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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 버락오바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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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부와 대통령은 한 번에 하나씩만 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처음 열었던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로, 오바마는 현 부시 행정부에 대한 존중의 표시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10일의 백악관 회동에서 부시와 오바마가 자동차 업계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방안을 두고 서로 갈등을 보였는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미국 언론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지만 오바마로서는 이 자동차 문제를 내년 1월 20일(대통령 취임식)까지 기다릴 여유가 전혀 없고, 부시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추가 구제안에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아직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만, 오바마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오바마 '발등의 불', 자동차 산업 침체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현재의 암울한 미국 경제 상황을 설명한 후 자신의 경제정책 기조 4가지를 재확인했다.

그중 첫 번째는 중산층을 위한 경제 구제안이었고, 두 번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겪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미국 제조업의 '근간'일 뿐 아니라, 미국 전체의 수많은 부품 공급업체와 중소기업들, 또 미국의 크고 작은 지역 공동체가 이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외국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줄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오바마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구하기 위한 해법으로 재정 지원과 더불어 연비 효율성이 높은 자동차를 미국에서 개발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건주 제니퍼 그랜홈 주지사가 오바마의 바로 뒤에 배석했다.

파산 직전의 GM 주가는 11일 장 마감 현재 주당 2.95달러로 1943년 이래 최저의 가격을 기록했고, 같은 날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헤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는 미국 자동차 산업 구제를 위해 다음 주 레임덕(임기 말) 의회를 열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급박한 상황의 미국 자동차 문제는 현재 한국의 한미FTA 선비준·재협상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오바마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한미FTA에 대한 오바마의 비판적 견해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에 대한 오바마의 문제 인식은 한미간 자동차 교역량의 불평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미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 본사.
 미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 본사.

"친환경 미국 차로 한국·일본 차 대체... 에너지·일자리 문제도 해결"

애초에 미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오바마의 문제 인식은 미국의 해외 에너지 의존 및 환경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바마는 중국에서 달러를 빌려 중동에서 석유를 사는 일이 아이들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라며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비판해왔고, 또한 수입 석유에 대한 중독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기며 유가가 급등할 때는 석유 수출국들, 특히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의 국부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에 주목하며, 높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미국의 안보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해왔다. 

미국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국내 석유 소비량 중 일반 승용차용으로 사용되는 휘발유량이 전체 석유 소비량의 40%를 넘는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자동차는 연비 효율 측면에서 경쟁력이 매우 낮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석유 중독증은 미국의 국채를 늘리는 동시에 러시아, 이란 등을 강대국으로 키워주는 효과와 더불어 지구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쳐 왔다. 

여기에 미국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하고 그 여파로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대량 해고와 대규모의 실직자가 발생하자, 해외 에너지 의존 문제와 실업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오바마는 연비가 좋은 친환경적 자동차를 미국 국내에서 생산하자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그린 칼라 일자리(Green–Collar Job)'이다. 이것은 재활용,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개발,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직업을 통칭하며 오바마는 향후 10년간 1500억 달러를 투자, 5백만 개 이상의 그린 칼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오바마가 줄곧 지목해왔던 것이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다. 즉, 미국의 대외 석유 의존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연비가 좋은 친환경적 미국 국산 자동차를 개발하자고 했고, 그 주장은 항상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로 마무리됐다.

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10월 7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오바마와 공화당 대선 후보이던 매케인이 토론회장에서 악수하고 있다(자료 사진).
 미국 대선이 한창이던 10월 7일,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오바마와 공화당 대선 후보이던 매케인이 토론회장에서 악수하고 있다(자료 사진).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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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과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할 때마다 오바마는 '에너지 자립'을 위한 자신의 정책을 설파했고, 그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각자가 집과 일터에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중,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일본이나 한국이 아닌 이곳 미국에서 만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정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10년 안에 미국이 중동으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태양열, 바이오 디젤, 풍력, 지열 등을 이용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것이고, 무엇보다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이 미국에서, 미시건과 오하이오에서 만든 에너지 효율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힘쓸 것입니다." 

이 내용은 비단 토론회에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유세장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오바마, 줄기차게 한국 자동차 거론... 정치적 수사로만 봐선 안 돼

한국 자동차에 대한 오바마의 문제 인식은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 불균형 문제에도 있다. 오바마의 경제 정책 중 미국 국내의 제조업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을 살펴보면, '오바마는 한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오바마는 한미FTA로 은행과 통신회사 그리고 일부 대규모 농업 회사들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특히 미국의 자동차와 쌀, 쇠고기 부분이 한국 시장에서 불리한 대우를 얻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자동차 교역을 하면서 미국이 11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2007년 한국은 미국 시장에 70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했지만 미국은 단지 4556대만을 팔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논의 중인 FTA에는 이 같은 불균형에 대한 문제 인식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며,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곤 했다.  

세 번째 대통령 토론회에서 오바마는 매케인과 자유 무역에 대한 이견을 교환하던 중에 중국의 노동환경 개선 문제와 환율 조작 문제 등과 더불어 특히 한국을 상대로 한 자동차 무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그는 "한국은 미국으로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보낸다. 다 좋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4천에서 5천대의 자동차를 수출한다. 이것은 자유 무역이 아니다. 우리에겐 미국의 산업과 노동자의 이득을 수호하기 위해 일할 대통령이 필요하고,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전혀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했었다.

간혹 한미간 자동차 수출과 관련해서 오바마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적 수사나 매케인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 정도로 보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한국 자동차에 대한 그의 인식은 미국의 다른 여러 이슈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현재 미국 자동차 업계가 풍전등화의 위치에 처하면서 한국 자동차에 대한 그의 문제 인식은 한미FTA 내용에도 구체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거 기간 내내 한국 자동차를 예로 들었던 이유 때문이라도 한국과의 자동차 무역에는 오바마의 문제 인식이 강하게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산업을 미국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했고, 그의 참모 중 하나는 미국인 10명 중 1명의 직업이 자동차 업계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며 빅3 중 하나라도 파산한다면 미국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일 미시건에 있는 CAR(Center for Automotive Research, 자동차연구센터)에서는 빅3가 파산할 경우 첫 해에만 약 3백만 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며, 미국 정부 또한 첫 해에만 약 6백억 달러의 손실을, 차후 3년간 156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2007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자료 사진).
 2007년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자료 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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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협상, 부시 때와는 차원이 다를 것

현재 한국에서는 한미FTA 문제를 두고 선비준과 재협상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바로 미국 자동차 문제 때문이다. 지난 4~5월, 한국 정부가 미국 쇠고기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수입하기로 했을 때, 이미 미국의 선거 유세장에서는 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에도 이미 민주당이 의회를 주도하고 있었고, 부시 행정부는 최악의 레임덕 기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차기 행정부 역시 민주당이 차지할 것으로 거의 모두 예측한 상황이었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과 노조의 이익을 대변해왔던 민주당이 자동차 부문의 경우 특히 한국의 뜻대로 한미FTA를 비준해주지 않을 것이라 누구나 쉽게 예상했었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 정부가 선뜻 부시 행정부에게 쇠고기 카드를 내준 것에 대해서 한국 사정에 밝은 미국 인사들은 매우 의아해 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한미FTA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한미FTA는 오바마 행정부로 넘어가게 되었고, 오바마는 무역 불균형만이 아니라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 일자리 창출 문제를 다루면서까지도 지난 1년간 선거 유세장에서 끊임없이 한국 자동차를 거론해왔다.

결국 현재 미국 자동차 산업의 여건과 오바마의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볼 때, 앞으로 진행될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한 자동차 문제 협의는 지난 부시 행정부 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란 얘기다. 단순히 견해 차이 정도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환경 정책 등과 맞물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부시 행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철학과 심각성을 갖고 협상에 임할 것이란 뜻이다.     

11일 미국의 언론들은 백악관 대변인으로 내정될 로버트 깁스의 말을 빌려 이번 주말에 워싱턴에서 열릴 G-20 회의에 오바마가 직접 참석할 가능성은 없지만, 일부 경제 참모가 참석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협상의 대상이 될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팀을 미리 만나볼 수도 있는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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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미FTA, #오바마,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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