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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애기나리를 보는 순간 "야! 깨순이다!" 소리를 친다. 도감에서 보고 그의 존재를 알았지만 실물과는 첫 대면이다. 그 첫 대면의 기쁨은 기다려 본 사람만이 안다. 사실, 올해도 깨순이를 만나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해야만 하는 줄 알고 가는 봄을 아쉬워했다.

 

 
해발 1450m의 높은 산, 그 곳은 겨울이 길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역시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그 곳 정상에는 이른 봄에 피어난 홀아비바람꽃과 피나물꽃까지 남아있었다.
 
산 정상에서 서너걸음 풀숲을 따라 걷는 길, 기온차가 심하다는 것은 단풍든 이질풀의 이파리를 보니 알 것만 같다. 늦여름과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이질풀이 싹을 틔웠다가 놀랐을 터이다.
 
 
모든 꽃들이 그렇지만 단 하나도 같은 꽃이 없었다. 허긴, 그 많은 깨를 조물주라도 어찌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는가!
 
희귀특산종인 금강애기나리 깨순이, 그도 그 곳에서는 흔하디 흔한 꽃 중 하나였다. 한 번 보이기 시작하니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깨순이였는데 이제 그 중에서도 예쁜 모델을 찾아 인사하는 깨순이를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사람이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소유욕과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관음증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보다. 자기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과 보는 것 모두가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갖지 못해서, 보지 못하는 것만 생각하다가 곁에 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속세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훌훌 털고 떠났고, 산행을 시작하면서 부터 아예 세상과 소통을 끊기 위해 휴대폰까지 꺼버렸다. 수묵화를 그린 듯 첩첩히 쌓여 희미해지는 산등성이가 아름답다. 저 곳 어딘가에도 그들이 있을 것이다. 저기를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여기를 사랑하자. 저기에 가면 또 이 곳이 그리울 것을.
 
 
산 정상에서 맞이한 밤은 쌀쌀했다. 새소리에 세속에 찌든 귀를 씻고, 쏟아질듯 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눈을 씻는다. 폐부 깊은 곳까지 맑은 공기를 넣어주기 위해 깊은 숨을 쉰다.
 
긴 밤이 지나자 저 동해 바다에서 태양이 붉게 타오른다.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빛이 바다의 일출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른 아침, 그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텐트 안에서 점퍼와 침낭으로 중무장을 하고 잠을 자면서도 추워서 잠을 설쳤는데 작은 들풀들은 맨 몸으로 온 하늘을 맞이하고도 활짝 웃으며 피어난다. 그들을 바라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려주는 이유를 본다.
 
꽃이름에 '금강'자가 들어가면 일단은 특산종이라고 보면된다. 그리고 '금강'이 들어가면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민족의 영산 '금강산'과도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상상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끼리도 이렇게 자기 됨을 지키고 있는데 한 민족인 우리들은 분단의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이 변질되었는지 모른다. 하긴, 자발적으로 역색이나 뭐니 극복하자고 하면서도 이렇게 나누기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도 싶다.
 
 
자연, 그들의 삶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존재하는 한, 그냥 자기의 모습대로 피어난다. 그럼으로 인해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1박 2일, 높고 깊은 산에서 세상사 다 잊고 깨순이와 연애를 했다.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이런 일들도 사치인 듯하고 죄를 짓는 것 같다. 간혹 이런 외출정도는 편안하게 다녀와도 되는 시절이 좋을 시절일 터이다.
 
깨순이, 금강애기나리는 오늘도 여전히 자기의 때를 방글방글 웃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바람불고 추운 높고 깊은 산 어느 곳에서 눈길 마주치는 사람없어도 그냥 그렇게 피어날 것이다. 그러다 가야할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고, 내년 이맘때 다시 방긋 웃으며 피어날 것이다. 들꽃같은 삶을 살고 싶다.

태그:#금강애기나리, #깨순이, #특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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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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