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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독립기념관 풍경. (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송고했습니다. 엄지뉴스 #5505)
 3월 2일 독립기념관 풍경. (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송고했습니다. 엄지뉴스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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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에게 내 아이의 우유를 쏟아버릴 권력을 주었다. (관련 엄지뉴스:
대통령경호, 해도해도 너무 한다)

나는 인터넷에 그럴싸한 글을 올려도 무시당하는(미**바처럼) 미천한 학력의 고졸 30대 가장이다.

작년 광복절의 악몽

작년 광복절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위해 서울에 가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수백 명의 전경들이 휴게소 식당을 점령해 시민들이 밥을 먹지 못해 어슬렁거리고만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 휴게소, 다다음 휴게소까지 갔으나 결국 식사를 해결할 수 없어 햄버거로 때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전경을 전국에서 동원하길래 휴게소마다 밥 먹을 자리가 없었을까?

서울 종로거리에는 광복절 기념행사가 아닌 건국 60주년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이유로 종로거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해 놓고 통행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내 비록 고등학교 졸업장을 휘날리고는 있으나 건국 60주년은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오는 계산법이었고, 그 옆에서 이순신 장군상을 끌어내리고 국조 이승만상을 세우자는 모 단체와 교회의 집회에 머리가 어지러워 자리를 떴다. 얼마후 인터넷에는 이순신 장군이 사탄이라는 모 종교의 글들이 떠돌아 다녔다.

올해 독립기념관에서도 재현된 악몽

☞ [엄지뉴스 바로가기] :문자는 #5505-음성메시지는 0506-131-5505

그리하여 올해는 뒤숭숭한 기분을 떨치려고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지난 3월 2일. 날씨까지 쨍하던 터라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맞은편에 있는 국학원 역사 공원도 가볼까 싶었다. 그런데 독립기념관 근처로 갈수록 이상한 것이 주유소마다 전경들과 사복 경찰들이 서있는 것이었다. 이거 뭔가 작년의 악몽이 슬슬 재현되려나 보다 싶었는데...

입구에서 조중동을 보지 말자는 시민단체의 전단 살포를 거부한 채(그렇다고 나는 우파도 아니다, 다만 쓰레기로 거리가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을 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일경 검문 및 탄압 체험'이라는 게시판이 떡하니 서 있다. 이게 웬 '쌩뚱맞은 시츄에이션'이냐고 어리둥절할 때쯤 수백명의 사람들이 검문을 위해 줄을 서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투덜대고 있었고, 금속탐지기를 설치해 놓고 한 명 한 명 주머니를 탈탈 털어가며 검문을 하고 있었다. 몇몇 경찰 간부들이 뒷짐을 지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가방은 왜 이렇게 큰지 일일이 묻고 다닌다. 핸드백을 열어 쏟아놓으라는 경찰의 강압에 눈을 흘기며 돌아가는 아가씨와 기분 풀어주느라 사색이 된 남자친구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약 30여분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다(덕분에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전혀 보지 못했다).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을 꺼내어 바구니에 놓게 하더니 혹여 빼놓지 않은 것이 있는지 주머니를 툭툭 쳐본다(더듬으면 성추행이므로). 핸드폰과 지갑, 자동차 열쇠가 전부다.

지갑을 펼쳐 후루룩 보더니 핸드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핀다. "정말 핸드폰이 맞냐? 이상한 기계 아니냐?"는 질문에 어이가 없어 대답을 안했다. 핸드폰을 분해해서 배터리를 빼본다(나는 007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배터리를 주섬주섬 주워 조립을 하고는 핸드폰을 켜서 전화를 거는 시범을 보이고 나서야 통과가 되었다.

배고프지 않은 아이에게 젖병까지 물렸지만...

3월 2일 독립기념관 풍경. 검문 때문에 줄지어선 사람들(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송고했습니다. 엄지뉴스 #5505)
 3월 2일 독립기념관 풍경. 검문 때문에 줄지어선 사람들(이 사진은 엄지뉴스로 송고했습니다. 엄지뉴스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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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아이의 젖병이 문제였다. 액체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마치 내가 도시락 폭탄을 숨기고 들어가는 윤봉길 열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찜질방도 아니고 외부에서 가져온 마실거리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니. 어쩔 수 없이 별로 배고프지도 않은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 더 이상 안 먹을 때까지 먹이고는 젖병을 내려놓자 경찰이 끝났냐고 묻더니 젖병을 열어 내용물을 쏟아 버리고는 빈 병을 쑥 내민다.

내가 혼자였다면 <9시뉴스>에 나올 각오를 했을 테지만 꾹 참고 분을 삭이며 아내와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대통령이 연설하는 단상은 관객석에서 한참 먼 곳에 있는 높은 단 안쪽에 설치되어 있어 절대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접근을 하려면 전력질주로 전경들을 뚫고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외곽경비대에 근무했고, 그 기간 동안 대통령 경호 작전 때마다 따라다니며 임무를 했지만, 이렇게 시민들에게 불신의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제야 왜 인터넷마다 수많은 논조로 시끌벅적하고, TV 뉴스마다 전쟁통인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건지 좀 자세히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치와 주가와 집값과 전혀 관계없는 나는 (주식도 없거니와 내 집 마련은 이미 포기하고 전세에 만족하고 있으므로) 그것과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누가 그들에게 내 아이의 우유를 쏟아 버릴 권력을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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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일절,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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