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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사업을 한답시고 서울로 상경해 주공 아파트 전세를 얻어서 생활하다가 사업이 어려워져 2년 만에 이사를 했다. 가진 돈이 없어 전세금만 가지고는 이사할 곳을 구할 수 없없는데, 우여곡절 끝에 상가 건물 3층에 보금자리를 정했다.

1층은 식당, 2층은 사무실이었고 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3층은 주택으로 사용 중이었다. 국민은행에 담보·근저당이 1억 2천만원 가량 잡혀 있었지만 건물 시세를 생각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해 이사를 했다. 건물 주인은 경북 상주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인품이 좋아 보여 안심했다.

건물 주인은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투자로 생각하고 서울에 있는 건물을 매입한 것이고, 전세금액도 크게 변동하지 않을 테니 사업에 재기하기 바란다'는 격려도 해 주었다. 그래도 주변에서 귀동냥한 대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동사무소에서 전세 계약서 확정일자를 받아두었다. 당연한 것처럼 집주인이 전세권 설정을 해주지 않았으므로.

2008년 3월, 강제 경매 통보를 받다

법원의 경매 담당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런 종이를 붙일 권리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 '강제집행예고' 쪽지가 붙은 교회문 법원의 경매 담당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런 종이를 붙일 권리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 사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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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이럭저럭 세월은 흘러갔다. 다행히 약속한대로 건물주는 전세금액을 높이지 않았다. 그런데 건물 주인도 어려운 경기의 파고를 피해가기 힘들었는지 건물을 담보로 다른 대출을 받는 눈치였다. 세입자들에게는 안심하라고 연락도 하였다.

2층 사무실과 지하 창고도 도망가듯 비워진 상태로 새로 임대를 들어오는 이 없이 몇 년 흘렀고, 이후 건물주인은 교회에 세를 주었다.

교회는 예배를 볼 때 마다 앰프를 켜놓고 떠들어 대 3층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특히 목사님의 노래는 이웃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사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근저당 금액이 높아져 있어서 들어오려는 세입자가 없었다.

결국 2008년 3월, 국민은행 여신관리센터로 부터 건물을 강제 경매에 넘긴다는 우편 통보가 건물주 이름으로 왔다. 집주인에게 간신히 연락을 하여 물어 보았더니, 주인은 이미 경매에 넘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입자들에게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곧이어 경매 개시가 되니 배당 요구를 하라는 통지서가 법원으로 부터 왔다. 2008년 5월에 주택임차인용 배당 요구 통지서가 오고 9월이 되어서야 매각 기일이 잡혔다. 첫 매각기일이 10월이었고 마지막 4회 기일은 2009년 2월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법원 경매계에 가서 관련 서류를 열람 및 복사하고 인터넷을 뒤져 진행 절차 등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수많은 변호사들이 경매에 관여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변호사가 변론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어려운(?) 직업인 줄은 예전에 몰랐었다.

그들이 보내온 서류를 보면 '…귀하께서 가지고 있는 법적 권리 및 의무사항을 간과하여 실기하는 일이 없도록…불법으로 법원 경매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업체가 빈발하여, 소유자 및 임차인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사오니…'라고 돼 있는데 왠지 협박처럼 느껴졌다.

법은 가진 자의 편,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공부를 할수록 기가 찼다. 법은 가진 자의 편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세입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권에서의 보호금액은 1600만원 뿐이었다. 확정일자를 제대로 받지 않았으면 그나마도 받을 수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경매에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었고 인터넷에는 관련 정보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이트들이 넘쳐났다. 어떻게 하면 세입자를 몰아낼 수 있는지 그 합법적인 절차를 상세히 안내하고 있었다.

확정일자 등을 받아놓지 않은 세입자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경매 낙찰 후 최종 매각 금액으로 세입자와 근저당이나 가압류를 설정한 은행 등에게 배당을 실시하는 배당일 이후, 법원에서의 부동산 인도 명령서를 수취 거부하여 쫓겨나는 시일을 얼마간 늦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얼마나 배당을 받을 수 있을지 법원에서도 미리 알려주지 않으며 계산하는 방식(소위 권리분석)도 복잡하였다.

건물에 대한 감정가는 7억3천만원 가량이었는데 3번의 유찰 후 4억3천만원 정도에 낙찰되었고 낙찰자에게서 이사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낙찰자가 아닌 변호사 사무실의 입찰 전문 브로커였다. 변호사가 바로 불편한 세입자 정리(?) 전문가인 셈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큰 말썽 없이 강제퇴거하지 않고(강제퇴거에는 낙찰자의 돈이 들어간다. 악랄한 자들은 강제퇴거 비용까지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사 가게 할까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이사비로 얼마의 돈을 세입자에게 지불하면 자신들이 받을 수고비(통상 감정가의 2%)가 줄어드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세입자들을 위로하는 척하면서도 이사 비용은 결국 주지 않으려 했다. 시가대로라면 3억원이나 이익을 본 것인데도. 그래도 면전에서 '브로커'라고 했더니 무척 화를 내었다. 변호사 사무실 실장이라면서.

강제 경매를 당하면서 건물의 세입자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게 되었다. 경매 과정을 통해 누군가의 생존 터전이 누군가에겐 이익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정글이 초식 동물의 삶의 기반이면서, 육식 동물에게는 먹이를 제공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육식 동물에게 먹이는 생명의 기반이지만 이익 추구자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다.

우리 정글에서 살지는 말자

사회의 수준이 낮으면 그 사회는 정글처럼 된다. 즉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익은 추구하돼,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인간사회라 한다. 우리 사회는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일까?

정부는 사회의 수준이 낮아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장치를 약화시키는 정부는 인간을 동물적 수준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은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수준이 나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약자를 배려하도록 독려할 의무가 있다.  

불행히 2층 교회는 확정일자를 받아놓지 않아 전세금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인테리어 비용도 전세금 이상으로 들었을 텐데. 그동안 목사님의 노래 때문에 괴로웠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빙자한 입찰 브로커는 교회 문 앞에다가 '강제집행예고장'이라는 종이를 붙였다. 법원의 경매 담당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런 종이를 붙일 권리가 없다고 펄쩍 뛰었다. 오늘도 교회에서는 고함을 지르며 무엇인가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도 쫓겨나는 세입자는 보호하지 못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응모글



태그:#세입자,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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