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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자기의 때를 따라 피어날 수 있는 까닭은 그들나름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봄의 전령사로 자처하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단지 따스해서 피어난 것이 아니라 추워도, 꽃샘추위가 한창 몰려와도 생체시계의 시간에 맞춰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바보꽃은 있어왔습니다.

 

사시사철 온실에서 자란 원예종꽃을 볼 수 있는 요즘이야 바보꽃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뭇잎이 하나 둘 단풍들어 떨어지고, 점점 제 몸을 가볍게 하는 요즘 풀섶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저런 바보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들판에 피어난 바보꽃들과 내년을 기약하며 스러져가는 가을꽃들을 보노라면 아둥바둥 살아도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화사하지 않아서 누군가에 손에 꺾여 화병에 한 번 꽂혀본 적이 없었을 꽃들, 그러나 그들에게 화사하지 않음은 오히려 생존전략이요,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꽃들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가 꺾이고, 진한 향기로 유혹을 하다 잘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도 될만큼 가진 사람들, 기득권자들이 더 가지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세상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위해서 온갖 추태를 부렸어도 그 자리만 꿰고 앉아있으면 너도나도 굽신거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나는 소망합니다. 지금은 그들이 승자처럼 군림하지만 언젠가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하는 것을 목도하기를.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도 주목받지 못하는 개여뀌 같은 서민들의 삶, 간혹 '개 같은 삶이여!' 한탄을 하기도 하지만 '개가 된들 어떠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성서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방인을 능멸하던 '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가나안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합니다. 결국 예수는 그 여인의 딸을 고쳐줍니다.

 

이 여인의 심정,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개가 된들 어떠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가 자신들의 것인냥,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권모와 술수로 살아가면서 그것이 능력이라 여기는 이들의 삶의 양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개 취급'을 당하는 세상인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삶은 어찌 이리도 바보꽃을 닮았을까 싶었습니다.

 

내일 내리는 서리에 시들어버릴지라도, 내일 내리는 서리에 물러버릴지라도 오늘 피어난 것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리라 활짝 웃고 있는 천진난만한 벼룩나물은 서민의 삶을 닮았습니다.

 

숲이 건강하려면 큰 나무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작은 들풀들이 어우러져 있어야 건강한 숲이 됩니다. 죽었던 땅이 생명을 회복하려면 작은 들풀들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습니다. 지금껏 큰 나무만을 위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들풀들이야 죽든말든 큰 나무만 최고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풀뿌리 민중들이 죽어가니 병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을 숲길을 따라 걷다 돌아오니 바지에 조개풀이 어지간히도 많이 붙어있습니다. 그들을 하나 둘 떼어내는데 끈적한 기운이 손가락에 전해집니다. 어지간히 정도 많은 놈들이다 싶고, 자수성가하기 위해 어디로 갈지 모를 여행길을 떠나는 씨앗들이 고마웠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돌고, 이제 가을 꽃들도 내년을 기약하며 서서히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피어난 바보꽃, 봄에 피어난 꽃처럼 활짝 웃고 피어있습니다. 그들이 희망입니다.

 

그들은 가을뿐 아니라 겨울들판 어딘가에서도 피어날 것입니다. 그들이 바보꽃으로 피어나 활짝 웃는 한, 이 땅에 살아가는 꽃 보다 아름다운 사람하나 활짝 웃으며 신새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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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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