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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꿈은 '고고학자'였다. 내 꿈이 유별난 게 아니었다. 70년대 태생으로, 일정 정도의 문화적 자양분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던 아이들 상당수가 아마 그랬을 거다.

지금 아이들이 직업 안정성이 높은 '교사'나 '공무원'을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에 비해 그래도 어린아이답고 모험심 넘치는, 원대한 꿈 아닌가. 꿈의 현실성, 실현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고고학자를 장래희망으로 삼았던 것에는 여러가지 배경이 있었다. <소년중앙> 등 어린이 잡지에서 볼 수 있던, 믿거나 말거나 식의 과거의 미스터리가 그 중 하나였다. 실제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슐리만의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그래, 슐리만이 일리아드를 읽고 큰 돈을 모은 뒤 상상 속의 도시를 발견할 것처럼 나도 내 꿈을 결코 굽히지 않을 거야. 언젠가는 고고학자가 되어서 폐허에 파묻힌 유적을 이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거야"하고 꿈을 다졌다.

하지만 아무리 <소년중앙>과 슐리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디아나 존스>가 없었다면 고고학자란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고고학자란 꿈은 인디아나 존스로부터 발생했으며 인디아나 존스를 통해 키워나간 것이었으니까.

두근두근 가슴 떨리게 하던 <인디아나 존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방 소도시에 살던 내가 모처럼 서울에 놀러와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을 보았던 일이. 서울 강남에 살던 고모는 우리 형제를 압구정동 씨네하우스로 데려갔는데 당시 1989년의 씨네하우스는 우리 나라 최초의 복합상영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 때였다.

새로 지은 건물이 주는 번듯함과 바닥에 깔린 빨간 양탄자라니. 우리 동네의 칙칙하고 더러운 극장과 삐걱이는 의자만을 보아왔던 나는 우선 고급스런 영화관의 외양에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라. 기껏해야 <똘이장군>같은 반공 영화, <로보트 태권 브이>와 <우뢰매 > 시리즈가 극장에서 본 영화의 전부인 아이에게 <인디아나 존스>라니. 정교한 이야기 구성, 긴장감을 돌게 하는 액션, 화려한 화면에 멋진 배우까지.

아마 내가 좀 더 컸다면 해리슨 포드의 열혈 팬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컸다면 나도 저런 멋진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겠지. 어린 나이에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그것을 흠모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도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꿈꾸는 것이 전부였을 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1편보다 나은 후속편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시리즈의 정설을 파괴한 몇 안되는 작품인 만큼 '최후의 성전'은 재미있는 영화였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워낙에 액션, 역사, 종교, 철학을 적절하게 버무린 '팩션'인 만큼 재미뿐 아니라 어린 나의 눈에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수의 성배를 찾아가는 마지막 관문은 예수가 물 위를 건넜듯 절벽 끝 낭떠러지에서 길이 생길 거라고 믿는 '믿음'의 과정이었다. 게다가 예수의 성배가 화려하게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잔이 아닌 투박하게 나무로 만들어진 잔이었다는 설정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내게 얼마나 큰 종교적 깨달음으로 여겨졌는지.

이런 이유로 영화의 후속편은 되도록 보지 않는 나지만 거의 20년 만에 개봉되는 시리즈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비록 고고학자와는 먼 삶을 살고 있고, 더 이상 고고학자를 꿈꾸지 않으며 영원히 고고학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고고학자라는 멋진 꿈을 꾸게 해준 영화와 다시 만나고 싶었다.

20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을까

하지만 20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었던 탓일까. 해리슨 포드는 참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게 할 뿐, 그가 없었으면 <인디아나 존스>의 인기가 있었을까 의문하게 할 뿐, 그의 능글능글한 미소, 비뚜름하게 눌러 쓴 사파리 모자와 휘두르는 채찍에 더이상 가슴 떨리지 않았다.

마야 문명과 외계인을 연결시키는 스필버그의 착상은 '이게 ET 후속편이냐'고 비아냥 거려질 정도로 황당하게 느껴졌다. 영화의 반동 세력이 러시아고 해리슨 포드가 '공산주의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 매카시즘에 대한 별 비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스필버그의 우익 성향이야 원래 알던 바지만 내가 사랑하는 <인디아나 존스>에서 그걸 확인한다는 게 불편했다.

내가 고고학자를 더이상 꿈꾸지 않듯 20년이란 세월을 거쳐 다시 만난 <인디아나 존스>도 예전의 <인디아나 존스>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기에 더 좋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어쩔 수 없이 나는 20년 전의 나일 수는 없는 걸, 고고학자를 꿈꾸며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던 어린 소녀는 오늘도 팍팍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나가는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한 걸.

변한 건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20년이란 세월의 변화도 무색하게 예전 모습을 꿋꿋이 지켜내고 있었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자신을 겉모습을 화려하고 세련되게 포장하지도 않고 그저 예전의 여유롭고 소박한 모습 그대로. 그 소박함을 촌스럽다 느끼고 더 이상 열광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내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EBS에서 방영하는 <빨강머리 앤>은 다시 보아도 재밌지만 <인디아나 존스>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순수와 오락, 명작과 대중예술의 차이가 바로 이 지점에 있기 때문일까. 

덧붙이는 글 요즘 시국에 일개 영화평을 올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예전에 쓴 글을 올리지 못하고 계속 묵혀두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답답한 현실이 빠른 시일내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걱정이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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