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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입맛 잡는 밥도둑
▲ 깻잎조림 여름철 입맛 잡는 밥도둑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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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바짝바짝 타면서 입안이 몹시 깔깔하다. 며칠째 촛불집회에 참석해 날밤을 새우며 물을 너무 많이 마시다보니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어디 가까운 식당에라도 들어가 무언가 먹긴 먹어야 되겠는데 언뜻 떠오르는 마땅한 음식이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굶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혼잣말을 지껄이며 무교동 골목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는 식당가를 기웃거리며 식당 들머리에 붙은 차림표를 훑어본다. 하지만 아무리 훑어보아도 입맛이 당기는 음식은 눈에 쉬이 띠지 않는다. 간혹 저 음식을 먹으면 속이 좀 풀릴까 싶어 다가서면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 예전에 비해 값이 턱없이 올랐다는 그 말이다. 

갑자기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기기 시작한다. '라면 값이 100원만 올라도 서민들은 힘들어 한다'며, 생필품값부터 가장 먼저 잡겠다던 이명박 정부. 하지만 생필품값은 이명박 정부의 '밴댕이 속 같은 공약'을 비웃으며, 대통령 높은 줄 모르고 마구 뛰어오르고 있다. 이른 바 유가 폭등과 함께 그 무서운 '장바구니 보릿고개'가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해법이 나오지 않는 '장바구니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힘겨운 오뉴월, 눈에 자주 밟히는 음식이 '깻잎조림'이다. 값싸고 만들기 쉬운 깻잎조림은 특히 향긋하면서도 구수한 감칠맛이 깊어, 이명박 시대 '장바구니 보릿고개'를 넘기는 지혜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깻잎은 식초 두어 방울 떨어뜨려 10여분 정도 물에 담가두는 것이 좋다
▲ 깻잎 깻잎은 식초 두어 방울 떨어뜨려 10여분 정도 물에 담가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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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조림 양념장은 멸치 한 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다진 파, 진간장,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 양념장 깻잎조림 양념장은 멸치 한 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다진 파, 진간장, 물엿 등을 넣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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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깻잎조림이나 만들까?

1960년대 중반. 나그네가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때였던가. 그해 오뉴월 보릿고개, 우리 마을에서는 '한 집 건너 굶는다' 할 정도로 하루 끼니 한 끼조차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집이 수두룩했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에서 굶는 아이들을 위해 운동장 느티나무 그늘 아래 커다란 무쇠 솥단지를 걸어놓고 강냉이죽을 끓여 나눠 주었겠는가. 

사실, 그때 나그네의 집도 먹을거리 사정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끼니를 거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상 밥상 위에는 쌀알 서너 개 섞인 시커먼 보리밥에 김치, 상추, 풋고추, 된장 정도가 모두였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 그 누구도 밥타령이나 반찬타령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다.

"그나마 너거들은 부모 잘 만나 이 험한 보릿고개에도 보리밥이나마 꼬박꼬박 챙겨먹고 다니니 복 받고 사는 줄이나 알아라."    
"……"
"나도 안다. 한창 크는 나이에 묵고(먹고) 싶은 것이 울매나(얼마나) 많것노. 오늘 저녁에는 깻잎조림이나 만들어 보까? 지금 앞산가새 밭에 들깻잎이 한창 아이가."
"깻잎조림예에? 깻잎은 쌈 싸 묵는 기 아입니꺼?"
"입맛 없고 돈 없을 때는 깻잎조림 그기 최곤기라. 오죽하모 너거 할배가 깻잎조림을 보고 밥도둑이라 했것나."

어머니께서 깻잎조림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앞산가새(앞산 비탈) 밭에서 갓 따온 깻잎을 우물물에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담았다. 그리고 소쿠리에 담긴 깻잎의 물기가 빠지는 동안 밥그릇에 잔멸치 한 줌, 집 간장, 고춧가루, 물엿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 뒤 깻잎 사이사이에 조금씩 끼얹은 뒤 냄비에 폭 삶아내면 그만이었다. 

깻잎조림 양념장을 만들 때 입맛에 따라 멸치액젓이나 매실액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도 깊은 맛이 난다
▲ 양념장 깻잎조림 양념장을 만들 때 입맛에 따라 멸치액젓이나 매실액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도 깊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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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깻잎을 차곡차곡 쌓으며 양념장을 끼얹는다
▲ 깻잎조림 냄비에 깻잎을 차곡차곡 쌓으며 양념장을 끼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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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명약 '깻잎', 흡연 스트레스 물럿거라

상추와 함께 대표적인 쌈 채소 깻잎. 잔멸치, 고춧가루 등과 함께 냄비에 폭 삶아내면 더욱 맛이 좋은 깻잎은 칼륨, 칼슘, 철분 등의 무기질이 많이 든 대표적인 알칼리성 채소이다. 특히 깻잎은 생선회를 먹을 때 함께 싸서 먹으면 식중독까지 예방할 수 있다. 횟집에 가서 생선회를 시키면 상추와 함께 빠지지 않고 깻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로부터 '식탁 위의 명약'이라 불리는 깻잎. 깻잎에는 특히 엽록소와 비타민C가 듬뿍 들어 있어 건강에 아주 좋다. 깻잎에 든 엽록소는 상처를 치료하고 세포를 부활시키는 것은 물론 알레르기를 없애주고, 혈액을 맑게 한다. 그리고 깻잎에 든 비타민 C는 흡연자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그만이다.

11일(수) 오후 1시. 무교동 골목 식당가를 기웃거리다 쫄쫄 굶고 집으로 돌아온 나그네는 곧바로 면목동 재래시장인 동원시장에 들렀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이맘 때 만들어 주시던 그 향긋하고도 짭쪼롬한 감칠맛이 끝내주던 깻잎조림. 그 깻잎조림이 눈앞에 자꾸만 가물거리며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이 깻잎 한 단에 얼마씩 해요?"
"1단은 천 원이고, 2천원어치 사면 3단씩 줘요. 2천원어치 드릴까? 오늘 아침에 받아 온 거라 아주 싱싱하고 향긋해요."
"그럼 2천원어치 주세요."

양념장을 잘 끼얹은 깻잎
▲ 깻잎조림 양념장을 잘 끼얹은 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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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의 두껑을 닫고 센불에 끓인다
▲ 깻잎조림 냄비의 두껑을 닫고 센불에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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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반찬이 따로 없으리라

동원시장에서 깻잎 2천원어치를 사든 나그네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깻잎이 물에 푹 잠기도록 담근 뒤 식초 두어 방울을 떨어뜨렸다. 깻잎을 담근 물에 식초를 떨어뜨려 10여 분 정도 두는 까닭은 행여나 묻어 있을지도 모를 농약 성분이나 다른 잡 성분을 몽땅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배에서 다시 한번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나그네는 깻잎을 건져내 흐르는 물에 한 장 한 장 깨끗이 씻어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았다. 그리고 깻잎에 묻어 있는 물기가 빠지는 동안 어릴 때 어머니께서 만들던 그 양념장을 애써 떠올려가며 나그네만의 깻잎조림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그네가 만드는 깻잎조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빈 그릇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다진 파, 잔멸치, 진간장, 물엿 혹은 설탕, 통깨를 넣고 수저로 한번 휘저어 양념장을 만든다. 그리고 냄비에 깻잎을 차곡차곡 담으며 사이 사이에 양념장을 조금씩 끼얹어 폭 삶아내면 끝.

이때 매실액이나 멸치액젓 몇 방울을 떨어뜨려도 깻잎조림 특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힌트. 깻잎조림은 한번 만들 때 많이 만들어야 맛이 좋으며, 큰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조금씩 덜어 먹는 것이 경제적이다.

냄비에서 김이 나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낮춘다
▲ 깻잎조림 냄비에서 김이 나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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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의 색깔이 진녹색으로 변하면 불을 끈다
▲ 깻잎조림 깻잎의 색깔이 진녹색으로 변하면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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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그네가 깻잎조림을 다 만든 시각은 오후 2시30분. 아점(아침과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그래서일까. 향긋하면서도 구수한 감칠맛이 맴도는 깻잎조림을 밥 위에 척척 걸쳐 입에 넣자마자 제대로 씹을 틈새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뚝딱 비워지면서 며칠 째 몸에 쌓인 피로도 뚝딱 비워지는 듯했다.

단돈 2천원으로 몸과 마음이 한없이 행복해지는 식탁. 특히 요즈음처럼 무더운 날, 입맛이 없을 때 밥을 물에 말아 향긋하면서도 짭쪼롬한 깻잎조림과 함께 먹어보라.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백 가지 반찬이 따로 없으리라.


태그:#깻잎조림,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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