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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하루 밤바람이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성큼 무르익는 가을 속에, 잔감기 없이 건강하신가요?

깊어가는 가을밤, 당신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오늘밤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외로움을 담담히 표현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er)와 음악가 넬(Nell)의 이야기. 슬픔에 젖은 이들을 위한 그림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

그럼 음악 이야기에 앞서서 그림 이야기를 먼저 꺼내볼까요.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걸까>,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등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 그는 슬픔에 대해, 슬픔이 주는 기쁨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직접 보여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퍽이나 즐겁기에 소개하고 싶네요.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 Automat>, < Hotelroom>, < New York movie>, < Sunday morning >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 Automat>, < Hotelroom>, < New York movie>, < Sunday morning >
ⓒ Edward H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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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판매식 식당Automat>(1927)에서는 여자가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다. 늦은 시간이다. 여자의 모자와 외투로 보건대 밖은 춥다. 여자가 있는 실내 공간은 크고, 불이 환하고,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 여자는 사람을 꺼리는 듯하고 약간 겁을 내는 것 같다. 공공장소에 혼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 그녀를 보다 보면 어느새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 배신이나 상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녀는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손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혼자일 수도 있다. 이 여자와 비슷하게 생각에 잠겨, 이 여자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남자와 여자들. 이런 공동의 고립은 혼자인 사람이 혼자임으로 해서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설명을 따라 여기저기 찬찬히 눈을 훑으며 그림을 바라봅니다. 그녀의 옷차림, 그녀의 표정을 세세히 바라보고 이내 실내의 분위기와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순간, 제겐 이 그림이 단순한 평면을 넘어 입체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순간, 조용히 퍼져나가는 마음 속 진동. <자동 판매식 식당>은 슬픔을 그린 그림이지만 그저 슬픈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씨는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호퍼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지만, 그림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 속에서 자신의 슬픔과 실망의 메아리를 목격하고, 그럼으로써 혼자 감당하던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에 벽에 걸어야 할 것은 쓸쓸한 도로변 휴게소 그림인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목소리로 진중히 속삭이는 듯합니다. 토닥토닥, 괜찮다, 괜찮다고. 그림 속의 고독은 이 세상에서 나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님을, 그림 속의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외로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오묘하지 않은가요! 슬픔과 실망의 메아리를 통해 혼자 감당하던 괴로움과 중압감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사실 저는 이러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품은 ‘신비한 비밀’을 아주 뒤늦게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미처 몰랐던 슬픔이 주는 위로의 힘에 적잖이 놀라며, 기뻤답니다. 어떠신가요?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저에게도 은하수 속 한 무리가 되어 반짝이던 삶의 모습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샘솟던 시간은 아프게 흩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은하수의 그 수많던 별들이 우두두둑, 눈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저는 깊이, 깊이 내려만 갔습니다. 그 하강이 저를 성찰과 익음으로 이끄는 것인지, 우울과 자괴로 이끄는 것인지 늘 헷갈렸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전 계속 잠겨만 있군요.

그렇게 잠겨버린 제 모습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답니다. 어, 왜 이러지? 내가 이리 슬퍼해선 안되는데, 내가 우울할 수는 없는 일인데, 이렇게 마음의 황량함이 오래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인데, 안되는데, 나는 꼭 강한 사람이어야만 하는데. ‘실패자, 약자’라는 스스로의 호명이 두려웠고, 가라앉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질 못했답니다.

그렇게 ‘의지’란 이름으로 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희망’이란 이름으로 제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세웠네요. 네, 의지와 희망, 당연히 좋고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제 자신을 껴안을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이어야만 진실로 값질 수 있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때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신비한 비밀’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멀리하고 싶었다는 게 진심에 가깝겠죠. 제 마음 속 저의 슬픔을 부정했듯, 그림 속에 담긴 슬픔도 부정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림 속의 ‘실패자, 약자’가 나인 듯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덧 숙였던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미처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죽 흘렀고, 저도 조금은 자란걸까요?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 수도 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꼭 그대를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에서)

그래요. 저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틀리 수도 있음을, 때론 제 자신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음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제 안의 슬픔과 고독은 그저 도려내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다 스스로가 품고가야만 하는 것임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규정해둔 정답과 모범에 저를 괴롭게 구겨 넣는 것이 성공과 행복의 길은 아니겠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품게 될 즈음, 비로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순간, 탁, 입체로 떠오르기 시작했답니다. 여전히 외로웠지만 부드러운, 심지어는 유쾌한 외로움이 다가왔고 이내 알 수 없는 고요함 속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나의 부드러운, 심지어는 유쾌한 외로움!

자, 그림 이야기, 길게 돌아왔는데요. 이제 음악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요. 이 편지를 통해서는 당신께 직접 음악을 들려드릴 수가 없지요. 그림은 편지지에 담아 넣을 수 있지만, 공기를 타고 뛰어노는 음악은 차마 편지지에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이야기를 앞서서 꺼냈답니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 음악 이야기에 담고 싶은 그 느낌을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생생히 느껴보시길 바랬어요. 

넬(Nell)의 < Healing Process> 앨범에 담긴 그림
 넬(Nell)의 < Healing Process> 앨범에 담긴 그림
ⓒ 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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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가 슬픔을 그림으로써 저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면, 그룹 넬은 슬픔을 노래함으로써 저를 마음 깊이부터 위로해주었습니다. 감성의 전도사, 영혼의 치유자, 소통의 신호등 등으로 불리는 인디밴드 출신의 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황량하고 슬픈 광경이었듯, 넬의 음악도 어지럽고 아프고 자조적입니다. 무언가 텅 비어버리는 듯한 느낌.

물론 그래서 전 넬의 음악이 싫었습니다. 호퍼의 그림을 멀리하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넬의 음악을 피하고 싶었었죠. 고독과 슬픔이 짙게 뭍은 넬의 노래를 들으면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아 무서웠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품격을 갖춘 가사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몽환적 멜로디와 보컬이 합쳐진 매력은, 매력을 넘어 마력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어느덧 시간이 흘렀습니다. 화려한 희망의 구호와 응원이 도리어 공허할 수도 있음을, 어쭙잖은 충고와 서툰 조언은 그저 허무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넬의 음악을 들으며 그 속에 잠겨 제 자신의 슬픔과 실망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여유를 갖게 되었답니다. 무너져내린 마음을 노래하는 넬의 슬픈 음악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시금, 슬픔이 주는 위로의 힘.

낙엽의 비
왠지 오늘은 정말 너무 하네요 오늘 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요
빗소리 마저 너무나 처량해서 흐르는 눈물 막을 길이 없네요

오늘 하루는 상처받기 싫어요 오늘 만큼은 그럴수가 없어요
지친 내영혼 결국 쉴 곳이 없어 가을 낙엽과 함께 떨어지겠죠

이럴땐 영원한 잠속에 나를 가둬 버리고 싶어요
나도 이러긴 싫죠 행복하고 싶고 그러고 싶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죠
웃어보고 싶고 그러고싶지만
내게 남은거라곤 그저 지독한 쓸쓸함 뿐인걸요

나도 이런내가 싫지만 나도 이런내가 싫지만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Beautiful Day
바람결에 불려 다니는 나뭇잎처럼
저 강물위로 부서지는 달빛들처럼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시간들처럼
소멸되고 다시 태어나는 기억들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너무 어색하지 않게 속삭여봐

하나씩 둘씩 떠나가는 사람들처럼
그들과 함께 떠나가는 약속들처럼 자연스럽게
돌아와 주길 기다리는 멍청함처럼
또 그런 기대에 걸 맞는 마지막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너무 어색하지 않게 속삭여봐

거기 누구 없나요 내 손 여기 있어요 좀 잡아줄래요 뿌리치지 말고
거기 누구 없나요 내 손 여기 있어요 좀 잡아줄래요 외면하지 말고
들릴 듯 말 듯 조용하지만 보일 듯 말 듯 희미하지만
좀 도와주세요

음..아무도 없군요 예상했던대로
다시 하얀 방 침대 속에서 난 혈관 속 친구를 맞이해

거기 누구 없나요 내 손 여기 있어요 좀 잡아줄래요 뿌리치지 말고
거기 누구 없나요 내 손 여기 있어요 좀 잡아줘요
외면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여전히 “나도 이러긴 싫죠 행복하고 싶고 그러고 싶지만” “내게 남은거라곤 그저 지독한 쓸쓸함 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간절하게 허공으로 손을 뻗어봅니다. “거기 누구 없나요 내 손 여기 있어요 좀 잡아줄래요 외면하지 말고”. 그래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지껏 그래왔듯 간절한 나의 손짓은 그저 허공을 휘젓다가 말테고 오늘밤도 그저 지독하게 쓸쓸할 것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기 호퍼의 그림이 있고 게다가 넬의 음악까지 있습니다. 오늘밤도 그들이 선물하는 슬픔의 위로가 함께 할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외롭지만 동시에 살짝, 미소도 짓고 있답니다.

알고 있어요. 오늘밤, 당신도 이미 충분히 쓸쓸하다는 당신만의 비밀을. 어떠신가요, 살포시 넬의 음악을 틀어보는 건? 그리고 같이 위로받으시는 건? 같이 느끼고, 위로받아 볼까요? 우리의 부드러운, 심지어는 유쾌한 외로움!

지금 이 순간을 겪어낸 것이 제게는 분명 큰 행운입니다. 당신도 부디 평안하고 또 평안하시길.

덧붙이는 글 | '나의 가을 노래'



태그:#넬, #NELL,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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