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태동이 사실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려고 군부 독제권력이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 시작이 어찌되었든 정의와 공명정대함이 없는 현실에 찌들리고 억압된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그 유일함을 갖는 해후소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프로 스포츠 야구와 축구. 4년마다 월드컵에 온나라가 들썩이더니 언제부턴가 야구도 WBC란 이름으로 온국민을 TV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오히려 만날 똥볼만 차고 월드컵 16강도 꿈같기만 한 축구와 달리 야구에선 4강은 기본이고 세계최강이라는 미국 쿠바 일본도 이겨버리니 우리 국민들이 어찌 열광치 않겠는가?

 

그러나 일본전을 3시간 넘게 숨죽이며 우리선수들을 응원하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9회말이 끝나고 난 뒤 일상속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이 썩 개운치가 않다. 왠지 옛날 시골마을 돌아다니는 약장수의 현란한 기술에 속아 나도 몰래 약봉지 들고 집으로 돌아온 기분 같다고 해야 할까?

 

WBC는 사실 진정한 국가대항전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만든 메이저리그 홍보 이벤트이자 세계적으로 야구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그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의 가치를 올리려는 그들만의 계획적인 아이템일 뿐이다. 우리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경기에 임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보면 좀 차이가 난다. 그냥 즐기는 수준이랄까?

 

경기방식도 마찬가지다. 한 팀이 같은 팀을 결승까지 무려 5번씩이나 만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오로지 경기 수를 늘려야 하고 중계권을 올려야 하고 광고수입과 관중수입을 올려야 하는 이유로 말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바탕을 둘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는 축구이다. FIFA에는 세계 209개국 중 208개국이 가입해 그 수가 IOC나 유엔회원국보다 많다. 잘사는 나라든 못사는 나라든 땅덩이와 축구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니 국가 간의 대항전으로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총칼로 미사일로 전쟁하는 것을 대신할 만한 내셔널리즘 스포츠이니 전 세계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맞물려 그것을 바탕으로 장사 할 수 있는 각국의 프로리그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로 인해 유럽의 맨유나 바로셀로나 등의 축구클럽들이 한해 5000억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2조원이 넘는 구단이 즐비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게임이 전세계로 중계되고 스타가 만들어지고 전 세계인들의 생활속으로 침투한 축구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안타깝게도 그 중심엔 미국이 없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국가대항 스포츠의 꽃인 축구에서 소외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전 세계를 말아먹는 나이키가 축구에서만큼은 아디다스에게 밀리고 월드컵에서 조연으로 전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아무리 미식축구로 NBA로 MLB로 세계인의 눈을 돌려보려고 애를 써 봐도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니 화딱지가 날만도 하다.

 

만일 전 세계 문화 시장을 주름잡는 할리우드가 미국에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에 있다고 가정해 보면 미국은 미칠 노릇 아니겠는가? 직접적인 영화시장만 25조나 되고 그로인한 각국 문화산업에 대한 영향력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천문학적 가치를 가진 할리우드를 말이다.

 

사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국가대항전으로 관심을 받기엔 역부족이다. WBC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뉴스메인소식으로 뜨고 있는 오늘이지만 몇몇 나라를 빼고는 그런 대회가 열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까놓고 얘기해서 야구하는 나라가 몇 나라 안 된다는 거다.

 

세계에서 프로리그가 있는 나라는 5개 정도이고 우리나라는 당당히 세계에서 3번째로 프로리그가 만들어진 나라이다. 세미프로리그까지 합해도 10개국 정도이니 나머지 나라들은 동호인 야구 수준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사라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야구에서는 이미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강국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막말로 야구 좀 제대로 하는 나라가 몇 안 된다는 거다.

 

야구가 갖는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이자 산업인 MLB의 자존심 문제다. 그들은 이제 미국만의 시장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해 글로벌화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MLB도 유지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 최고의 스포츠인 야구, 그 핵심인 MLB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물이 바로 WBC라는 거다. 그러니 대회를 주관하는 것도 MLB인 거다. 월드컵을 K리그에서 주관하는 꼴이니 모양새가 우스울 뿐더러 대회의 공신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어느 정도 경기력을 가지고 있고 중계를 해도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있는 나라가 손가락에 꼽히니 붙은 놈하고 또 붙고 부활시켜 또 붙이고 해서 경기 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이벤트가 일주일도 안 되서 끝나버리고 돈벌이도 시원찮고 참가 나라에 야구와 MLB에 대한 선전도 그만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보면 세계 두 번째 프로리그 일본과 세 번째 프로리그 한국, 죽기보다 지기 싫은 양국의 대결은 제일 좋은 흥행카드가 아니겠는가? 아시아의 경제대국 두 나라가 WBC에 열광하고 MLB가 생활의 일부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거기다 대만과 중국을 살살 자극시켜 경쟁시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WBC는 진정한 국가대항전으로서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가질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앞에서 얘기했던 야구란 스포츠가 매우 자본주의적인 운동이고 특정한 나라들의 전유물인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LB와 미국의 스포츠 자본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판을 짜고 말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은 WBC에 열광하고 언론은 중계를 하고 광고가 붙고 경쟁을 한다. 그것이 MLB로 이어지고 결국 IOC에선 야구를 정식종목으로 다시 채택하고 MLB에선 더 많은 각국의 선수들이 뛸 수 있도록 배려하려 할 것이다.

 

이젠 미국만의 스포츠로는 덩치가 너무 커진 MLB의 식성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스포츠자본의 무대 위에 대한민국과 일본은 최고의 배우로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MLB의 돈벌이에 우리가 앵벌이로 나선 듯한 이 기분이 한일전을 손에 땀을 쥐고 흥분하며열광했던 우리에게 씁쓸함을 남긴다.

2009.03.19 14:34 ⓒ 2009 OhmyNews
WBC 한일전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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