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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은 푹 고은 사골국물에 순대와 머리고기, 목살고기, 내장 삶은 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 팔팔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어 먹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식
▲ 순대국 순대국은 푹 고은 사골국물에 순대와 머리고기, 목살고기, 내장 삶은 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 팔팔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어 먹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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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마음으로 쏟아져 아물어가는 상처 덧내는 날
내 젊은 날에 날쌘 회오리바람만 일으켜놓고 
훌쩍 훌쩍 떠나간 그 가시나처럼 떠오르는 그 음식

벚꽃잎이 함박눈처럼 내 마음에 차갑게 쌓이는 날
따스한 너의 입술 내 입술에 옮기며
안아 줘 더 꼬옥 하던 그 가시나처럼 다가오는 그 맛

잊혀진 옛 사랑 어른거리는 순대국 한 그릇 앞에 놓으면
널 먹고 싶어 날 먹고 싶지 않아 마구 보채며  
순대국 한 그릇에 마음 섞던 그 가시나 눈에 밟히네  

이소리, '순대국' 모두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나는 그 집 그 음식
▲ 순대국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나는 그 집 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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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하다. 샤워를 해도 온몸이 끈적거린다. 제17호 태풍 '갈매기'가 한반도로 다가오면서 이른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지는 장대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종일 쏟아지는 장대비에 사무실 곳곳이 습기에 젖어 눅눅하다. 마음마저도 그 습기를 들이킨 듯 눅눅하다.

이렇게 비가 올 때마다 생각나는 그 집 그 음식. 서울 중랑구 면목동 동원시장 안에 있는 그 집. 겉보기에는 길거리 포장마차처럼 허름한 듯 보여도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음식 맛이 혀끝을 끝없이 희롱하는 그 순대국집. 배가 출출할 때마다, 간밤 술을 많이 마셔 속이 몹시 쓰릴 때마다 찾는 그 집 그 순대국.      

순대는 숙주, 우거지, 찰밥 등에 돼지 선지를 섞어 된장으로 살짝 간을 맞춘 것을 돼지나 소의 창자에 넣어 쪄낸 음식이다. 순대는 지역에 따라 만드는 방법과 맛이 다르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아바이순대를, 강원도에서는 오징어를 사용하여 오징어순대를, 충청도에는 병천순대를, 전라도에서는 암뽕순대를 만든다.

순대국은 푹 고은 사골국물에 순대와 머리고기, 목살고기, 내장 삶은 고기 등을 푸짐하게 넣어 팔팔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어 먹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리고, 얼음물을 많이 마셔 기운이 쭈욱 빠졌을 때 한 그릇 먹고 나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보양음식의 왕자가 순대국이다.

홍씨의 부인이 맛깔스럽게 보이는 깍두기와 벌겋게 버무린 배추김치, 양파와 마늘, 새우젓갈, 송송 썬 매운 고추, 된장 한 접시를 식탁 위에 주섬주섬 놓는다
▲ 밑반찬 홍씨의 부인이 맛깔스럽게 보이는 깍두기와 벌겋게 버무린 배추김치, 양파와 마늘, 새우젓갈, 송송 썬 매운 고추, 된장 한 접시를 식탁 위에 주섬주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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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집에서 우연찮게 만난 그 여고생과의 첫 펜팔

"야~ 배도 출출한 데 조기(저기) 가서 순대나 묵고(먹고) 가자."
"니 순대 사 묵을 돈 있나? 내는 집에 돌아갈 버스비뿐이다."
"걱정 꺼뿌라(꺼라). 저 집 우리 고모가 하는 가게 아이가."
"아무리 고모라 캐도 우리캉 떼지어 몰려가 돈 안 주고 막 묵어도 되나. 니 혼자라모 몰라도."

1970년대 중반. 나그네가 마산 회원동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옆에 꽤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육류, 생선, 채소, 옷, 신발, 가전제품 등 그야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몽땅 다 있다는 그 시장 한 귀퉁이에 순대를 파는 자그마한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그 순대집은 같은 반 동무의 고모가 하는 집이었다.

우리들은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순대집에 들러 학교 선생님 이야기, 여학생과 펜팔하고 있다는 이야기, 장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곤 했다. 순대집을 하고 있는 그 동무의 고모 또한 마음씨가 참 넉넉하고 좋았다. 까닭에 우리들은 누구나 그 순대집 주인을 고모라 불렀다.

그 고모는 우리들이 순대를 다 먹고 나면 어김없이 '가다가 나눠 먹어라'며 조금 전에 우리들이 먹은 그 순대보다 더 많은 순대를 공짜로 푸짐하게 싸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대집에는 여고생들도 자주 와 순대를 먹거나 싸가곤 했다. 우리들은 더욱 신이 났다. 순대를 먹으며 예쁜 여고생도 슬쩍슬쩍 훔쳐볼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였다. 

그때 우연찮게 만난 그 여고생. 나그네는 쌍꺼풀이 예쁘게 진 그 가시나가 마음에 쏘옥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그 순대집에 들러 그 가시나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돈이 없어 순대집 주변만 뱅뱅 돌던 나그네가 애처로워 보였을까. 하루는 그 순대집 누나가 쌩긋 웃으며 그 가시나의 주소를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의 첫 펜팔은 그렇게 그 순대집을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밥을 말기 전 뽀글뽀글 끓고 있는 순대국
▲ 순대국 밥을 말기 전 뽀글뽀글 끓고 있는 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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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에는 땡초를 넣어야 얼큰하다
▲ 송송 썬 땡초 순대국에는 땡초를 넣어야 얼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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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독, 나쁜 병, 해독작용에 탁월한 효과 발휘하는 순대국    

계절에 관계없이 먹는 순대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뛰어난 건강식이자 일종의 보약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순대의 재료가 되는 돼지피는 빈혈과 심장쇠약, 두통, 어지럼증에 좋으며, 돼지는 간기능 저하, 간염, 빈혈, 야맹증, 시력 감퇴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인산 김일훈의 의학사상을 정리한 의학서 <본초신약>에는 "해독묘약 순대국 돼지는 천상의를 융하여 나오므로 독성이 강한 부자를 먹여도 죽지 않는 해독의 강자이다. 특히 돼지 창자국(순대국)은 공해독은 물론 사람 몸에 있는 나쁜 병까지도 치료해 주는 신비한 해독성을 지니고 있다"고 씌어져 있다.

죽염으로 유명한 인산가 김윤세의 <신토불이 건강법>에서도 "순대국을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어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먹는 것은, 농촌에서 사용하는 농약을 위시하여 수은독, 납독등 환경공해 증가에 따른 제반 독성의 체내 축적을 막거나 풀어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고 나와 있다.

순대국은 이처럼 영양가는 물론 약효까지 뛰어나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그 음식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뛰어난 음식이다. 특히 온몸의 기운이 빠져 나른할 때나 입맛이 별로 없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순대국집에 들러 순대국 한 그릇 먹어보라. 신생의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순대국은 새우젓으로 간한다
▲ 새우젓 순대국은 새우젓으로 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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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어보라
▲ 순대국 순대국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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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전화번호조차 없는 순대국 전문점

"올해로 9년째 순대와 순대국만 전문으로 조리하고 있지요. 저희는 돼지를 마장동에서 가져와 커다란 가마솥에 직접 삶습니다. 사실, 순대국의 맛은 잘 삶은 부드러운 고기와 12시간 이상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있지요. 국물에는 돼지 사골뼈, 돼지머리뼈, 염통, 혀, 지라, 허파, 간 등과 함께 양파, 파, 무, 생강, 마늘, 들깨가루 등을 넣습니다."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 내려 동원시장 안으로 50m쯤 걸어가다 오른쪽 골목 한 귀퉁이를 찬찬히 살펴보면 저만치 자그마한 간판에 전화번호조차 없는 허름한 순대국집이 하나 있다. 이 집이 바로 동원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맛 좋기로 소문 난 순대국 전문점이다.

14일(월) 저녁 9시. 나그네가 이 집에 들러 "왜 간판에 전화번호가 없느냐?"고 묻자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이 집 주인 홍씨가 "배달을 안 한다"는 짤막한 말로 답한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장사를 하는 시장통 사람들이 직접 와서 주문을 하면 기꺼이 배달을 하지만 먼 곳은 아예 주문을 받지 않으니 전화번호를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향이 충남 합덕이라는 주인 홍씨는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무슨 음식이든 주문을 하지 않고 직접 와서 먹는다"라며 "순대국이든 다른 음식이든 제 맛을 느끼려면 그 식당에서 금방 조리한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어야 한다. 특히 순대국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음식이기 때문에 더더욱 배달할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이 집에는 금방 버무린 아삭아삭한 김치를 낸다
▲ 김치 이 집에는 금방 버무린 아삭아삭한 김치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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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에 밥 한 공기 말아 먹는 그 맛이 곧 예술

다섯 평 남짓한 이 집 한 귀퉁이에 있는 탁자 아래 동그란 의자에 앉아 순대국(4천원) 한 그릇과 막걸리 한 병을 시킨다. 30초쯤 지났을까. 이 집 주인 홍씨의 부인이 맛깔스럽게 보이는 깍두기와 벌겋게 버무린 배추김치, 양파와 마늘, 새우젓갈, 송송 썬 매운 고추, 된장 한 접시를 식탁 위에 주섬주섬 놓는다.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킨 뒤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배추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사각사각 씹히는 배추김치의 맛이 기막히다. 그렇게 두 번째 막걸리 잔을 마악 들이키고 있을 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국이 마치 '밑반찬아! 물럿거라'하는 듯이 식탁 한가운데 버젓이 자리 잡는다.   

숟가락으로 뜨거운 순대국을 한 번 휘이 저은 뒤 새우젓갈과 송송 썬 매운 고추를 넣고 국물을 떠서 입으로 후우 몇 번 분 뒤 후루룩 맛을 본다.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깊은 맛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집 순대국의 특징은 다른 순대국과는 달리 콩나물을 듬뿍 넣어 그 맛이 아주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데 있다.

순대국에 밥 한 공기를 만다. 막걸리 한 사발 더 들이킨 뒤 순대국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고기와 콩나물을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는다. 쫄깃쫄깃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맛과 사각사각 씹히는 콩나물의 향긋한 맛, 달착지근하게 씹히는 밥맛이 어우러져 입 속이 마냥 행복하다. 여기에 김치와 마늘 한 조각까지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예술이 된다.

순대국을 먹는 틈틈이 된장에 콕 찍어 먹는 양파의 맛도 그만이다. 그렇게 반 그릇쯤 게눈  감추듯 비우다 보면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이윽고 쓰린 속이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집 순대국의 진맛은 첫맛이 구수하고 뒷맛이 얼음물을 마시고 난 뒤처럼 입 속이 깔끔해진다는 데 있다.

순대국은 공해독은 물론 사람 몸에 있는 나쁜 병까지도 치료해 주는 신비한 해독성을 지니고 있다
▲ 순대국 순대국은 공해독은 물론 사람 몸에 있는 나쁜 병까지도 치료해 주는 신비한 해독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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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아주 뛰어난 음식을 예술품이라고 한다면 이 집 순대국이야말로 예술품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 순대국을 한 그릇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예술품처럼 거듭나게 되니까. 푹푹 찌는 듯한 복더위에 장대비까지 쏟아지는 요즈음, 입맛을 금세 돌게 하는 순대국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나면 오늘의 건강은 '맑음'이다.


태그:#순대국, #동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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