과 경기 성적은 매우 대조적이다. 4월 18일 현재 히어로즈의 성적은 6승 5패로 두산과 함께 공동 1위. 김시진 감독 및 신인 선수들의 계약금도 지불되지 않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프로야구 팬들의 걱정은 바로 이 지점이다. 6월까지 히어로즈가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가 도중에 구단이 파산하게 되면 WBC로 활기가 더해진 올해 프로야구 판 자체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

기아 타이거스의 팬이라는 이상기(28)씨는 "(구단 사정이) 간당간당하다는 소문이 있다"며 "히어로즈가 잘 하든지 못 하든지 중간에 빠지면 개막전에 짜 놓은 경기 일정은 다 망가지는 셈이니 시즌 내내 분위기가 어수선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산의 팬인 김희준(32)씨는 두산 이외의 경기에서는 히어로즈를 응원하고 있다. "망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라는 것이 그의 말. 또한 누리꾼 '마구앙'은 "상식적으로 히어로즈 구단이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될 경우 당장 두 팀씩 경기가 불가능하다"며 "히어로즈가 파산한다고 해서 KBO도 지원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 답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BO는 지난 2007년 현대 유니콘스를 위탁운영하느라 야구기금을 모두 소진했으며 오히려 올 6월까지 히어로즈로부터 작년에 미처 덜 받았던 가입금 30억 원을 받아내야 하는 '채권자' 입장이다. 히어로즈로서는 도와 줄 사람은 없고, 돈 들어갈 '구멍'은 한두 군데가 아닌 셈이다.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히어로즈를 인수할 기업도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 지난해 KT의 히어로즈 인수설이 언론에 보도되자 KT는 주주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구단도 팬도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IMG@

야구팬들이 상당한 부가가치를 가진 돔구장을 히어로즈 몫으로 점 찍어두는 이유는 히어로즈의 이런 어려운 사정 때문이다. 히어로즈 측도 "메인 스폰서도 막바지 협상 중이고, 올해 운영은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와 별개로 돔 구장은 강력히 원한다"는 입장.

히어로즈가 고척 돔구장을 홈 구장으로 하게 되면 거액의 스폰이나 구단 인수를 받기가 그만큼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매 경기마다 8개 구단 중 가장 적은 관객을 기록하는 히어로즈의 관객 동원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구단 사정에 마음 졸이던 팬들에게도 고척동 돔 구장은 갑자기 등장한 희망이다. 히어로즈 팬인 윤영구씨는 "국내 유일의 돔구장이라고 하면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팬을 끌어 모으는데 큰 힘"이라며 "여름에 잠실구장에서 뙤약볕 맞으며 응원하던 타 구단 팬들도 많이 넘어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목동구장은 주택가와 밀접해 있어, 자주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프로 구단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히어로즈는 경기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경기 중에 전광판에 "인근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음향 및 타악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수시로 띄우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고척동 돔구장은 '아마 야구용'이었던 동대문 구장을 대신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프로야구와는 별 관련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돔 구장을 짓는 서울시가 이미 프로 구단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있고, 대한야구협회 역시 아마야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만 마련되면 사용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한 조건과 공감대가 맞는다면 히어로즈가 돔 구장을 홈으로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한 조건은 아니다. 

경영조건 악화로 인해 백척간두에 선 우리 히어로즈. 히어로즈로서는 갑자기 부상한 고척동 돔구장 건설로 한 줄기 희망을 가지게 된 셈이다. 올시즌, WBC로 눈에 익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우리나라 첫번째 돔 구장을 둘러싸고 우리 히어로즈가 어떻게 살아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야구팬들의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히어로즈 돔구장 프로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