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한 마디가 정말 잊지 못할 멕시코에서의 추억을 만들게 된 만남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부 지방에 오면서 적지 않은 한잔 권유를 제의받았다. 대부분 그들이 좋아하는 소다도 함꼐 가지고 있었으므로 난 그것들을 주로 즐겨마셨다.
▲ "데킬라 한 잔 어때?" 이 한 마디가 정말 잊지 못할 멕시코에서의 추억을 만들게 된 만남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부 지방에 오면서 적지 않은 한잔 권유를 제의받았다. 대부분 그들이 좋아하는 소다도 함꼐 가지고 있었으므로 난 그것들을 주로 즐겨마셨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이봐 친구. 데킬라 한 잔 어때?"

멕시코시티를 향해 한참 땀을 삐질 흘리며 자전거를 밀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격려하려는 듯 데킬라의 진한 유혹을 전해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로 옆에 잠시 차를 정차시킨 솜브레로로 멋을 낸 사내였다.

이런 경우는 많이 겪어온 터여서 난 고개를 젓고 웃어 보이며 콜라가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콜라가 없는 대신 그는 일행을 통해 미네랄워터를 건네주었고 그곳에서 잠시의 휴식을 하며 갈증을 풀었다. 멕시코 중부에서는 특별히 갈증이 나진 않는데 건조한 기후라서 혀가 메말라 입천장에 붙기가 다반사다. 그래서 한 잔의 물이 입 안을 부드럽게 윤활 시켜준다.

"한 잔 더 할 텐가? 친구, 어디까지 가는 거야?"

무리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미네랄워터 한 잔을 더 따라주며 물어왔다. 알렉스라는 친구였다.

"오늘은 마라바티오(Maravatio)까지 갈 예정이에요."
"오, 그래? 내가 거기 사는데? 그럼,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놀러 오라구. 같이 저녁도 먹고 그리고 편히 쉬었다 가."

알렉스는 바로 내가 가려는 곳에 자기 집이 위치해 있다며 즉석에서 초대해왔다. 구태여 싫을 리가. 그런 제의라면 얼마든지 대환영이다. 약속된 만남에 있어서 생각보다 우울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그간 축적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모자챙 아래로 나이답지 않은 장난기 어린 표정의 그들은 오늘 밤 흥미꺼리가 하나 생겼다는 듯 껄껄대며 작은 쪽지에 펜흘림체로 휘갈긴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새로 부은 데킬라를 한 번에 털어내며 거듭 확인을 해 두었다.

오토바이로 멕시코를 여행하는 남자까지 더해진 모습. 멕시코 남자들은 언제나 당당한 폼이다.
▲ 길 위의 만남 기념으로 오토바이로 멕시코를 여행하는 남자까지 더해진 모습. 멕시코 남자들은 언제나 당당한 폼이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꼭 와야 돼, 친구!"

뜬금없는 약속이었다. 사실 현지인으로부터 가장 많은 초대를 받는 곳이 길 위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자전거 여행자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렁주렁 짐가방을 매단 자전거가 특별한 호기심을 유발해 내는 것이다. 내가 벤츠를 타거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면 느림의 미학이 녹아 든 살가운 만남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화살처럼 날아가는 속도에 숱한 만남을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설령 멈춰 있는 순간에도 그들과 인사는 나눌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삶 속으로 기꺼이 융화되어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감사하다. 이것도 내가 선택해서 하는 여행인데 자전거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송구스러운 대접을 받는다는 게 말이다.  

그들과 헤어지고 마저 남은 오르막을 계속 올랐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오르막을 오를 땐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거나 또 하나는 이렇게 시간만 축내고 힘이 드는 일을 내가 지금 왜 하고 있는지, 왜 해야만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거다. 그러다가도 내리막길이 나오면 마음은 다시 하나가 된다.

'역시 자전거 여행을 하기 참 잘했어!' 사람 마음은 다 그렇고 그렇다.

길을 지나다 보면 가축이나 동물들을 모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염소치기 길을 지나다 보면 가축이나 동물들을 모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해거름이 되어 마라바티오에 도착, 바로 센트로에 위치한 경찰서로 갔다. 일단 전화번호는 받았는데 마땅히 전화를 걸 방도가 없어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바쁜 업무로 인해 잠시 기다리고 나서야 경찰이 알렉스에게 전화를 걸어 주었고, 다시 몇 분 후에는 어떻게 얘기가 되었는지 아예 경찰차로 그가 있는 곳까지 픽업시켜 주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멕시코에서는 무조건 경찰서나 소방서행이다. 일단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되고 또 가장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기관만큼 친절을 베풀고 잘 재워주는 곳도 없다. 이러니 강도 사건 이후로는 애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약속대로 알렉스의 집에 도착, 그는 나를 대접하기 위해 장을 본 직후였다. 그와 친구들은 과일과 음료, 빵과 치킨 등 먹을 것을 잔뜩 싸 들고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아참, 데킬라와 맥주도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멋진 솜브레로와는 어울리지 않게 최신 휴대폰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급히 또 나가봐야 된다며 아예 열쇠를 나에게 맡겼다.

푸짐한 먹을거리와 숙소까지 제공해주고 다음 날은 정말 감동받을 정도의 멋진 장면들의 연속으로 섬겨주었다.
▲ 집으로 초대한 멋진 솜브레로를 쓴 남자들 푸짐한 먹을거리와 숙소까지 제공해주고 다음 날은 정말 감동받을 정도의 멋진 장면들의 연속으로 섬겨주었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여기 너를 위해 사온 거니 다 먹고, 또 더 먹고 싶은 거는 냉장고에서 있으니 알아서 다 꺼내먹어. 그리고 여기서 하고 싶은 거 다 해(사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할 만한 건 별로 없었지만). 여긴 네 집이야!"

알렉스의 호쾌한 배려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감사감사'. 게다가 열쇠까지 맡기다니.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뭘 믿었던 건지.

"가게에 일 생겼어요?"
"아니! 하필이면 내가 기르는 말이 뼈가 부러졌거든. 그래서 누이랑 함께 말이 있는 곳으로 가야해. 곧 돌아올 테니 혼자 식사 챙겨먹고 있으라구!"

그는 손으로 목을 가리키면서 아마 말의 목뼈가 부러진 것 같다는 황당한 말을 남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알렉스와 친구들이 떠나고 혼자 남겨진 적막한 곳이었지만 이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을 것을 뒤적이자 자전거 여행자 본연의 원초적 행복감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날 밤 만족스런 저녁 식사 후에 침대 위에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는 그만 그대로 새근새근 잠이 들어 버렸다.

내 미니기타를 가지고 신나는 멕시코 음악을 연주해 보겠다고 한 친구가 나섰다.
▲ 조율 내 미니기타를 가지고 신나는 멕시코 음악을 연주해 보겠다고 한 친구가 나섰다.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좋은 아침이야 친구, 잠자리는 괜찮았어?"
"물론이죠. 무척 좋았어요."


이튿날 아침, 자전거 져지를 입고 주행 준비 다 끝마치고 나가려는 찰나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로페즈를 만났다. 로페즈는 바로 알렉스의 절친한 친구다.

"오우, 벌써 가려구?"

알렉스 대신에 로페즈가 배웅할 모션이었다. 그런데 로페즈 역시 워낙 술을 좋아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금방 친해지고 또 호쾌한 면이 있었다.

다음 날 초대해준 로페즈의 집에 활짝 핀 앙증맞은 배꽃
▲ 배꽃 다음 날 초대해준 로페즈의 집에 활짝 핀 앙증맞은 배꽃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가만. 잠시만. 문(현지인들에겐 가끔 기억하기 쉽게 성인 문(Moon)을 애칭으로 가르쳐준다),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그는 내게 자신의 집이 정말 괜찮으며 그곳에 가면 경치도 끝내준다고 자기 집에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더욱이 상상 못할 엄청난 무언가를 볼 수 있다고 짐짓 귀띔까지 해댔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일정이 자꾸 지연되었기에 잠시 고민했다. 그 때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종일 무의미하게 경치를 바라보는 것보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게 더 값질 거라구."

게다가 로페즈는 한국말로 나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좋아? 된장찌개. 김치 매워요. 불고기 좋아. 괜찮아? 힘들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중 한국 여자친구를 1년간 사귀며 배운 한국어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한마디 때문에 난 로페즈의 제안을 그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머.리.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그의 유머에 마음의 빗장을 우악스레 걸어 두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알렉스가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는 어디 있나요?"
"알렉스?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면 그 친구를 볼 수 있을 거야. 자, 일단 자전거는 여기 모셔놓고 내 차를 타고 우리 집에 가자구!"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로페즈의 의견을 따른 건 멕시코 여행 중 가장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낸 멋진 추억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과연 로페즈가 말한 상상 못할 엄청난 무언가가 무엇이었을까? 길 위에서 부른 데킬라 한 잔의 권유가 전혀 예상 못한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시골집에서 식사를 하며
▲ 로페즈의 가족들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시골집에서 식사를 하며
ⓒ 문종성

관련사진보기



태그:#멕시코, #자전거여행, #세계일주, #마라바티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비전노마드, 지구를 순례하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