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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그동안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 포함돼 있던 극돌기와 천추의 정중천골능선, 3차신경절 등이 제외됐다.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규정하고 있는 SRM 범위에서 훨씬 후퇴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이들 부위는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꼬리꼼탕·수육·티본스테이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국 미국에서는 식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쇠고기의 특정 부위가 우리 국민의 식탁 위에 올라온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2004년 고시에서 한국인이 즐겨먹는 티본 스테이크와 밀접한 횡돌기·극돌기를 모두 SRM에 포함시킨 바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는 이들 부위가 모두 SRM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처를 잘못 번역해 협상의제에서 누락시킨 데 이어,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한 부위들을 SRM에서 제외한 것으로 확인돼 '졸속협상' '부실협상' '봐주기 협상'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 FDA 광우병 위험물질 기준보다 못한 한미 쇠고기 의정서

 

SRM(Specified Risk Material)은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는 부위를 가리킨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는 ▲편도 ▲소장 끝부분 ▲등뼈 ▲등뼈 속 신경 ▲머리뼈 ▲뇌 ▲안구 등을 SRM 부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에서 규정하고 있는 SRM 부위는 해당 국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SRM에 해당되는 소의 부위를 사람이 먹는 경우 '인간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물론 미국에서도 SRM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의 식품안전국은 이미 지난 2004년 '30개월 이상 된 소의 두개골·뇌·3차신경절·눈·등골뼈·척수·등근신경절, 모든 소의 편도·회장 원위부를 인간식품 공급망에서 격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강화된 광우병 긴급수입제한조치를 공포한 바 있다.

 

또 2008년 4월 현재 미국 FDA가 규정하고 있는 SRM에는 모든 월령의 소에 있는 편도와 회장 원위부(회장 끝부분, 회장은 소장의 일부)가 포함돼 있다. 두 부위는 지난 4월 체결된 한미 쇠고기 의정서에서도 SRM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SRM 부위인 척추 항목에 가면 미국 FDA 규정과 한미 쇠고기 의정서는 확연하게 다르다. 먼저 미국 FDA 규정을 보면, 척추 부위 중 꼬리뼈, 흉부·요추부의 횡돌기, 천추의 양날개 등이 SRM 부위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한미 쇠고기 의정서에는 경추의 횡돌기와 극돌기, 천추의 정중천골능선(허리와 꼬리뼈 사이) 등이 SRM 부위에서 추가로 빠져있다. 횡돌기와 극돌기는 티본스테이크, 천추의 정중천골능선은 꼬리곰탕과 관련돼 있는 부위들이다.

 

특히 미 FDA는 천추의 정중천골능선에는 SRM인 등배신경절이 분포돼 있다는 이유로 SRM 부위로 규정했지만 한미 쇠고기 의정서에서는 천추의 정중앙천골능선이 SRM 부위에서 버젓이 제외돼 있기도 하다.

 

또한 미 FDA는 뇌·안구·척수·등배신경절 등과 함께 머리뼈·3차신경절을 SRM 부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 쇠고기 의정서에서는 3차신경절을 SRM 부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3차신경절은 수육의 재료가 되는 소의 볼살과 관련이 있는 부위다.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슬그머니 SRM에서 빠진 부위들이 아무런 제한조치 없이 국내로 수입돼 우리의 식탁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FDA 규정 수준으로 SRM 부위 협상을 타결했더라면 들어올 수 없었던 부위들이 졸속협상을 틈타 수입이 가능해진 셈이다. 

 

"SRM에서 제외된 부위에 붙어 있는 안심·등심도 안전하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척추의 대부분은 위험 물질에서 제외되고 특히 천추의 경우는 거의 전체가 다 SRM에서 빠져 버렸다"며 "소위 척추의 몸통이라고 말하는 부분만 위험부위에 포함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난 4월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가 그대로 시행되면 한국이 즐겨먹는 티본 스테이크와 안심·등심 등도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먹는 티본 스테이크란 것이 결국은 횡돌기와 극돌기에 붙은 살이다. 이것을 수출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당연히 이를 SRM에서 제외시켜야 했다. 이번 쇠고기 협상 결과에 따라 티본 스테이크가 우리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횡돌기를 기준으로 그 앞쪽과 뒤에 붙은 고기가 안심과 등심이다. 결국 안심·등심을 먹는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 SRM이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SRM에서 빠진 부위에 딱 달라붙은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식육업자들이 등심과 안심을 척추에서 떼어내는 번거로움을 없애준 셈이다."

 

이어 그는 "티본 스테이크에는 척수강이 자리잡고 있다"며 "(한미 간 쇠고기 의정서에서) 횡돌기와 극돌기는 SRM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척수가 지나가는 척수강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척수강이 SRM에서 빠져 있다. 그런데 SRM 부위인 척수가 지나가는 게 척수강인데 안전할 수 있겠는가? 척수는 위험한데 척수가 지나는 통로이자 껍데기는 안전하다고 하는 논리는 독약은 들어오면 안 되는데 독약을 담았던 캡슐은 들어와도 된다는 논리와 같다."

 

그는 "뭐 하나를 SRM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부에게는 그게 없다"며 "농림부가 간과한 것인지 미국이 어떤 목적을 갖고 뺀 것인지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네코 키요토시 교수(도쿄대 의학대학)도 지난 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미국에 있는 티본 스테이크라는 부위는 등뼈에 달려 있는 갈비살을 말한다. 이 등뼈와 갈비 사이에는 신경이 걸리게 되는데 이 신경부위는 프리온이 축적되기 쉬운 부분이고, 등뼈와 연결돼 있는 갈비 역시 SRM 리스트에 들어 있기 때문에 (티본 스테이크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홍하일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수의사연대) 위원장은 "신경이 척추에서 나와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이 신경들이 횡돌기 위아래로 배근신경절과 복근신경절을 이룬다"며 "이번에 SRM 부위에서 제외된 3차신경절은 (소의) 볼때기 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근신경절을 제거하는 것은 아주 정교한 기계적 방법을 요구한다"며 "이번 쇠고기 협상은 이 공정을 거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 미국내 SRM 규정보다 못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 위원장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찬성 측은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한국인이 먹는 쇠고기가 같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미국은 자신들이 안 먹고 버리는 부산물을 끼워 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경추의 횡돌기 위를 지나는 배근신경절도 SRM 부위"라며 "실제로 배근신경절을 다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횡돌기를 SRM 부위에서 제외시켜서는 안됐다"고 '부실협상'을 지적했다.

 

 

"곱창 재료인 소장 수입되면 광우병 감염 부분 들어올 수도"

 

이와 함께 소장의 일부인 회장 원위부만 SRM에 포함된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소 곱창을 즐겨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헤아리지 않은 채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체결했다는 지적이다. 

 

우희종 교수는 "OIE 내에서도 SRM 부위 규정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각국의 형편에 맞게 SRM 부위를 첨가하거나 제외해도 된다"며 "유럽의 경우 회장 끝부분 즉 회장 원위부뿐만 아니라 소장 전체를 SRM 규정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OIE도 (SRM 부위를) 소장 전체로 봐도 좋다는 표현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우리는 도축과정에서 회장 끝부분만 잘라낸 창자를 들여오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감염된 부분도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 창자를 즐겨 먹는다"며 "미국은 이것을 식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FDA 기준에서 아예 제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식습관을 아는 정부가 이 부분을 좀 더 엄격하게 고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홍하일 위원장도 "우리나라는 곱창을 먹기 위해 회장 원위부를 제외한 창자를 수입한다"며 "그런데 회장 원위부는 해부학을 잘 아는 이들도 구별하기 힘든 부위이기 때문에 제거 과정에서 광우병에 오염된 부위가 나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SRM 부위는 각국의 식습관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NAFTA)를 맺은 멕시코는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살코기와 간만 수입한다"며 "그외에  머리뼈, 뇌, 안구, 편도, 척수, 소장 등을 SRM 부위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 "미국 내에서 식용으로 사용하는 부분만 들어오기로 합의"

 

앞서 언급된 여러 가지 우려와 관련, 농림수산식품부 측은 아예 미국 FDA와 한미 쇠고기 의정서의 SRM 규정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입법예고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식용으로 인정되는 것만 들어오게 돼 있다"며 "미국에서 식용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모두 불합격돼 반송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이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는 SRM 부위인 소장원위부가 50cm 정도인데도 그 네 배인 2m 이상 잘라내 제거한다"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농식품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수입제품 수입위생조건' 입법예고안 1조 1항에 따르면 "(한미간 맺은 협약에 기술된)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은 미국 연방 육류검사법에 기술된 대로 도축 당시 30개월령 미만 소의 모든 식용부위와 도축 당시 30개월령 미만 소의 모든 식용부위에서 생산된 제품을 포함한다"며 '식용부위와 식용부위에서 생산된 제품만 수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 "다만, 특정위험물질(specified risk materials, SRM); 모든 기계적 회수육(mechanically recovered meat, MRM)/기계적 분리육(mechanically separated meat, MSM) 및 도축 당시 30개월령 이상된 소의 머리뼈와 척주에서 생산된 선진 회수육(advanced meat recovery product, AMR)은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서 제외된다"라고 기술되어 있어 SRM 부위 규정에 따라 '식용'의 개념이 결정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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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미 쇠고기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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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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