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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궁금했다. 꽤 오랜만에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왔는지, 즐겨듣는 음악과 감동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가 궁금한 이유가 뭘지 나는 그러한 나 자신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그녀가 평범한 동네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인 내 주변에서 흔치 않은 싱글이거나 긴 생머리에 매력적인 용모와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 나이가 그녀보다 꽤 어린 까닭에 나는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 뒤풀이에서 그저 모르는 척 하고, 예의없는 척 하고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그녀에 대해 묻곤 했다. 그녀는 꼬치꼬치 캐묻는 내 질문에 불쾌해하는 기색없이 대답은 해 주었지만 묻는 것에 대한 답변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녀가 도회적인 분위기에 비해 꽤 소탈하고 소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와인과 샐러드만 먹을 것 같아 보였던 그녀는 길거리 음식도 꽤 즐기는 편이었으며 맛난 닭도리탕 앞에서 환호했고 남은 음식을 싸갈 줄도 알았다. 그런 그녀가 재밌었고 호감이 갔다.

 

오랜만에 상대방의 '우주'를 궁금해 할 만한 타인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갑자기 자기 책이 나왔다며 건넨 책이 바로 이 책,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김영욱 지음, 교보문고)였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꽤 오랜기간 같은 제목의 칼럼을 인터넷 서점에 연재했으며 그것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그밖에도 여러 지면과 인터넷에 그림책에 관한 칼럼을 써 왔다고 한다. 그것은 그녀의 첫 책이었다. 갑자기 책을 받아들게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그녀에 대해 궁금해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아주 오랜만에 상대방의 '우주'를 궁금해 할 만한, 지적이며 섬세한 타인을 만나서였기 때문이었다.(오랜만에 그런 타인을 만났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매우 슬프고 불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그림책과 관련한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그림책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며 문학 방면 뿐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사진,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방면에 박학다식하다는 건 대충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아마도 그러한 자신의 면모를 살려, 요즘 각광받는 아동문학 장르로서 뿐 아니라 어른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그림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겠거니 하는 짐작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받아들자마자 반가운 한편 마음 한 구석으로는 걱정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독자는 그림책의 주 독자라 할 수 있는 어린이가 아니고 몇몇 어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림책을 다시 읽는 어른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과연 그 수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그림책을 음악과 연결하는 이 작업을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조금 이른 것 아닐까. 뛰어난 그녀가 너무 앞서나간 탓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지는 않을까.

 

나는 아직 이런 걱정이 사실인지, 기우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의 글쓰기 방식, 문화예술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 열린 감성에 열광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림책을 읽으며 음악을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의 각 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필과 같은 그녀의 단상으로 글을 시작한 뒤 그와 관련한 그림책과 음악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림책과 음악을 한 주제로 엮어내는 그녀의 의식과 연상의 흐름은 따라가기 수월하고, 쉽게 수긍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림책과 음악의 연결고리 내지 연상작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밖에 없으므로, 선뜻 독자가 연결시키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비오는 날>과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수록된 <전주곡집>, 그리고 찰스 키핑의 <길거리 가수 새미>와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쉽게 작대기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가 그림책을 읽으며 떠오른 음악적 영상 모두를, 내가 그녀가 아닌 이상, 감정적으로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물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녀가 제시한 열 일곱 개의 그림책과 음악의 연결고리를 그대로 따라오라는 것도 아니고, 따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독자가 이 책의 열 일곱 개 연결고리 전부를 그녀처럼 연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개개인의 인식 과정이 같지 않은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림책을 읽으며 음악을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한 예로 먼저 그 길을 걸어간 그녀의 흔적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그 흔적을 그 발자국 그대로 잘 따라가 볼 수 있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녀가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지식들을 독자에게 알려주려는 열정을 조금만 접고 그녀의 목소리만을 조금만 더 간명하게 들려준다면, 그녀에게 어떤 그림책과 어떤 음악의 연결고리가 어떤 연유에서 발생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서 들려준다면, 그 발자국은 좀더 분명해질 것 같다. 독자들이 좀더 쉽게 그 길을 따라가보며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그림책과 음악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책 곳곳에 숨어있는 그녀의 삶의 흔적과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좀더 그녀에 대해 알 것도 같다.

 

그러자니 언젠가 한 번쯤은 비록 보잘 것 없긴 하지만 나의 우주에 대해서도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다. 10년 전부터 그림책을 사 모은 어른이 여기에 또 있다고, 언젠가 한 번은 그녀의 방에 들러 그녀가 사 모았다는 수천권의 그림책들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도 말이다.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 - 여행, 그림, 음악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열일곱 편의 선물 같은 에세이

김영욱 지음, 김영주 감수, 교보문고(단행본)(2007)


태그:#김영욱, #그림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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