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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4일. 자정이 다가오는데 슬슬 배가 아파졌다. 예정일은 아직 며칠 더 남아 있었지만 진통이 반복해서 왔다.
 2009년 6월 4일. 자정이 다가오는데 슬슬 배가 아파졌다. 예정일은 아직 며칠 더 남아 있었지만 진통이 반복해서 왔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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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우아하지 못하게 아기를 낳으셨어요? 그래도 아주 효자를 낳으셨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아기를 낳고 누워 있는 내게 웃으며 처음으로 던진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긴 하다. 

2009년 6월 4일. 자정이 다가오는데 슬슬 배가 아파졌다. 예정일은 아직 며칠 더 남아 있었지만 진통이 반복해서 왔다. 아이가 나오려는 신호인 게 분명했다.

그때까지도 일하고 있는 남편이 집에 오려면 30분은 족히 걸릴 터. 일곱 살 첫째와 함께 있던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바로 옆에 살고 계신 친정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오셨는데, 그 순간부터 갑자기 배가 더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곧 남편이 도착했다. 

서둘러 병원에 가니 어느새 날이 바뀌어 6월 5일 새벽이 돼 있었다. 바로 아기 낳을 준비를 하고, 분만대기실에 누웠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됐는지 배가 점점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 아픔은, 아기를 낳아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너무너무 아파서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아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주기도 짧아졌다. 정신까지 아득해지는 그 아픔을 참아내면서, 어처구니없게 갑자기 난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디기 힘든 이 아픔을 더이상 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때부터 막무가내로 수술을 하겠다고 우겼다.

첫째도 자연분만한 내가 수술을 고집하다니

"남편, 나 수술할래."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편은 내게 몇 번을 확인했다.

"정말 수술할 거야?"

나는 초지일관 같은 대답을 했다.

"응, 수술할 거야."

병원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산모님, 정말 수술하실 거예요? 자궁이 5cm나 열렸는데, 수술을 왜 하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자연분만하실 텐데요?"
"배가 너무 아파요. 그냥 수술할래요"
"첫째도 자연분만하셨잖아요. 둘째는 더 쉬워요."
"수술하고 싶어요."
"아니, 조금만 기다리면 아기가 나온다니까요?"
"그냥 수술해 주세요."

서로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병원에서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는지 남편에게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남편은 서명을 하기 전, 다시 내게 물었다.

"도저히 안되겠어? 수술할 거야?"
"응, 수술할 거야. 얼른 사인해."

첫째 아이 때문에 병원에 오시지 못한 친정엄마가 만약 그 자리에 계셨다면, 절대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자궁이 5cm나 열렸는데 수술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난 아마도 뭔가에 단단히 씌었나 보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수십 번을 수술하겠느냐고 묻고 또 묻던 남편은 버티다 못해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나는 휠체어를 타고 그토록 원하던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실이 분만실로 변했습니다

수술실에 도착하니 갑자기 배가 더 아파졌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밀고 함께 간 간호사가 내게 수술 침대로 올라가라고 했다. 배도 아프고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나한테 직접 수술침대로 올라가라니….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수술을 하려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휠체어 손잡이를 지탱해 앉아 있던 몸을 반쯤 일으켰는데, 폭풍처럼 진통이 밀려왔다. 온몸이 뒤틀리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들이 아래쪽으로 집중됐다.

순간 수술실은 곧 분만실이 됐다. 수술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 내게 달려들어 나를 도왔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수술실 휠체어와 수술 침대 사이에서 둘째를 낳았다. 그것도 '우아하지' 못하게 일어선 채로….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병원에 들어선 지 고작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둘째는 내 걱정을 했는지 무척이나 일찍 나왔다.

우아하지 못하게 수술실에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둘째
▲ 2009년 6월 5일 우아하지 못하게 수술실에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둘째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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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제와서 고백하건대 내가 그토록 수술을 고집한 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해 정초에 철학관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철학관 이야기의 요지는 그 해에 내 몸에 칼을 댈 일, 즉 수술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철학관은 내게 '병으로 수술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미리 다른 수술을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크든 작든 내 몸에 칼만 대면 된다는 것이다. 이미 큰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나는 혹시 다시 병이 재발할까봐 겁이 났고 차라리 제왕절개를 해야겠다 생각했던 게다. 지금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지만, 그때 내게는 건강이 그토록 절박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자연분만을 했지만, 그 해 나는 무사했다. 어디 그 해뿐인가. 지금까지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우아하지' 못하게 태어났지만, 태어날 때부터 효자가 된 우리 둘째도 무럭무럭 잘 자랐고, 올해 여섯 살이 됐다. 지금도 그날 그 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응모글 입니다



태그:#출산, #분만대기실, #제왕절개, #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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