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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라산에서 만난 노랑제비꽃
▲ 노랑제비꽃 한라산에서 만난 노랑제비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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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그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내 삶은 진작에 마감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삶 가장 힘든 순간에도 그들을 바라보면 내가 절망하려고 하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단지 웃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 생명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삶 혹은 생명이라는 것은 대충 살아갈 것도 아니며, 아옹다옹 싸우며 살아갈 일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서도 더불어 자연인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제주도 교래에서 만난 좀씀바귀
▲ 좀씀바귀 제주도 교래에서 만난 좀씀바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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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행길에서 만난 들꽃들, 그들을 통해서 얻은 행복들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겹치는 것을 뺀다고 해도 그간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대략 450여 종의 들꽃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꽃, 그 어느 꽃도 같은 꽃이 없었습니다. 피어난 곳에 따라, 시기에 따라, 색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들꽃들을 보면서 사람의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상한 꽃조차도 활짝 웃으며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조건이면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끊임없는 소유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자연적인, 그래서 비인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았습니다.

경기도 화야산에서 만난 얼레지
▲ 얼레지 경기도 화야산에서 만난 얼레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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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달팽이 걸음으로 만났던 꽃을 나누는 그 나눔의 손길을 마쳐도 될 것 같습니다. 맨 처음에는 100이라는 숫자에 도전을 했고, 이후 그 걸음을 멈출 수가 없어 200이라는 숫자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맨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삶의 자리가 도시로 옮겨지면서 그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졌고, 자연의 품에 있을 때처럼 진득하니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꽃놀이 혹은 들꽃을 사진에 담는 일들조차도 사치로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는데 그들은 그 들꽃에 눈길을 줄 여력조차도 없는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야생화 마니아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사치스러운 취미 중 하나가 된 것이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들꽃을 만나러 온 것인지 장비를 자랑하기 위해서 온 것인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다른 이유들이 더 많은 것 같아 꽃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꽃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물골에서 만난 괭이눈
▲ 괭이눈 강원도 물골에서 만난 괭이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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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부러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그냥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꽃, 간혹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들꽃들로 만족을 할까 합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꽃들도 나름의 숨박꼭질을 하는 이유가 있을 터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삶의 현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꽃들까지 마다한다면 그들에 대한 배신이겠지요.

서울하늘 아래서 만난 제비꽃
▲ 제비꽃 서울하늘 아래서 만난 제비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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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통해서 나는 생명의 신비를 보았고,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눈과 귀와 입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고,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고단한 날일지언정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이 행복충만입니다. 때론 바람에 흔들리고, 찢겨도 들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찾아와 지천명의 나이를 앞둔 시점까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들꽃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평생지기 친구들, 내가 잠시 내 삶에 치여 그들을 떠났다가도 언제든지 다가가면 반갑게 맞이할 그들이 지금도 어느 들판 혹은 바위틈에서 활짝 웃고 있겠죠?

덧붙이는 글 | 그동안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글마다 멋진 시로 화답을 해주신 꽃님께 아주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시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태그:#들꽃이야기,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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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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