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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달콤 쫄깃하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양념 꼼장어구이
▲ 꼼장어구이 매콤달콤 쫄깃하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양념 꼼장어구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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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부산에 가면 "마누라 사랑에는 꼼장어가 최고"라는 말이 은근하게 떠돈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 혹 자갈치 아지매들이 장사를 더 잘하기 위해 퍼뜨린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그네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왜? 꼼장어는 원기 회복에 워낙 좋은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겨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을 내 양념장에 버무려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매콤달콤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기가 막힌 꼼장어. 술안주로 인기가 높은 꼼장어는 먹장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꼼장어는 또한 지역에 따라 묵장어, 꾀장어, 곰장어 등으로도 불린다. 꼼장어 이름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장어 종류는 흔히 뱀장어로 부르는 민물장어와 꼼장어로 부르는 먹장어, 일본 말인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 '하모'라 불리는 갯장어가 있다. 그중 꼼장어와 뱀장어는 구이로 좋고, 붕장어는 횟감으로, 갯장어는 데침(샤브샤브)으로 잘 어울린다. 이들 네 종류 장어 중 민물에서 사는 것은 뱀장어라는 것도 기억해두자.  

겨울철에 더욱 맛이 좋은 꼼장어. 지금 부산 자갈치에서 팔고 있는 꼼장어는 대부분 통영에서 가져오는 것들이다. 꼼장어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지고 있어 암컷, 수컷 모두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꼼장어는 자라면서 난소가 더 발달하면 암컷이 되고, 정소가 더 발달하면 수컷이 된다. 

자갈치 시장에 가면  '부산 갈매기'라 불리는 사나이들이 오랜 불황을 이기기 위해 소주 한 잔에 이 세상 시름을 몽땅 털어내며 거친 말투로 부르는 살가운 노래가 있다
▲ 꼼장어구이 자갈치 시장에 가면 '부산 갈매기'라 불리는 사나이들이 오랜 불황을 이기기 위해 소주 한 잔에 이 세상 시름을 몽땅 털어내며 거친 말투로 부르는 살가운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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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장어는 또한 지역에 따라 묵장어, 꾀장어, 곰장어 등으로도 불린다
▲ 꼼장어구이 꼼장어는 또한 지역에 따라 묵장어, 꾀장어, 곰장어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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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쯤 꼼장어 구워 먹으모 아들 낳는다"

"장어는 단백질과 지방, 항암효과에 좋은 비타민 A, 노화방지에 좋은 비타민E가 특히 풍부해 영양가가 높은 식품으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한방에서는 장어를 성질이 차가운 음식으로 분류하며 몸 기운이 찬 소음인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양념을 하거나, 양념 없이 그냥 구워먹기도 하며 볶아서 먹을 수도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통발·그물로 잡는 스태미나 대명사 꼼장어. 꼼장어는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외국에서는 꼼장어를 기력이 부족한 환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통조림으로 만든다. 게다가 꼼장어 껍질(가죽)은 아주 질기면서도 몹시 부드럽기 때문에 지갑이나 손가방 같은 여러 가지 가죽제품을 만들 때에도 많이 쓰인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장어는 허한 오장육부를 보하는 음식으로 성기능 회복이나 허약체질에 좋은 음식"이라고 적혀 있다. 1970년대 허리춤께, 나그네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마을 사람들은 "보름쯤 꼼장어 구워 먹으모 아들 낳는다"며, 꼼장어구이를 즐겨 먹었다.

하지만 나그네는 어릴 때 꼼장어를 굉장히 싫어했다. 마을 사람들이 들마당 한가운데 연탄불을 피워놓고 양념한 꼼장어를 냄비에 넣어 올려놓으면 뱀처럼 꿈틀거리는 게 너무나 징그러웠다. 냄비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익어가는 꼼장어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잔인해 보였다.

그 추억 때문일까. 나그네는 이십대 초반까지도 꼼장어를 먹지 않았다. 아니, 끈적끈적한 거품을 내뿜고 있는 꼼장어를 팔고 있는 마산 어시장 주변에도 가지 않았다. 그 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술안주로 잘 익은 꼼장어구이를 한두 점 찍어먹다가 지금은 꼼장어구이를 아주 좋아하는 열성팬이 되고 말았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 '아지매'는 꿈틀거리는 꼼장어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 꼼장어구이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 '아지매'는 꿈틀거리는 꼼장어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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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꼼장어구이 맛을 매듭짓는 것은 시뻘건 양념장이다
▲ 꼼장어구이 양념 꼼장어구이 맛을 매듭짓는 것은 시뻘건 양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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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아지매' 앞에서 꼼짝 없이 껍질 벗기는 꼼장어들

"어서 오이소. 저기 빈 자리 보이지예? 그기 퍼뜩 앉으이소. 몇 인분 드리까예?"
"소주 한 잔 먹으려고 그러는데…"
"그라모 2인 분이네예. 쪼매만 기다리이소"
"1인분은 안 팔아요?"
"1인분은 양이 너무 적어가꼬 할 수가 없어예"

1월 24일(토) 오후 4시쯤, 부산 자갈치시장을 꼼꼼하게 둘러본 뒤 소주 한 잔 하기 위해 찾은 꼼장어구이 전문점. 길 한 귀퉁이에 주황빛 포장을 대충 두른 이 집 안에 들어서자 말 그대로 '판데기 장수'다. 그저 자갈이 깔린 길바닥에 동그란 탁자 예닐곱 개가 놓여 있고, 그 탁자 한가운데에서는 연탄불이 발갛게 타고 있다.

빨강빛이 눈에 띄는 동그란 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어른이 앉기에는 너무 작다. 여기에 의자를 동그란 탁자 앞으로 바싹 당기지 않으면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탁자에 닿는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그런 초라함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소주 한 잔에 꼼장어 구이를 맛나게 찍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기분 좋게 웃고 있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 '아지매'는 꿈틀거리는 꼼장어를 손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뱀처럼 마구 꿈틀거리는 꼼장어 껍질을 마치 파 껍질 벗기듯이 스르륵 스르륵 벗겨내는 '자갈치 아지매' 손놀림이 너무나 잽싸다. 끈적한 점액질을 뿜어내며 요리조리 미끄럽게 빠져나가려는 꼼장어들도 '자갈치 아지매' 손앞에서는 '꼼짝 마라'이다.  

시뻘건 연탄불 위에서 시뻘겋게 익은 꼼장어구이
▲ 꼼장어구이 시뻘건 연탄불 위에서 시뻘겋게 익은 꼼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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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꼼장어 살점을 몇 번 더 씹다 보니 달착지근한 맛이 아주 깊다
▲ 꼼장어구이 쫄깃한 꼼장어 살점을 몇 번 더 씹다 보니 달착지근한 맛이 아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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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장어구이 맛 매듭짓는 것은 매콤달콤한 양념

"오데서 오셨어예?"
"서울에서요. 제 고향이 창원이거든요"
"설 쇠러 왔는가베예. 기왕 오신 김에 꼼장어 몇 인분 더 시켜가꼬 몸보신 좀 하고 가이소. 자갈치에서 꼼장어 하모 이 집 아입니꺼"
"밥도 비벼주나요?"
"다 먹어갈 때쯤 말만 하이소."

이 집 양념 꼼장어구이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먼저 15~30cm쯤 되어 보이는 산 꼼장어 껍질을 벗기고 쓸개를 도려낸 뒤 2~3cm 크기로 토막을 낸다. 이어 토막을 낸 꼼장어를 시뻘건 양념장으로 버무린 뒤 어슷어슷하게 썬 양파와 대파, 매운 고추를 올려 다시 한번 살짝 버무린 뒤 연탄불 위에 올려 굽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콤달콤 쫄깃하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양념 꼼장어구이 맛을 매듭짓는 것은 시뻘건 양념장이다. 이 집에서 양념장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는 매운 고춧가루, 물엿, 고추장, 마늘, 생강, 참기름 등 16가지 정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시뻘겋기만 한 이 양념장에 이렇게 많은 재료가 녹아있다니.  

그래서일까. 밑반찬은 별로 없다. 그저 상추와 송송 썬 마늘, 풋고추가 모두다. 소주 한 잔 마신 뒤 '자갈치 아지매'가 직접 구워 주고 간 양념 꼼장어 구이를 한 점 집어 입에 쏘옥 넣는다. 아흐~ 매워. 코가 알싸할 정도로 매콤하다. 하지만 쫄깃한 꼼장어 살점을 몇 번 더 씹다 보니 달착지근한 맛이 아주 깊다.

꼼장어 볶음밥 한술 떠서 입김으로 몇 번 후후 분 뒤 입에 넣자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스며드는 깊은 맛에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 꼼장어볶음밥 꼼장어 볶음밥 한술 떠서 입김으로 몇 번 후후 분 뒤 입에 넣자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스며드는 깊은 맛에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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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 깻잎, 김치를 올려 재빠른 솜씨로 쓱쓱 비비며 노릇노릇하게 볶는다
▲ 꼼장어볶음밥 김과 깻잎, 김치를 올려 재빠른 솜씨로 쓱쓱 비비며 노릇노릇하게 볶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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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 꼼장어구이 골목에 가면 삶이 보인다

시뻘건 연탄불 위에서 시뻘겋게 익은 꼼장어구이를 상추에 싸서 마늘 한 점 올려 입에 넣고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맛도 그만이다. 양념 꼼장어구이를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면 어느새 '자갈치 아지매'가 다가와 밥 한 공기를 엎는다. 이어 김과 깻잎, 김치를 올려 재빠른 솜씨로 쓱쓱 비비며 노릇노릇하게 볶는다. 꼼장어 볶음밥이다.

군침이 절로 흐른다. '자갈치 아지매'가 "인자 드셔도 돼예"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숟가락으로 꼼장어 볶음밥 한술 떠서 입김으로 몇 번 후후 분 뒤 입에 넣자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스며드는 깊은 맛에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땡겨울인데도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꼼장어 볶음밥을 먹고 있는 도중에도 여기저기에서 "소주 한 병 더 주이소", "여기 꼼장어 2인분 더 주이소", "상추하고 마늘 좀 주이소" 하는 소리가 잇따른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시끌벅적한 이 집 손님들 술 시중과 밑반찬 시중은 이 집 딸처럼 보이는 아리따운 '동백 아가씨'가 맡고 있다.  

어느새 밖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자갈치 시장 곳곳에 전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저만치 가게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꼼장어 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는 손님 몇 분이 기분이 아주 좋은지 젓가락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옆에 앉은 손님이 기다렸다는 듯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란 노래를 부른다.

양념 꼼장어구이가 시뻘겋게 익어가고 있는 자갈치 시장 꼼장어구이 골목. 이 골목에 가면 옛 향수가 넘쳐 흐른다. '부산 갈매기'라 불리는 사나이들이 오랜 불황을 이기기 위해 소주 한 잔에 이 세상 시름을 몽땅 털어내며 거친 말투로 부르는 살가운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겨울을 밀쳐내며 희망 찬 봄을 부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양념 꼼장어구이, #꼼장어 볶음밥, #자갈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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