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엔> 화면캡쳐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가 오늘(22일) <뉴스엔>에 <‘놈놈놈’ 평, 극과극?... 김지운 감독 밝힌 스토리 죽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으로 <놈놈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놈놈놈>

<놈놈놈> ⓒ CJ엔터테인먼트

<놈놈놈>을 비판하는 것은 철저하게 철판을 깔고 시작해야 한다. 장면 하나하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너무나 잘 알겠기 때문이다. 먼지가 펄펄 날리는 사막에 스탭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눈에 보이는 고통을 외면하고 단지 영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결과론적 이유 하나로 <놈놈놈>을 비판해야 하는 평론가와 관객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김 감독은 "이런 것들을 봐달라"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관객은 감독이 가리키는 것만 보지는 않는다. 그것만 보고 있기에는 러닝타임이 길고 따로 시간을 내어 생각할 겨를이 많을 정도로 영화가 지루하다. 나는 그래서 참 안타깝다.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한계가 보인다는 것. 이렇게 하면 분명히 더 좋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아쉬움이 먼지가 되어 하늘을 뒤덮는다.

먼저, <놈놈놈>은 송강호를 제외하고는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다. 정우성과 이병헌의 캐릭터는 사라지고 송강호만 살아남았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양념으로만 그려졌다.

"넌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놈이야" 영어 문장을 번역한 듯한 이 문구는 윤태구(송강호)가 박도원(정우성)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박도원의 냉정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있었던가? 도대체 어떤 부분이 냉정했기에? 그는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소개됐지만 장총을 잘 쏜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특징도 앞부분에서 설명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내내 박도원이라는 캐릭터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비트>의 정우성의 만주 버전처럼 보인다.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져서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캐릭터와 배우가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박창이(이병헌)는 박도원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그에게는 태구를 좇는 계기도 있고 자존심 강한 남자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처럼 그려졌다. 악에 받힌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양한 표정을 소화하는 윤태구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원한을 갖고 있는 것은 태구뿐이다. 하지만 갑자기 3자 대결을 주장한다. 도대체 왜?

이 영화가 존경을 바치고 있는 <석양의 무법자>의 세르지오 레오네의 장점이라면 캐릭터를 분석하는데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사용하다가 마지막에 폭발시킨다는 것이다. 정말 세밀한 부분까지 캐릭터를 잡아내는데 이용하는 레오네의 특징은 무미건조한 스타일로 선악의 구분을 허무는 데에 있다. 하지만 김지운의 <놈놈놈>은 레오네를 따라갔으되 스타일에 집착하다가 캐릭터를 망쳐버렸다.

세 캐릭터가 각각 독특한 꼭짓점을 형성하면서 삼각형을 이뤄야 하는데 한 개의 꼭짓점은 너무 약하고 또 한 개는 너무 평면적이고, 다른 한 개는 지나치게 영리하다. 그래서 이 삼각형은 잘 서지 못한다.

스토리의 결핍이라는 지적도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토리를 잔뜩 풀어서 집어넣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 영화에 지나치게 스토리가 많다고 생각한다. 엄지원으로 대표되는 독립군이 나오는 장면은 이해할 수 없고, 손병호가 나오는 장면은 있으나마나한 설정이고, 이청아가 마지막에 거기까지 어떻게 찾아갔는지 모르겠고, 일본군 나레이션이 나오는 장면도 심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스토리의 과잉이다. 스토리가 많다보니 오히려 정작 들어갔어야 할 스토리인 지도 상의 위치를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아마도 스토리상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아닐까.

이렇게 <놈놈놈>은 많은 것을 조금씩 보여주고 대충 버무려버렸다. 너무 많은 분량을 촬영해서 일부를 포기했어야 한다면, 곁가지는 다 쳐버리고 좀더 세 명의 캐릭터에 집중했어야 한다. 특히 거듭 지적하지만 박도원의 캐릭터를 더 살렸어야 한다. 이 부분은 정우성에 대한 연기력 논란과도 겹치는 부분이다.

김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그는 오락영화로서 이 영화에 장점이 많다고 항변하고 싶은 모양이다. 비주얼이 좋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바닥에 걸쳐서 칭찬해줄 수 있다. 주로 모래를 뒤집어 쓴 배우들과 스탭들의 노력을 칭찬하는 말이 되겠다. 하지만 영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화면이 멋있고 긴박감 넘친다" 이 한마디 외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서양 웨스턴 영화에 비해 별다른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디워>에 대한 찬반양론과 비슷한데 차라리 <디워>는 새로운 아이디어라도 있었다. 하지만 <놈놈놈>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고 코믹한 대사들과 스타일리쉬한 클리셰의 연속일 뿐이다.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에서 보듯 김 감독은 비주얼로 말을 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저 두 영화와 <놈놈놈>의 차이점은 집중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장화 홍련>은 두 자매에 모든 스토리가 집중되어 있고 <달콤한 인생> 역시 이병헌이 영화의 전부다. 하지만 <놈놈놈>은 비주얼로 캐릭터를 살리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

놈놈놈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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