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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든 월세든 계약기간이 지나면 계약서를 다시 쓰거나 이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용인이주노동자쉼터는 벌써 4년 넘게 계약서 없이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처음 건물에 세를 들었을 때는 2년을 약정하고 세를 얻었는데, 건물을 임대한 지 만 2년이 되던 12월 말에, 건물주가 전세를 얼마를 올리고 월세를 얼마를 올릴 테니, 계약 연장을 하든지 나가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도 근근이 월세를 내 왔던 터라 계약을 연장할 처지가 못 된다고 입장을 전달했고, 다음해 1월 말까지 건물을 비워주기로 했었습니다.

당시엔 상가 건물에 외국인들이 들락거린다고 시비를 거는 다른 세입자들의 불평과 텃세가 힘들긴 했었지만, 그래도 터미널 앞이라 접근성이 좋아 어지간하면 계약 연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력이 없던 쉼터는 계약 연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전을 계획하고 나자, 오히려 속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새해가 된 어느 날,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거, 뭐하면 그냥 일 년 더 있어. 대신 계약서는 쓰지 않는 걸로 하지."

당시에는 건물 2층과 5층이 비어 있었는데, 우리 쉼터마저 나 가버리면 세입자가 들지 않는 낡은 건물이 휑할 것은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건물주가 계속 강수를 고집할 수 없었던지 계약서 없이 더 눌러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약서 없이 세를 든 지가 벌써 4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4년 동안 보일러 순환 밸브가 고장 나고, 온수통이 터지고, 배관 파이프가 터지는 등, 보일러가 말썽을 피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건물주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직접 수리하는 것 정도는 양반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계약서 없이 눌러앉게 된 세입자 주제에 이 정도는 양보하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건물주가 연세가 많다 보니 언쟁을 하기도 뭐 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폐기 처분된 보일러 물통
▲ 말썽 일으켰던 보일러 폐기 처분된 보일러 물통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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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건물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을 때마다 입을 다문 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미 다 납입했던 청소비와 물세를 다시 요구해 와서 부당하게 더 낼 수 없다는 뜻을 강력하게 주장하다 "방 빼"라는 소리를 다시 들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우리 쉼터는 청소비와 물세를 다른 층 세입자에 비해 과다하게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물 청소비와 물세를 꼬박꼬박 내왔었는데, 중간 관리를 맡았던 다른 층 세입자가 관리비를 넉 달 가까이 내지 않고, 이사를 가 버리면서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건물주와 청소비와 물세 관련하여 몇 달을 다퉈야 했습니다. 쉼터에서 주장한 것은 최소한 물세는 계량기를 기준으로 내는 것이 공평하다는 것이었고, 건물주는 쉼터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건물주 말대로라면 모 통신회사 대리점과 중국집, 노래방이 들어서 있는 1층과 지하가 훨씬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지만,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아군 아닌 아군이 생겼습니다. 전달에 비해 갑자기 물세가 많이 나오자, 1층 중국집에서 "물세를 계량기대로 냅시다"라며 그간 쉼터가 주장하던 바를 거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량기를 기준으로 물세를 계산하기로 세입자들 사이에 동의가 이뤄지자, 건물주는 층마다 계량기를 달았습니다. 우리 쉼터는 이미 계량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건물주는 누수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싱크대 옆에 다시 한 대를 설치했습니다.

건물주가 부엌 싱크대 옆에 설치했다
▲ 계량기 건물주가 부엌 싱크대 옆에 설치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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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계량기 설치가 끝나고 한 달 뒤 물세를 정산하던 날, 완전 대박이었습니다. 물세를 더 못 내겠다고 잡아떼던 중국집은 오히려 물세를 두 배 이상 물어야 했고, 우리 쉼터는 절반 정도의 물세를 내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건물주야 누가 많이 내든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더 못 낸다고 계량기를 달자고 요구했던 중국집이 더 내게 되자,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한 마디 쏘아붙이셨습니다.

"아, 외국 사람들 청소 좀 잘하라고 그래요. 내가 올라 가 보면 무슨 냄새가 그렇게 나는지, 원"

그 일 후로 건물주는 한동안 전화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건물주는 툭하면 '임대료'와 '외국인' 운운하며 방 빼라고 타박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방을 빼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방 빼'라는 말에도 이젠 내성이 생겼고,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에 조목조목 따지기도 하는 원치 않는 투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쉼터를 처음 열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사랑방 같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담이 되더라도 터미널 근처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이래저래 사연 많은 세입자 신세 언제 면할 지 아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응모



태그:#세입자, #건물주, #임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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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고기복의 <이주노동자 이야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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