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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에서 만난 풀꽃
▲ 광대풀꽃 제주 서귀포시에서 만난 풀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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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나에겐 그 단어만으로도 설레는 이름입니다. 제주를 떠나온 뒤에 몇 차례 제주를 갔지만 이전처럼 들판을 거닐며, 바다를 거닐며 그들과 조우할 시간을 갖질 못했고, 날씨도 바쳐주질 않았더랍니다. 이번에도 출장차 갔기에 제주의 들꽃과는 조우를 할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른 아침, 자투리 시간을 아껴서라도 그들을 만나고 싶어 숙소에서 가까운 서귀포바다를 향해 걸었습니다. 어떤 꽃들이 나를 맞이할까, 어떤 꽃들을 만날까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제주의 특별한 꽃을 만나려면 한라산이나 중산간 혹은 사구둑이 발달한 곳이나 곶자왈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 노랑벌이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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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지 않고 걷는 길, 아, 나를 반겨주는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특별한 귀족같은 꽃들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꽃들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반겨준 꽃은 광대풀꽃, 그리고 사진에 담진 못했지만 방가지똥, 괭이밥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간간히 제주도 혹은 남도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꽃들, 그러나 제주에서는 흔하디 흔한 꽃들이 아침이슬을 송글송글 맺은 채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환한 웃음으로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꽃 중 하나입니다.
▲ 미나리아재비 환한 웃음으로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꽃 중 하나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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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아주 특별한 것, 특별한 사람에 대한 관심만 갖다가 정작 흔하디 흔해서 너무도 고마운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보통의 것, 흔한 것, 만나기 어렵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 사실 내 삶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것이죠.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도 멀리 출장길에 떨어져 있으니 그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가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제주도는 육지보다 조금 이르게 꽃이 피어납니다.
▲ 며느리밑씻개 제주도는 육지보다 조금 이르게 꽃이 피어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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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다가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얼마나 그것이 소중했던 것인지를 아는 인간의 우매함, 며느리를 타박하던 시어미가 며느리가 친정에 갔을 때에야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곁에 있을 때 소중한 것의 존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지혜로운 척 했을 뿐,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에 있을 때 흔하게 만나던 꽃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했고, 떠나고나서야 그들을 절절하게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찔레꽃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제주에서는 오름이나 바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 용가시나무 찔레꽃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제주에서는 오름이나 바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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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시나무, 찔레꽃과 닮은 나무입니다. 바닷가나 오름에서 바짝 몸을 땅이나 바위에 붙이고 피어납니다. 이렇게 제주에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을 보면서도 여전히 욕심은 좀 특별한 제주의 꽃,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꽃을 만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을 만나러갈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람따라 피어난 꽃입니다.
▲ 갯무 바람따라 피어난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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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소중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다 제주돌담에 기대에 있는 비파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잘 익은 노란 비파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이런 행운이 어디에 있을까?

제주도에 있을 때에도 먹어보진 못했던 비파, 그 비파를 잠시 출장길에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담장 너머로 손을 뻗어 잘 익은 것 하나를 따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습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비파의 맛입니다.

겨울에 피어나는 비파꽃, 언젠가는 꼭 먹어보고 싶었던 비파열매를 이렇게 먹게 되니 로또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이럴까 싶네요.

낮에도 활짝 피어있는 애기달맞이꽃이랍니다.
▲ 애기달맞이 낮에도 활짝 피어있는 애기달맞이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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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달맞이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아마도 달맞이꽃이 밤새 사랑을 나눈 결과 피어난 꽃이 애기달맞이꽃이며, 애기들은 밤에는 무서워서 낮에 활짝 피어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꾸며냈던 지난 날이 생각납니다.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었구나 웃음도 나구요.

요즘 제주에는 지천이지요.
▲ 등심붓꽃 요즘 제주에는 지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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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라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등심붓꽃도 제 철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저기 아무데나 피어있는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등심붓꽃, 일찍 일어난 덕분에 정말 붓꽃이 맞구나 하는 증거를 보았습니다. 세필을 닮은 등심붓꽃, 그것은 다음 기회에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중섭생가의 담에 피어난 백화등
▲ 백화등 이중섭생가의 담에 피어난 백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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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꽃이라도 어디에 피어있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이중섭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알려진 집의 담장에 피어난 백화등은 바람개비를 닮았습니다. 그 날 아침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중섭이 살던 집의 번짓수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엄한 집이 이중섭이 거처하던 곳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중섭이 거처하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제주에선 이것도 흔한 것 중 하나죠.
▲ 꽁짜개덩굴과 일엽초 제주에선 이것도 흔한 것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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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짜개덩굴과 일엽초, 제주에서는 조금만 습한 곳이면 얼마나 흔한 것들인지 모릅니다. 아침 나절, 처너천히 걸어가며 만난 제주의 들꽃들, 흔하디 흔한 꽃들, 심지어는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들까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왜냐구요?

흔하디 흔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던 나의 마음을 다시 바로 잡아주었으니까요. 이렇게 들꽃은 나의 마음의 찌끼를 비우게 하는 해우소요, 세심지요, 나의 명상소재입니다. 그래서 달팽이 걸음으로 들꽃을 만나러 가는 걸음걸이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도, #들꽃, #벌노랑이, #용가시나무, #갯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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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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