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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토)일. 맑음.

천지연폭포→정방폭포→보목해안도로→쇠소깍→남원→표선해안도로→표선

 

해가 뜨기까지 잠을 충분히 자고, 여유 있게 식사를 한 다음 출발했다. 이제 여행에 적응이 됐는지 아프고, 힘들다는 아이들이 없다. 다만 제일 좋은 곳이 집이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실은 엄마는 나도 항상 보고 싶다. 언제나 가슴 가장 깊이 있는 마음의 고향 아닌가?

 

중문관광단지는 어디든 깔끔하지만 들어가면 돈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4차선으로 잘 정비된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컨벤션센터를 스치고, 오르내림이 심한 강정동 길을 거침없이 누볐다. 강정동은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지금도 논란이 많은 곳이다. 4 ․ 3 항쟁이라는 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평화의 섬'이라는 애칭을 갖고자 한다면 제주도 남쪽 한 가운데 위치한 이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서서는 제발 안 된다.

 

물을 좀 마시고 가자는 소리에 '쌍둥이 감귤농장'에 들렀다. 귤보다는 한라봉을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가격을 물었더니, 아이들이 장하다며 2만원에 10개를 내줬다. 횡재를 한 것이다. 상큼하고 향긋한 냄새에 약간 시면서 달콤하기 짝이 없는 과즙이 입 안에서 요동쳤다. 하나씩 먹고 나자 귤을 주는데 아주 달다. 가다 먹으라며 봉지에 가득 담아주는 것을 배낭 무게 때문에 덜어놓고 나왔다. 여행이란 뜻하지 않은 이런 기쁨이 있다.

 

여름에 들렀으니 그냥 가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가지 않은 사람을 위해 천지연폭포에 갔다. 여름보다는 훨씬 작은 수량으로 하나는 굵게, 하나는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다. 한라산에서 지하에 스민 용천수가 바다 가까이서 떨어지는 것이다. 구경하고 나오는데 출입구 다리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물에 던지고 있었다. 밤색에 하얀 균사가 덮여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덩어리였다.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거라며 우리에게도 함께 할 것을 권해 신나게 던졌다. 제주일보와 환경단체가 하는 행사였다. 끝나고 덤으로 단팥빵과 음료수를 줘서 맛있게 먹었다.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제주에 왔다는 서복을 기리는 유적전시관을 지나 바다로 물이 직접 떨어지는 정방폭포에 들렀다. 여름에 한라산을 다녀와 물속에서 피로를 풀고 더위를 식혔던 곳이다. 아이들은 물을 보자 바로 물수제비를 하며 하나라도 더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폭포 옆에서 해녀들이 전복, 멍게, 소라 등 해산물을 파는 곳에 들려 회와 소주를 시켰다. 양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하늘과 바다를 품으며 먹고, 마시는 분위기까지 포함된 것이다. 회를 먹고 나서 아이들은 '섯다맨'이라며 바위에 돌을 세웠다. 금세 주변이 선돌공원이 되었다. 돌 세우기에 시들해진 아이들이 먹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어찌 이만한 남자 또래 애들이 이리도 만수콰?"라며 해녀 한 분이 물었다.

"제가 힘이 세게 생겼잖아요."

"아빠."

 

다섯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갑자기 다섯 아이들의 아빠가 되었다. 정말 부자가 된 느낌이다. 사람 부자가 진짜 부자다.

 

보목동을 지나면서 갈라지는 길에서 한사코 오른쪽으로 빠져야 귤밭과 돌담, 집이 어우러진 마을을 구경할 수 있다. 보목해안도로가 끝나면 깊은 물과 협곡이 제주의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쇠소깍이 나온다. 테우에 사람들을 태워서 오가고 있었다.

 

좋은 날씨에 눈 쌓인 백록담을 왼쪽에 두고, 위미항과 남원을 지났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우리를 삼킬 듯 달려들었던 북서쪽 바다와 달리 남쪽바다는 아주 조용하여 곳곳에 배들이 있었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표선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국수집이 있다'며 다그쳤다. 여행지에서 싸며 양도 많은데, 기가 막히도록 맛까지 있는 음식이 있다면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인터넷에서 표선에 있는 국수집에 대한 내용을 봤고, <소풍>(성석제. 창비)이란 책을 보며 이번에 기어이 그 국수를 먹어보겠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표선해안도로를 달리다 너무 점심이 늦어져 표선을 3km 남기고 '해녀의 집'에 들어섰다. 히라스회를 시켜 회와 매운탕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천정과 벽에 이곳을 오간 사람들이 복사지(A4)에 흔적을 남겼다. 우리도 종이를 달라고 해서 사랑표시를 하고, 각자 사인을 한 다음 주인에게 드렸다.

 

금방 표선에 도착했다. 책에 언급된 되로 면사무소 앞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국수집을 찾았다. 넓지 않은 곳에 국수집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람들에게 물어 도착한 집은 책에서 언급한 그런 모양새가 아니었지만 그 사이에 변할 수도 있으려니 하고 '국수마당'에 눌러 앉았다. 점심 먹고, 30분 만에 고기국수와 멸치국수를 시켜 마주했다. 고기국수는 고기로 육수를 내 고기국수답고, 멸치국수는 국물이 진하며 시원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로 모두 먹어 치웠다. 주인이 민박집을 소개시켜줘서 '한솔민박'에 짐을 풀었다.


태그:#DAUM,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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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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