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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완성차 업체의 생산라인
 국내 한 완성차 업체의 생산라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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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부품 하나 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엔진 다음이 미션인데 구입하자마자 미션이 문제인 차를 어떻게 믿고 타겠습니까? 감정적 측면이 아닌 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래서 수리해 드리겠다고 하는데 사장님이 거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 차를 어떻게 믿고 탑니까? 교환이나 환불을 해 주세요."
"미션을 새것으로 교체해 수리해 드릴 수는 있지만 교환이나 환불은 규정상 불가능합니다."

19일 오후 서울의 한 현대자동차 영업소. 영업소장과 고객이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이유는 이곳을 통해 자동차를 구입한 오아무개씨 승합차의 결함 문제 때문.

오씨는 지난 7월 20일 인수받은 신형모델 승합차(스타렉스)를 사용하던 중 한 달 반 정도지난 9월 초 미션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정비소를 통해 미션에 이상이 있으므로 새로 교체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

하지만 일시불로 구입한 새 차의 결함에 불쾌감이 생긴 오씨는 차 수리 대신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영업소 측은 수리를 제외한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1시간여 계속 됐지만 접점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리는 싫으니 교환이나 환불해 달라는 요구와 교환이나 환불은 어려우니 수리를 받으라는 주장은 평행선을 유지했다. 

영업소 측은 차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한다는 듯 불만을 토로하는 오씨의 주장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지만, 원하는 요구만큼은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아무개 영업소장은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간혹 발생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수리를 거부하지 않는다"며 "이런 분은 예외적"이라고 말했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차 결함, 부품 수리·교체만?

작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이란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새 차. 구입한 지 얼마 안 돼 문제가 생겼어도 수리 외에는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하다는 완성차 업체의 입장 앞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새 차의 결함은 고객 입장에서는 매우 예민한 문제임에도 고객들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일 아버지를 대신해 포터 트럭을 인수받은 홍아무개씨는 인수 당일 출고사무소에서 차 뒷문이 잘 닫히지 않는 것과 외관에도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교환을 요구했지만 A/S 주재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안전상 주요부품 외에는 교환이 안된다'는 것. 교환은 불가였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따지면 이처럼 교환불가를 말하는 자동차 회사 입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제 막 출고돼 인수한 차라 할지라도. 소비자 규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 분쟁 관련 기준에 따르면 '출고 1년 이내의 차가 과도한 소음 등 주행이나 안전도와 관련한 중대결함이 발생해 같은 하자에 대해 세 차례(또는 1개월 내 2차례) 수리했는데도 재발한 경우 모두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동일한 부위가 네 번째 고장 나야 비로소 소비자가 원하는 조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소비자원 등에 하소연을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자동차 회사 측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일부 고객들은 한국소비자원을 소비자 보호 단체가 아닌 '기업 보호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홍씨는 다음날 영업사원이 "억울하면 소비자 고발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고객센터까지 올라갔기에 규정대로 A/S만 해주어도 법적문제가 없다"고 말한 사실을 전하며, "비싼 돈을 들여 큰 맘 먹고 차를 바꿨는데 속상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한 완성차 업체의 출고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들
 국내 한 완성차 업체의 출고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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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차가 구입 후 바로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수리만 해 준다면 자동차 회사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이다. 설령 속여 팔기를 통해 부실한 차를 소비자에게 팔았다 할지라도 규정에 따라 동일 부위의 잇따른 고장이 없는 한 교환이나 환불 책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신종원 실장은 "규정 자체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모호한 데다 적용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소비자보다는 자동차 회사에 유리한 규정이라는 것이다.

"규정의 맹점이 있는 데다 권고안 성격이고 자동차 회사들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도 행정적 강제가 어렵다.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 기본법에 따라 처벌할 수는 있지만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정고시하던가 세부적인 시행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보니 자동차 회사에 문제가 있어도 처벌이 어려운 것이다."

신 실장은 "자동차 보상 규정이 다른 부분에 비해 지나치게 낙후돼 있다"며 "집단소송과 징벌제도 등 기업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민사소송까지 가기란 사실상 어려워서 소비자 법제 등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 YMCA 시민중계실의 경우도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고는 있지만 규정에서 벗어난 경우 실질적으로 교환이나 환불해 준 사례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소비자원 등도 준정부 단체이기에 규정을 벗어난 사례에 대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게 신 실장의 견해였다. 소비자들이 개인적으로 떼를 쓰거나 거칠게 항의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홍씨의 경우도 일반 소비자 단체들을 통해서는 해결이 어려웠으나 한 민간 소비자 단체(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가 나서 '차 교환 대신 주행거리나 기한에 관계없이 무상A/S를 받는 쪽으로 협의'가 될 수 있었다.

운행 도중 시동 꺼져도 4번 반복될 때까지는 계속 타라?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소비자원에 대해 비난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규정에 근거해 일 처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민간단체들의 경우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면 해당 회사들이 부담을 느껴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있지만 소비자원으로서는 근거를 기준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불만 처리 기준'에 합당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달리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자신들 또한 소비자가 처한 현실과 안 맞는 기준에 대해 딜레마를 갖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차 결함에 대한 규정은 우리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운행 도중 시동이 꺼진 새 차가 두 달 뒤에 또 고장 났다고 하면 일단 '1개월 내 2회 연속 고장 시 교환' 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2번 더 문제가 생겨야 교환이 되는 것인데, 사실 고객들에게 목숨 걸고 타라는 이야기 밖에 안 되거든요. 말이 안 되지요.

차 업체들이 이를 해결해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은데 아직은 미흡한 것 같습니다. 규정을 바꾸려면 사업주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차 업체들이 외국사례 등을 들면서 안 된다고 요지부동입니다. 개정 의견을 제출하지만 사업주들이 양보를 안 하면 강제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제도과 박도하 과장은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대한 개정요구가 있어 소비자단체와 사업주들 간에 논의가 수차례 있었고, 공청회 등을 거쳤다"며 "내년쯤 새로운 기준이 고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해결 기준이라는 것이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질적인 분쟁은 소비자단체나 법적 소송을 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조항과 관련해서는 "일부 소비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 소비자단체들과 사업주들이 지금과 같은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전하고, "문제가 생긴 차에 대해 수리를 안 해준다는 업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지금과 같은 규정이 고시된 것은 2005년경이며, 그 이전까지는 상황이 더 나빴다. 네 번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환불이나 교환을 받기 힘들었다. 각종 자료를 뒤졌지만, 공정거래위원회측 말처럼 소비자들이 악용하는 사례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고객들의 악용을 우려한다는 일부 자동차 회사들이 이 같은 규정을 간혹 악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헌차를 새 차로 속여 팔고 이를 의심하는 고객들에게 사실을 계속 발뺌하는가 하면 들통 나도 교환이나 환불에 대해서는 뜸을 들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함에 대한 문제를 인정하는 경우도 교환이나 환불에 대해서는 인색한 모습이다.

소비자 악용 우려해 만들었다는 규정, 도리어 악용하는 업체들

중고차를 새차로 속여 판 사기판매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유아무개씨. 이런 사실이 드러났어도 규정상 차량 교환이나 환불 조치를 받기는 쉽지 않다.
▲ 차량시위 중고차를 새차로 속여 판 사기판매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유아무개씨. 이런 사실이 드러났어도 규정상 차량 교환이나 환불 조치를 받기는 쉽지 않다.
ⓒ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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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구입한 지 1년이 훨씬 넘은 차가 헌차였음을 알게 된 성남의 유아무개씨는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자소연)의 도움으로 전시차를 신차로 속여 판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에 대해 형사 고발했다. 1심에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고발인들이 항소하자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고 이례적으로 '구공판' 처분을 내렸다. '구공판'은 피의자의 죄가 인정되고 징역형에 처하는 것이 상당한 경우에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처분이다.

유씨는 "수차례 조사 과정에서 현대차 측이 전시차를 신차로 속여 판 것이 확인됐고, 차를 교환을 해 주기로 약속했지만, 이 내용이 한 TV 방송에 소개되면서 그 약속이 파기됐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이 '방송에 나가 망신을 당했으니 법적으로 끝까지 가서 시비를 가리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소연 측은 '회사 측이 전시차를 신차로 속여 팔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자 교환 약속을 파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발된 건 외에 문제가 확인된 차에 대해 교환이나 환불을 안 해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업체 측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규정상 1년이 지난 차량인지라 교환을 안 해 준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업체 측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피해는 고객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소연의 이정주 회장은 "이런 문제는 전시차에 재고차나 반품 수리차 등이 포함돼 있고 선출고된 차들도 있어 잘못 구입한 소비자들의 경우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소비자들이 신차 구입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차 회사 측은 '회사와는 관련 없는 영업사원 개인의 비리일 뿐이다. 수많은 지점과 영업소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변명하는데, 사기판매로 재판에 회부된 직원의 변호를 회사 법무팀 변호사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고객 개인이 맞서기는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유씨 사건의 경우도 자소연이 해당 변호사에게 '개인의 비리라고 말하면서 회사차원에서 지원하느냐'고 항의하자 이후 법무팀 변호사들이 사임했지만,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전직 법무팀 출신이라는 것. 회사 이미지에 손해를 끼친 직원을 도리어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그는 "제도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사안"이라고 말하고, "자동차 회사들 또한 세계적인 위치에 걸맞은 모습으로 고객에 대한 자세가 바뀌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대차 홍보실 담당자는 유씨 사건과 관련된 내용 문의에 대해 "그 사건에 대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며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직원의 개인비리에도 회사에서 변호인을 지원해 주느냐?'는 물음에도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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