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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음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식이 있는가 하면 물 건너 온 양식이 있다. 여기에 외국 농산물이 앞 다투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예전에 맛보지 못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독특하고도 새로운 음식도 자꾸 선보인다. 그렇다고 돼지처럼 아무 음식이나 닥치는 대로 먹을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기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는 계절과 시간, 그날그날 컨디션과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 간사한 입맛이 끊임없이 다른 음식을 달라고 자꾸 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 입에 당긴다고 해서 그 음식만 고집하는 것도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 

 

예로부터 '신토불이'라 하여 그 지역에서 제철에 나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 했다. 근데, 요즈음은 어떤가. 지역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사시사철 나지 않는 음식이 어디 있던가. 그날, 길라잡이와 가까이 지내는 한 분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음식을 일부러 가려먹지 말라고 했다.

 

"오늘 점심은 채소비빔밥이 어때? 며칠 동안 계속해서 육고기만 너무 많이 먹었더니 말이야, 갑자기 채소를 듬뿍 넣고 된장을 끼얹어 쓱쓱 비벼먹고 싶구먼."

"그거 참 좋지요. 저도 이맘때만 되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절간 아래 죽 늘어선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참 많이 먹었거든요. 근데 올 가을에는 채소가 듬뿍 들어간 비빔밥을 먹지 못해 그런지 밥 때만 다가오면 비빔밥 생각이 나더라구요."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문득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른다면 무조건 그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 했다. 사람 몸이란 게 컴퓨터보다 더 정확해서 무언가 부족하면 그 영양소가 들어 있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인사동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채소비빔밥 전문점이다.

 

 

비빔밥, 임금이 점심 때 가볍게 먹는 음식

 

19세기 조선 끝자락에 나온 조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 지은이 모름)에 처음 적혀 있는 비빔밥은 '부븸밥'으로 나와 있다. <시의전서>는 상편과 하편 2편으로 이루어진 1책으로 1919년 심환진(沈晥鎭)이 상주 군수로 있을 때, 한 반가에 있는 조리책을 베껴둔 필사본이다. 이 책은 심 군수 며느리 홍정(洪貞) 여사에게 전해져 빛을 보게 되었다.

 

조선 끝자락 여러 가지 한식을 잘 정리한 이 책에는 17가지 술 빚기 방법, 식품, 건어물, 채소 등이 적혀 있어 우리나라 조리 연구에 아주 소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상차림에서도 곁상, 오첩반상, 칠첩반상, 구첩반상, 술상, 신선로상 등에 따른 뿌리까지 더듬을 수 있다. 단점은 경상도 사투리가 많고, 조리법 혼돈으로 통일성이 없다는 점이다.

 

비빔밥에 얽힌 이야기도 궁중음식설, 임금 몽진 음식설, 농번기 음식설, 동학혁명설, 음복설, 묵은 음식 처리설 등 여러 가지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전주비빔밥의 유래를 살펴볼 때 비빔은 궁중요리로 점심 때 가볍게 들은 음식"이라며 "농번기 음식설, 음복설, 동학혁명설 등은 식품학적 조리학적 면에서 유래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나와 있다.

 

1960년대 끝자락. 길라잡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자주 먹은 비빔밥은 집안에 곡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밥보다 여러 가지 나물을 더 많이 넣고 된장국물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먹는, 그야말로 배고픈 음식이었다. 제삿날이나 설 추석, 정월 대보름에도 비빔밥을 먹었지만 그 비빔밥은 궁중음식이라 할 정도로 푸짐하고 맛있었다.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제일 밉다"

 

"멜라민 파동 때문인지 몰라도 요즈음 들어 채소비빔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섬유질과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는 채소비빔밥은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 건강을 지키는 데 그만이지요. 특히 무싹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싹은 피로회복과 피부미용, 다이어트, 노화방지, 암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일등공신이지요."

 

지난달 23일(목) 오후 1시. 시인 윤재걸(언론인)과 함께 찾은 인사동 3길 학고재 골목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채소비빔밥 전문점. 옛 기와집을 겉모습은 그대로 두고 안쪽만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바꾼 스무 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채소비빔밥을 맛깔스럽게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저만치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 한 쌍은 채소비빔밥을 안주 삼아 동동주(7천 원)를 마시고 있다. '대낮부터 웬 술?' 하다가 '우리도 한 잔 할까?' 하다가 '어제 밤새도록 마셨으니 좀 쉬어줘야겠지' 하며 술 욕심을 애써 거두고 채소비빔밥(5천 원)을 시킨다. 인사동 골목에서 유기농법으로 키운 싱싱한 채소를 밥에 비벼먹는 것도 행운이라 여기며.    

 

이곳에서 7년 동안 손님들 건강을 챙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 집 주인 박현주(50)씨는 "채소는 날로 그냥 먹기 때문에 유기농법으로 키워낸 채소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박씨는 "아무리 돈이 좋다 하지만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제일 밉다"며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진정한 음식 맛은 차리는 사람의 정성에서 나온다"고 귀띔했다.

 

 

입 안 가득 싱그러운 채소향 은근하게 퍼져

 

이 집 채소비빔밥에 쓰이는 채소는 팽이버섯, 부추, 상추, 겨자잎, 당근, 무싹을 비롯한 5가지 새싹이다. 밑반찬으로는 콩나물, 열무김치, 명태조림, 멸치젓갈, 강된장, 풋고추 등이 재첩수제비국과 함께 나온다. 하지만 늘 같은 차림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미나리, 봄동, 고사리나물, 도라지무침, 멸치조림 등 밑반찬이 달라진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같이 올려둔 것은 손님들 입맛에 따라 넣어 드시라는 뜻"이라는 이 집 주인 박씨가 가만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다란 그릇에 밥 한 공기를 그대로 엎고 여러 가지 채소를 듬뿍 올린다. 이어 강된장 한 수저 떠 넣고, 참기름 서너 방울 떨어뜨려 숟가락으로 쓰윽쓱 비빈다.

 

그때 문득 몇 해 앞 해인사 옆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을 때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보다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는 것이 밥알과 채소가 으깨지지 않아 맛이 더 좋다'는 그 집 주인 말이 떠올랐지만 이미 숟가락으로 다 비벼버렸으니 어떡하랴. 어릴 때부터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쓰윽쓱 비벼야 제 맛이 난다는 고정관념을 어찌 버릴 수 있으랴.           

 

보기에도 침이 꿀떡 넘어가는 채소비빔밥 한 수저 푸짐하게 떠서 입에 넣어 몇 번 씹자 입 안 가득 싱그런 채소향이 은근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채소비빔밥과 함께 풋고추 된장에 푹 찍어 함께 먹는 맛은 뒤끝이 깔끔해서 좋다. 채소비빔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사이사이에 떠먹는 재첩수제비국은 시원하고도 은근한 감칠맛이 혀를 한껏 희롱한다.  

 

채소 많이 먹는 것이 건강 지키는 지름길

 

"동동주 한 잔 해."

"생각은 간절하지만 제 몸이 주인 잘못 만났다고 토라질까봐서요."

"그래. 낮술 먹고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고 하잖아. 나중에 어스럼이 슬슬 깔리기 시작할 때 제대로 한 잔 하자구."

 

동동주 한 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향긋하고도 고소한 채소비빔밥 맛을 동동주가 빼앗아 버릴 것 같아 꾹 참고 열심히 숟가락질을 한다. 그렇게 5분쯤 지나자 채소비빔밥 한 그릇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없다. 끝으로 숟가락으로 휘이 저으면 자잘한 제첩알갱이와 함께 뽀르르 올라오는 수제비까지 다 먹고 나자 온몸에서 향기가 나는 듯하다.

 

윤재걸 시인은 "이 집은 오래 전부터 싱싱한 채소가 먹고 싶을 때마다 자주 오는 단골집"이라고 말한다. 윤 시인은 "이 집에 앉아 채소비빔밥 한 그릇에 재첩수제비국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이 가벼워진다"며 "나이를 먹을수록 지방질이 많은 육류보다 섬유질이 듬뿍 든 채소를 많이 먹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갈빛, 잿빛으로 쓸쓸하게 말라가는 늦가을. 건조한 날씨에 몸까지 건조해지기 쉬운 이런 때, 그리운 얼굴들 모두 불러 인사동 골목에 있는 고풍스런 기와집에 앉아보자. 그리하여 오래 묵은 우정을 채소비빔밥에 담아 비비고, 채소향 나는 싱그러운 삶도 함께 비비며, 건강까지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채소비빔밥, #인사동 학고재 골목, #섬유질 많은 채소, #무싹 등 새싹채소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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