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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3년에 이사 9번을 이사해도 셋방살이는 면하지 못하다

거실이 넓어 김치냉장고 두대와 일반 냉장고가 자리잡고 있다. 결혼 후 처음 사본 식탁. 자꾸 식탁에 앉아보고 싶다. 인조대리석이지만 깔끔하고 맘에 든다.
▲ 주방 거실이 넓어 김치냉장고 두대와 일반 냉장고가 자리잡고 있다. 결혼 후 처음 사본 식탁. 자꾸 식탁에 앉아보고 싶다. 인조대리석이지만 깔끔하고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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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이사가 차지하는 스트레스 비중이 매우 크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정리할 일은 엄두도 안난다. 필요해서 찾을 땐 보이지도 않더니  어디서 숨어있다 나왔는지 거실 그득히 물건이 쌓여 심란하기 그지없다. 저걸 언제 다 치울까나.

워낙 이사다니는 걸 싫어하다보니 이사를 그다지 많이 다니진 않았다. 하지만 정리한다는게 결코 만만하지 않다. 결혼 23년에 9번 정도 이사했나 보다. 집보러 다니고 계약하고 짐싸고 짐풀고 정리하는 게 왜 그리 싫은지.

가구고 가전제품이고 모두 오피스텔처럼 붙박이로 되어 있으면 좋겠다. 소지품 정도만 간단하게 꾸려서 다닐 수 있길 소원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웬만하면 한 집에서 붙박혀 오래 산다. 직장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길게는 5년까지 살았다. 딱 한 번 고의적으로 1년 반만에 이사를 나온 경우가 있었다.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들어가며 남는 돈으로 재테크 꿈꿔

도우미 아줌마가 작아서 유리창 위에 손이 미치지 못해 남편이 나섰다. 유리를 아예 빼서 닦을 땐 좋았는데 끼우느라 무지 고생함
▲ 베란다 통유리 닦기 도우미 아줌마가 작아서 유리창 위에 손이 미치지 못해 남편이 나섰다. 유리를 아예 빼서 닦을 땐 좋았는데 끼우느라 무지 고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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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임대 아파트는 저렴한 값에 입주할 수 있다기에, 친정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 단출하게 4식구만 이사를 했다. 18평이라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과 너무 달랐다. 설계가 오래된 것이라 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졌다.

크지도 않은 세탁기 6.5㎏짜리가 다용도실에 안 들어가 마루에 놓았고, 마루는 한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 만큼의 공간만 있었다. 안방과 현관이 마주 보고 있어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문 열기가 난감했고 혹시 연다 해도 맞바람이 치지 않아 어린 아이들 키우며 더워서 그해 여름은 무지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원하지 않는 사우나는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그렇게 4식구가 복닥거리고 1년 반을 살았다.

남의 집에 살아도 주로 넓게 살아온 터라 버틸 수가 없었다. 5년을 살고 3년 정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입주 후에 바로 후회를 했다. 꼭 1년 안에 이 답답한 집에서 탈출하리라.

하지만 마음만 있으면 뭐하랴. 돈이 없는 걸. 이사갈 때는 나도 아파트에 살아보는구나 했다. 남은 돈(1천만 원 정도)은 어떻게 재테크를 할까? 나도 주식에 넣어볼까? 그냥 은행에 넣을까? 마음이 설렜는데 남는 돈은 남편 사업 밑돈으로 들어가 버리고 재테크는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남들은 집 늘려 가는데 월셋방으로 나앉다

현관 옆에 쌓여있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짐
 현관 옆에 쌓여있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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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 IMF사태가 터지면서 그나마 알량한 전셋돈 빼서 남편 빚 갚고 의정부 단독 굴속같은 집으로 2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월세방으로 옮겨갔다. 월급의 반은 차압되고. 쥐가 돌아다니고 화장실은 발이 빠질 듯한 공포 분위기였다.

수락산 밑을 정원으로 삼아  계절이 오고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아이들은 커갔고 어른들은 주말농장이니 고사니 보름행사 등의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6년을 살았다.

큰 아이 고 3때 등하교가 멀다는 이유로 다시 서울로 입성했다. 22평짜리 빌라로. 이미 아이들 덩치가 커서 딸 방은 주니어가구 한짝과 책상 하나 놓고 나면 간신히 혼자 누울 정도였고, 아들녀석은 책상 하나 놓고 나면 대각선으로 누워야 간신히 잘 수가 있었다. 안방에 장농 두짝 들어가고 둘이 누우면 돌아누울 틈도 없었다.

거기서 5년을 부비적거리고 살았다. 몸을 한바퀴 돌리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동선이 짧았다. 2년 계약이 끝나도 주인이 아무 말이 없어 2년을 더 살았는데, 세를 올려달란다. 그동안 살아온 정이 있으니 시세보다는 좀 적은 3천만 원을. 내 1년치 연봉이 얼만데 한꺼번에 3천만 원씩이나. 이 집에 이사올 때 대출한 7900만 원도 아직까지 갚고 있는 중이다. 3천만 원을 더 빌리면 나는 빚에 치어 죽을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큰 맘 먹고 나도 부동산계(?)에 입문해볼까, 복부인계(?)에 발을 들여볼까 싶어 작년에 집을 사보겠다고 한동안 돌아다녔다. 선거를 앞두고 집값은 이미 상투처럼 꼭대기에 달해서 도저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부동산계 입문 꿈꾸다 접고 원래 노선대로

정리되길 기다리며 구석에 쌓여있는 짐들
▲ 거실 구석에 쌓여 있는 짐보따리 정리되길 기다리며 구석에 쌓여있는 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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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머리 싸매고 공부 하면 부동산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인터넷에 매달려 부동산 가격을 알아보았다. 두 세 달을 그렇게 보냈다. 20여 년을 부동산에 눈길 한 번 주어보지 않은 초짜가 부동산을 알 리가 있나?

결론은 재테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과 부동산이라는 것이 이해도 안됐거니와 깔고 앉은 알량한 전세값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작년 여름부터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 속에 빚 안 지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 그냥 주저앉고 주인과 협상을 했다.

작은아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올해 3월말)까지만 3천만 원에 대한 이자로 월 30만 원씩을 지불하기로 재계약을 했다. 8개월을 살았다. 2월에 등 떠밀려 집을 보러 다니다 이틀 만에 구했다. 일단 시세보다 1천만 원이 싸다는 게 매력이었고 제일 좋았던 건 남향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주로 동향집에 살았다.

동향집은 겨울을 빼고는 해가 일찍 들어 얼굴에 해가 환히 비쳐 아침에 잠을 이룰 수가 없고 여름엔 해가 깊이까지 들었다가 서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 오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더위에 시달리며 땀띠까지 감수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사우나를 해야 하는 날들이 고역이었다.

저녁엔 집에 들어가기가 겁날 정도였다. 게다가 주방이 서향이라 음식도 잘 쉬었다. 이번 집은 남향에, 화장실도 2개나 되었다. 아침에 모두 나가야 하는지라 화장실 때문에 괴로움을 겪은 적이 여러 번 있어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살던 집도 내놓자마자 그날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어 이틀 만에 계약이 성사되었고 내가 입주할 집도 3집 정도 본 다음에 계약했다. 이번 집이 제일 번듯해서 믿기지 않는다. 먼저 살던 집에서 5년 만에 둥지를 바꾼 셈이다.

일이 이루어지려면 이렇게도 되는구나. 누구한테랄 것도 없이 고맙고 감사했다. 집 구하는데 속 썩이지 않고 내가 돈 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고, 전에  살던 집과 같은 돈에 열 평씩이나 넓힐 수 있으니 신이 준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감개가 무량했다. 내집은 아니지만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집은 15년 가까이 되어 낡아 꼬질꼬질했다. 화장실 거울에 곰팡이가 피고 안방문은 삐그덕거려 잘 닫히지 않는다. 화장실 문은 아래가 부서져 있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남향이란 점이다. 갑자기 마음도 편안하고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결혼 후 처음 살아보는 남향집이다. 노원구에서 떠밀려 북쪽으로 가는 것은 싫었지만 생각하기 나름인가 보다.

생활조건은 나아 보였다. 교통도 훨씬 편해졌다. 늘 힘들기만 한거 같아서 꿈도 꾸어 보지 못했는데… 내 인생은 늘 흐리기만 할 줄 알았다. 아이들도 방이 넓어진 만큼 푸근한 성격으로 느긋해졌으면 좋겠다. 남편도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더니 방을 둘러본다.

"방이 넓어서 좋아?"
"응"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응모글



태그:#이사 , #세입자, #전세, #남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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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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