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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침부터 또 가랑비가 온다. 지번을 출발하여 동부해안국가풍경구인 1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갔다. 타이똥을 지나 샤오예류(小野柳)에 갔다. 해안가까지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고 파도에 침식되어 생긴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날이 맑아져 달리는 중에 옷이 거의 말랐다. 지금껏 없던 스쿠터를 위한 전용도로도 다시 나타나 자전거 타기는 수월해졌다. 언덕을 올라가니 처음으로 까페가 나타난다. 넓은 해안이 눈 아래에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처음으로 경치를 즐기며 한 잔의 커피를 음미했다. 높은 언덕 두 개를 넘어 동남 지역을 대표하는 항구도시 쳉공(成功)에 들어섰다. 오늘의 주행을 멈추기에는 시간이 어정쩡해 일단 쳉공 너머에 있는 싼센타이(三仙台)까지 갔다. 옛날에 3인의 신선이 왔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 작은 섬에는 아치형의 다리가 놓여 있다.

3인의 신선이 왔었다는 싼센타이
 3인의 신선이 왔었다는 싼센타이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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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의 거리는 지역 입구까지

쳉공으로 되돌아가기도 그렇고 하여 이곳서 멀지 않은 장빈(長濱)을 향하여 갔다. 그러나 가는 도중 비를 또 맞았다. 동해안은 큰 마을이 적어 숙박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무리한 것이다. 결국 비를 흠뻑 맞고 5시가 되어서야 장빈에 도착했다. 장빈은 아주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싼센타이 관광안내소에서 알려준 모텔은 레스토랑도 있고 건물 벽에는 원주민 부조물이 붙어 있어 매우 운치가 있었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고 연인처럼 까페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바람과 빗속을 달리기에는 너무 길고 힘든 100km의 여정이었다. 도로의 이정표에서 알려주는 거리는 그 지역의 입구까지이고, 거기서 다시 도심까지는 한참 걸린다. 이것을 모르고 이정표만 보아 가까울 것 같아 출발하였으나 입구에서 다시 도심까지 몇 km라는 이정표를 보면 마치 속은 느낌이다.

한밤중에 몰아치던 비바람은 사라지고 다음날 아침은 맑은 햇살이 비친다. 양식으로 잘 준비된 아침식사로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였다. 11번 도로의 왼쪽은 깎아지른 듯이 솟아오른 높은 산이고 오른쪽은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그 좋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기가 힘들었다. 시속 10km를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 지나니 정면에 매우 높은 탑이 나타난다. 태양이 수직으로 빛을 비출 수 있는 지구의 북쪽 끝을 나타내는 북위 23도 27분 지점의 북회귀선이다.

북위 23도 27분 지점의 북회귀선
 북위 23도 27분 지점의 북회귀선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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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왔다. 한 중년 남자가 다가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지나가던 중에 자전거에 달린 깃발을 보고 그는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다. 화리엔에서 까페를 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화리엔에 오면 아침을 대접하겠다며 꼭 들리라고 한다. 자신도 작년에 딸들과  함께 타이완 일주를 하였다며 무척 관심을 표하였다. 마침 화리엔에 숙소를 구하고 있는 참이어서 값싸고 좋은 모텔이 있으면 알려 달라 했더니 자신의 까페 근처 세 군데를 지도에 찍어주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장 눈에 많이 뜨이는 편의점은 세븐일레븐과 훼밀리마트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는 편의점이므로 보기만 해도 반가웠다. 타이완의 음식에 익숙하지 못해 여행 초반기의 점심은 대부분 이곳에서 컵라면이나 빵 그리고 맥주로 때웠다. 가격은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쌌다. 혹시나 해서 라면과 햇반 그리고 간식거리를 준비해 왔지만 짐만 됐다.
  
자전거 가게 찾기 너무 힘들다

화리엔에 도착하기 전, 길고 높은 언덕을 올라가는데 자동차가 앞에 서는 것을 보았다. 한 청년이 물통을 들고 나오더니 우리 보고 멈추라는 신호를 한다. 자기도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서 가지고 있는 물을 마시라고 내놓는다. 우리 자전거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타이완에는 이렇게 좋은 자전거가 없다며 무척 부러운 눈치였다.

좋은 자전거 대부분을 OEM 방식으로 타이완에서 만든다. 그래서 타이완에는 자전거나 자전거 부품이 쌀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벌써 대도시 2군데를 들려왔지만 자전거대리점를 한 곳도 보지 못했다. 타이뻬이를 돌아다녔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한 자전거 대리점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청년 말대로 타이완에는 시판되는 고급 브랜드가 없는 것 같았다. 타이뻬이에서 한 곳을 찾아갔지만 그들의 상표인 자이언트 자전거만 있을 뿐이었다.

화리엔에 도착하여 그가 알려준 호텔을 모두 찾았다. 그 중 가격이 저렴한 곳에 숙박하였는데 매우 만족하였다. 지도에 도로명이 적혀 있고 도로에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면 지도를 갖고 집을 찾는 것이 매우 쉽다. 그러나 아직도 도로명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주소로 집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간다. 주소 체계를 도로 중심으로 모두 바꾸고 시행에 들어갔으나 아직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속히 새로운 주소체계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방수가 된다던 자전거 뒤에 실은 가방에 물이 새 그 안에 있던 책과 옷이 젖었다. 이틀을 머물 예정이므로 빨래를 하였다. 방의 조명은 대부분 형광등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두 개의 백열전등이 있었다. 속히 마르라고 신발을 백열전등 위에 걸쳐 놓았다.

환상적인 계곡 타이루꺼 협곡

다음 날은 타이완 최대의 협곡인 타이루꺼(太魯閣)협곡을 관광하였다. 호텔에서 추천한 점심이 포함된 상품을 택하였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은 어제 만난 그의 까페에 찾아가서 그가 만들어준 야채 샐러드와 베이글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였다.

두 딸과 함께 일주한 피터 린의 까페에서 함께
 두 딸과 함께 일주한 피터 린의 까페에서 함께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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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에 도착한 관광승합차를 타고 타이루꺼협곡으로 들어섰다. 이미 입구에서부터 이 계곡이 범상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영토에 어울리지 않게 타이완에는 2000m 급 이상의 높은 산들이 매우 많고 이것이 거의 모두 동부에 몰려 있다.

협곡 일대는 동서 42km, 남북 36km의 길이로 해발 2000m 이상의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처음으로 금을 캐기 위해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든 것이 해방 후에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온 후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산세가 매우 험하여 화약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곡괭이로 작업하여 희생자도 많이 났다고 한다. 산이 너무 가팔라 화약을 사용했다면 절벽이 그대로 무너졌을거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길을 내기 위하여 최소한의 자연환경만 훼손하였을 뿐이다.

타이루꺼협곡 입구
 타이루꺼협곡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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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의 환상적인 피오르드식 해안의 모습을 떠오르게도 한다.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는 바다 위를 배로 관광을 하지만, 이곳은 계곡 사이를 차로 관광하는 것이 다르다. 계곡에는 차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산책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길도 만들어져 있다.

타이루꺼의 제1경으로 손꼽히는 창춘츠(長春祠)는 절벽 기슭에 만들어져 있으며 절 아래로 폭포가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까지는 도로에서 작고 긴 터널로 이어진다. 공사 중 숨진 이의 영혼이 모셔져 있다고 하나 스님은 보이지 않는다.

타이루꺼협곡의 제1경인 창춘츠
 타이루꺼협곡의 제1경인 창춘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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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를 뚫어 만든 주취둥
 거대한 바위를 뚫어 만든 주취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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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명 남짓한 관광객과 함께 거의 하루를 함께 보냈다. 차만 타고 다닌 것이 아니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산책하면서 이동했다. 점심으로 288위엔을 추가하였을 뿐인데 점심은 너무도 훌륭했다.

타이루꺼협곡에 단 하나뿐인 고급 호텔에서 주는 점심은 9000원도 안 되는 추가된 금액에 비하면 아주 맛있고 좋은 식사였다. 음식뿐 아니라 분위기를 압도하는 깎아지른 듯한 계곡 속에 살포시 앉아있는 이 호텔에 아내와 함께 다시 오고 싶을 정도다.

오전 8시에 출발하여 4시에 돌아오는 이 관광은 지루할 새가 없었다. 절벽에 굴을 뚫어 폭포와 어울리는 창춘츠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아주 맑은 물에 탄 카푸치노의 향기도 아직 전해오는 것 같다.

산 중턱에 파인 길로 산책하였다.
 산 중턱에 파인 길로 산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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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타이루꺼협곡, #화리엔, #북회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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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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