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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 주인공은 엄마와 아기다. 아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아빠가 필수요소는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없어도 아기는 나온다. 그렇다면 아빠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분만실 밖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할까. 의사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며 넙죽 인사드리면 그만일까. 겨우 이런 거밖에 없는 걸까. 나도 뭔가 아내와 아기의 출산을 돕고 싶은데 아빠로서 딱히 할 일이 없는 듯만 보였다. 왠지 너무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랠 길은, 공부였다. 출산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모아 읽기 시작했다. 혹여 엄마와 아기의 출산에 도움될 이야기를 찾으리란 기대로. 결과는, 상상초월. 여보와 나, 우리 머릿속에 있던 출산의 그림이 전혀 새롭게 그려졌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을 어떻게 느낄까?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서게 되면 엄마 아빠는 극히 조심스러워진다. 하루 24시간 보고 듣고 먹고 자고 느끼고 생각하고 만나는 모든 것들을 아기와 연결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모든 일상의 초점은 아기의 안녕이다. 아기가 뱃속에서 놀라지 않길, 무섭지 않길, 나쁜 걸 먹고 나쁜 걸 듣지 않길 등등. 그리고 가능한 뱃속에서 사랑 느끼며 편안히 커가길. 모든 엄마 아빠들은 같은 마음이기에 모두가 태교에 지극정성을 들이는 것이리라. 온 세상의 중심은 아기다.

그런데 그 지극정성이 급작스레 단절되는 이상한 때가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출산의 순간, 아기가 태어나는 그때.  

"다시 묻는데, 대체 어떤 기적이 존재하기에 신생아가 그렇게 큰 소리로 울면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하는 겁니까?"
"세상에 나온 아기가 말할 줄 모른다고? 아기는 온몸으로 항의하고 외치고 있다. "안 돼! 만지지 마! 내버려 둬, 내버려 두란 말이야!" 그러면서 동시에 간청하고 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보다 더 간절한 외침을 던져 본 적 있나? 바로 이것이 태초부터 세상에 나오는 아기가 던지는 외침이다. 그런데 이 호소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 큰 의문이 아닌가?" (- <폭력없는 탄생> 중)

아기가 태어나면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울음이 혹여 고통의 외침일 수 있다고? 아기의 비명일 수도 있다고?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본다. 아기는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을 어떻게 느낄까? 분만실의 환한 빛과 여러 사람의 시끌시끌한 소리.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분주한 손길. 안 그래도 낯설 이 세상이 한층 두렵지 않을까. 엄마를 얼마나 간절히 찾으려나. 그러나 엄마 품에 머무는 건 너무도 잠시. 낮과 밤을 늘 함께 하던 엄마와 똑 떨어져 신생아실에서 혼자인 시간을 보낸다. 너무 무섭고 외롭지 않을까. 너무 너무 엄마랑 있고 싶지 않을까.

어떻게 그렇게도 소중한 우리 아기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을까. 태교 때는 늘 아기가 중심이었는데 출산 때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아기의 평안을 바라는 지극정성이 대체 출산 때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출산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엄마 배 속에 있던 아기들에게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신생아실이 얼마나 불편할까. 어른들은 말 못하는 아기들의 고통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안다. 출산 직후의 시간이 아기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 <김세아의 자연주의 출산> 중)

 sbs스페셜 '아기, 어떻게 낳을까 -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의 한 장면
 sbs스페셜 '아기, 어떻게 낳을까 -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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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다고?

결국 일반적인 병원출산만이 답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병원출산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 모르고 있었을 뿐, 다른 출산의 선택지들이 가능했다. 다른 선택지가 가능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우리가 찾아간 곳은 한 조산원이었다.

"뭐, 조산원?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다고?" 
"위험하지 않겠어?"
"뭐하러 사서 고생이야?"
"아기를 생각해!"

우리가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할 때 대부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우리도 마음 한편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은 유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얻었다. 책이든 온라인 카페든 직접 만남이든 유경험자를 만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간 조산원의 출산엔 무통주사도 유도분만제도 없었다. 아기의 평안한 출산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아기 엄마가 너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또 이게 아기를 위한 길이자 엄마를 위한 길일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산부인과 분만실은 무척 소란스럽습니다. 침대 위로는 환한 조명이 켜져 있으며 여기저기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의료 기기들이 놓여 있습니다. 분말 대기실 침대에서 산모는 꼼짝없이 혼자서 진통을 견뎌야 하고, 분만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아기가 나오는 시기가 되면 의사 선생님이 아기를 받기 편한 자세로 누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모는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끼고, 아기를 낳는 내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 <김세아의 자연주의 출산> 중)

"산업적 출산의 시대에 산모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 그저 '환자'일 뿐이다." (- <농부와 산과의사> 중)

그렇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반적인 병원출산에서 엄마가 그리 편안하진 않을 것 같다. 위급상황시 안전할 수 있고, 무통주사로 통증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뭔가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의료 기기들과 각종 주사들이 출산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겠지만 어둠과 침묵이 보장되는 조산원의 출산환경이 한결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 <즐거운 출산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는 "출산하는 동안 임신부가 원할 때 먹고 마실 자유", "원하면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아기가 스스로 나올 준비가 됐을 때 출산할 자유", "아기가 태어난 후 계속 함께 있을 자유"를 모두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출산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과는 다르며, 이는 하나의 집단 최면"
"사랑의 결실로 생긴 아기가 고통이라는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대부분의 산모에게 출산은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산모의 몸과 출산의 생리적 작용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면, 건강한 산모들에게 출산의 고통이란 충분히 감당해 낼만한 잠깐의 지나감입니다."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중)

옛 할머니들은 밭에서 일하다, 장 다녀오다, 산에서 나물 캐다 혼자 애 낳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개도 고양이도 소도 그냥 새끼를 낳는다. 그 정도 경지(?)까지는 못 닿더라도 "어머니와 아기의 생리학적 잠재능력 전체를 이용"할 수 있다면 출산이란 게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은 아니리라. 진통 간격이 점차 짧아지던 그날,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나름 경쾌히 조산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감사히 순산했다.   

엄마 아빠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길... 

그렇다면 머릿속의 새로운 출산그림과 실제의 출산은? 다르지 않았다. 어둠과 침묵이 있는 조산원의 방은 엄마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조산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호흡을 조절하기도, 자세를 바꿔보기도 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안내의 느낌. 여전히 주인공은 엄마였다.

아빠? 아빠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쭉 함께였다.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응답할 수 있고, 끙끙하는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어줄 수 있고, 엄마가 힘줄 때 손을 꽉 잡아줄 수 있고, 때론 자세를 바꿀 때 다리를 쫙 당겨줄 수 있고. 아빠는 더 이상 비중 없는 조연이 아니었다.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조연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산에 깊숙이 함께 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놀라웠다!

놀라움은 끝이 아니었다. 아기의 머리가 보일락 말락 보일락 말락. 이내 갑자기 쑤욱. 우리 아기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애쓰는 엄마 곁을 적극적으로 지킴에 더해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오롯이 내 눈에 담고 느낄 수 있다니.

잠깐 울던 아기는 곧 엄마 가슴에 안겨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아기, 엄마, 아빠 우리 셋은 한방에서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들었다. 이 시간은 내 마음에 언제이고 따뜻하게 떠오르는 행복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조산원에 머물던 며칠 내내 아기와 우리는 늘 함께였다. 아기와 엄마가 떨어질 일은 결코 없었다. 우리 셋은 꼭 붙어있었다.

혹여나 내가 경험한 이런 출산이 '옳다'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뱃속 아기를 끔찍이 생각하는 엄마 아빠들의 선택지가 조금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어떤 엄마 아빠든 각자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을 첫 대면할 아기에게도, 출산이란 두려움 앞에 선 엄마에게도, 옆에서 발을 동동대는 아빠에게도.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을.

적어도 우린 우리 셋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여긴다. 출산을 경험할 모든 엄마 아빠에게 내리 쬘 축복의 순간, 우리는 그 축복의 순간을 오롯이 축복으로 맞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출산,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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