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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남도지방 풀밭에서 흔히 자라는 등심붓꽃
▲ 등심붓꽃 제주도와 남도지방 풀밭에서 흔히 자라는 등심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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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도나 제주도 들판이나 길가 여기저기서 흔하게 피어나는 작은 풀꽃으로 '등심붓꽃'이라 불립니다. 아마 붓꽃 중에서는 가장 작은 꽃이 아닐까 싶은데 붓꽃의 이름값을 하느라고 피어나기 전의 모습은 영락없이 작은 붓을 닮았지요. 작은 글자나 섬세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작은 붓을 세필이라고 하는데 내가 입술을 앙다물고 있을 때의 크기가 거의 그 정도 크기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전까지 나는 내 이름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뜻이야 다른지 모르겠지만 '등심'이 붙어서 간혹 '등심살'을 생각하면서 군침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죠. 그런데 요즘 들어 조금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직은 아침아라 참이 덜 깬 등심붓꽃
▲ 등심붓꽃 아직은 아침아라 참이 덜 깬 등심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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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 '미친소 때문인데, 한미쇠고기협상에서 한국의 협상단이 미국측 협상대표들이 너무 좋아 함박웃음을 지을 만큼 큰 선물을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냥 알아서 30개월 넘은 소는 물론이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골뼈(척추)가 포함된 쇠고기라도 30개월 미만이면 안전하다며 수입하기로 협상을 했다더군요.

그걸 반대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겠다고 국민세금으로 광고대행도 해주고, 기어이 29일(목) 오후 4시에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귀 딱 막고 고시를 강행했더군요. '우이독경', 거참 희한하게 그 말도 소와 관련이 있네요.

아침이슬 초자도 버거운 듯 작은 꽃
▲ 등심붓꽃 아침이슬 초자도 버거운 듯 작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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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심'이란 소의 등골뼈에 붙은 고기니 바로 요 '등골뼈(척추)가 포함된 쇠고기'가 영락없이 나 '등심'을 가리키는 말이네요. 졸지에 혐오대상이 되어버렸으니 거참, 이름을 바꿀 수도 없고 나는 억울하죠.

나를 보며 등심살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던 분들이 이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게 생겼네요.

나는 이 땅에 처음 피었을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토양에 따라 꽃 색깔이 약간 달라진 것이죠. 꽃 색깔은 달라도 내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요. 맑은 햇살과 이슬과 바람, 뭐 이런 것들이 내 주식이다 보니 늘 같은 모습으로 피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산성비 때문에 간혹 곤혹스럽긴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에 비하면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에요.

완전히 보랏빛 등심붓꽃도 있고, 약간의 변이가 있는 등심붓꽃도 있다.
▲ 등심붓꽃 완전히 보랏빛 등심붓꽃도 있고, 약간의 변이가 있는 등심붓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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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람들은 초식동물인 소한테 동물사료를 먹였다면서요? 동물사료를 먹이는 것도 모자라서 도살된 소도 갈아서 먹였다고 하니 잔인해도 너무 잔인한 짓을 한 것이죠. 게다가 항생제는 또 얼마나 많이 먹였을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여야 그들도 건강할 터인데 이런 것을 보면 흔하디 흔한 꽃이라 사람들의 관심밖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늘 감사하죠.

식물 친구들 중에서도 사람들 몸에 좋다고 하면 죄다 뽑혀나가고, 좀 특별한 것이다 싶으면 살아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니 그냥 지천에 피어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해야겠지요.

꽃이 지고나면 동글동글 씨앗이 맺힌다.
▲ 등심붓꽃 꽃이 지고나면 동글동글 씨앗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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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비록 시골에 살아도 세상소식을 다 듣습니다. 내가 피어난 풀밭에서 풀을 뜯는 소들의 한숨소리도 듣고, 미친소와 동급으로 분류가 되어 분개하는 소리도 듣고, 개값이나 소값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를 하며 사료값 축내는 것 같아 주인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듣거든요. 소의 인생도 참, 심지어는 꼬리까지 아낌없이 주는데도 여전히 천덕꾸러기요, 미국산에 밀려버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땅에서 자라는 소라고 행복하겠습니까?

나 비록 들꽃이요, 한철 내내 피어있지도 못하는 짧은 인생을 살지만 한마디 해야겠소.
야생의 꽃은 자기의 때를 잘 분별해서 피고집니다. 간혹 바보꽃들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로 인해 보는 이들이 즐겁죠. 어떤 때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지요. 천기를 분별한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웃어야 할 때, 울어야 할 때가 있고 들어가야 할 때와 나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실물 크기와 거의 비슷하다.
▲ 등심붓꽃 실물 크기와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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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 쇠고기협상에 대한 고시를 하는 것을 보니 영 때를 분별하지 못하더군요. 불을 꺼야하는데 기름을 붓는 격이요, 꺼져가는 불에 부채질을 해서 불씨를 살려놓는 꼴이더군요.

가만 보면 슬슬 국민들을 약올리는 것 같아요. 설마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겠죠? 수돗물 민영화나 유전자조작식품(GMO) 옥수수, 경부운하 같은 것들을 암암리에 추진하느라 국민들의 관심을 광우병 쇠고기로 집중시키는 그런 고도의 정치전략을 편 것은 아니겠죠? 에이, 기름값에 생필품값 인상 등 줄줄이 인상되는 물가에 서민들 주머니가 얇아져 아우성인데 설마….

나를 만난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나에 대한 꽃말도 지어주고, 꽃 이야기도 지어주고, 나에 대한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내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만 엄하게 '미친소' 떠올리게 하지말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등심붓꽃, #광우병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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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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